[아무도안해서합니다] ‘소녀상 지킴이’ 24시간 체험기

[아무도안해서합니다] ‘소녀상 지킴이’ 24시간 체험기

기사승인 2017-01-10 00:52:44

[쿠키뉴스=심유철 기자] 부산 일본 영사관 앞에 설치된 위안부 소녀상을 두고 잡음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는 지난 8일 일본 NHK ‘일요토론’에 출연해 “일본 정부는 2015년 위안부 합의에 따라 10억엔의 거출을 실시하는 등 의무를 다하고 있다”며 “지속적으로 한국에 소녀상 철거를 요구하겠다”고 밝혔습니다.

한·일 갈등이 증폭된 가운데 서울 도심에는 1년 넘게 소녀상을 지키고 있는 대학생들이 있습니다. ‘일본군위안부사죄배상과 매국적합일합의폐기를 위한 대학생공동행동’입니다. 이들을 짧게 ‘소녀상 지킴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추운 겨울, 학생들은 어떻게 소녀상을 지키고 있을까요? 그들의 24시간 속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11차 촛불집회가 열린 지난 7일 오전 8시57분. 기자는 종로구 일본대사관 앞 위안부 소녀상 앞에 도착했습니다. 텐트에 비닐을 씌운 모양새를 보니 군대가 생각나는군요. 흡사 혹한기 훈련을 연상시킵니다.

소녀상 지킴이가 머무는 공간은 파라솔 위에 비닐을 덧입힌 형태로 만들어졌습니다. 내부 면적은 4.9587㎡. 약 1.5평 정도의 비좁은 텐트에는 전기장판 두 개와 난로 하나가 미약한 온기를 뿜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빈틈 사이로 들어오는 찬바람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습니다. 


오전 9시40분. ‘금강산도 식 후경’이죠. 메뉴는 김밥과 육개장. 자원봉사 단체 ‘함께하는 이웃’과 세월호 유가족들이 광화문 광장에서 무료 배식 행사를 진행하고 있었습니다. 

소녀상 지킴이로 활동 중인 대학생 권모씨는 “평소 식사비는 시민들의 성금으로 해결한다”며 “저녁 식사는 인터넷 여성커뮤니티 ‘82쿡’에서 매일 제공해 주신다”고 설명했습니다. 


오전11시. 소녀상 지킴이 최혜련(22‧여) 대표가 교대를 위해 현장에 나왔습니다. 최 대표의 첫 마디는 이랬습니다. “소녀상 지킴이는 과거 2번의 해체 위기를 겪으면서 시민들의 기억에서 잊혀가고 있다”

최 대표는 “2개월 전만 해도 경찰들은 도로교통법 위반을 이유로 텐트에 비닐을 씌우지 못하게 했다”면서 “경찰에 끊임없이 요구한 결과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됐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불법이라고 주장한 게 나중에는 허용됐다. 입장을 바꾸는 모습에 더 화가 났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습니다.  

또 “비닐이 없을 때는 행패 부리는 취객들을 모두 상대해야 했다”며 “한 남성은 코앞에서 ‘경찰만 없었으면 너를 칼로 찔러 죽였을 것’이라고 협박한 적도 있다”고 했습니다. 

소녀상 지킴이 윤재민(21)씨는 “한번은 보수단체 ‘엄마부대’가 와서 ‘너 어떤 X의 자식새끼냐’고 어머니를 욕하고 가더라”며 “박사모(박근혜를 사랑하는 모임)가 우리 포스터를 다 찢어 놓은 적도 있다”고 회상했습니다. 

이어 “국회의원 몇 분이 ‘노숙농성을 함께 하겠다’고 했지만, 행동으로 옮긴 사람은 없었다”며 “국회의원은 ‘힘내라’고만 하지 소녀상을 지키기 위한 구체적 논의는 하지 않는다”고 아쉬움을 드러냈습니다. 


시민들의 방문은 계속 이어졌습니다. 그들은 “자네들 덕분에 우리가 일본에 할 말이 있네” “TV에서 여러분을 보고 눈물을 흘렸어요” “어른들이 못 하는 것을 대신해 줘서 감사합니다” 등의 응원과 격려 메시지를 전달했습니다. 또 다른 시민은 귤, 컵라면, 생수 등을 전달해주기도 했습니다. 소녀상 지킴이는 시민들에게 받은 모든 음식과 물품을 사진으로 남겨 공식 SNS에 올립니다.    


오후 4시. 서울 보광동에서 미술을 가르치는 미국인 마이크 스튜어트는 가방에서 A4용지 크기의 연습장을 꺼내 위안부 소녀상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마이크는 방해를 받는 게 싫은지 기자의 질문에 짧게 대답했습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를 어떻게 생각하세요”

“Sad”


오후 5시. 위안부 소녀상을 제작한 조각가 김운성‧김서경 작가 부부가 이곳을 찾았습니다. 부부는 “노숙농성을 하는 대학생들이 2015년 ‘12‧28 한일 합의’가 이뤄진 뒤로 하루도 빠지지 않고 소녀상 곁을 지켜주고 있다”며 “정말 고맙다. 이들을 통해 희망을 보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또 “위안부 소녀상 조각을 시작한 건 우리 부부지만, 완성은 이들이 하고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왜일까요. 기자는 고작 7시간35분 동안 이 자리를 지켰을 뿐인데 357일을 모두 지켜온 것 마냥 뿌듯했습니다.   

오후 7시. 이날은 낮 온도가 10도까지 올라가면서 포근했지만, 해가 지니 핫팩을 꺼내야 할 정도로 기온이 내려갔습니다. 

오후 8시35분. 텐트에 일본인 손님이 방문했습니다. 서울대학교 국제대학원에 재학 중인 카와구치 슌(26)씨였는데요. 서울 특파원이 꿈이라는 슌씨는 이미 취업에 성공했습니다. 그는 오는 2월 대학원 과정을 마치고 일본 마이니치 신문사에서 기자로 일한다고 합니다. 


슌씨는 “한일 합의가 있었다고 해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해결됐다고 볼 수는 없다”며 “앞으로도 일본의 반성은 계속되어야 한다”고 꼬집었습니다.    

오후 10시. 밤이 깊었습니다. 그러나 소녀상 지킴이에게 힘을 주는 시민들의 발걸음은 끊길 줄 몰랐습니다. 이쯤 되니 기자도 “감사합니다. 힘내겠습니다”라는 응답이 자연스럽게 나왔습니다.


오후 11시30분. 잠을 자기 위해 내부 정리정돈이 필요했습니다. 텐트 주변 쓰레기도 치우고요. 온종일 이들과 생활하니 서로를 형‧동생이라고 부를 정도로 친해졌습니다. 며칠 뒤 다시 와서 교대를 해야 할 것 같은 기분이랄까요.

기자는 전기장판 한쪽에 자리를 잡고 누웠습니다. 눈을 감았습니다. 경찰 버스의 엔진 소리가 더 크게 들렸습니다. 잠에 들기 어려웠습니다. 도로를 지나는 자동차 불빛에 정신이 번쩍 들기도 했습니다. 


다음날 오전 8시10분. 경찰버스의 엔진은 여전히 시끄러운 소리를 내고 있었습니다. 매연이 텐트 틈 사이로 들어왔는지 코가 막혀서 숨쉬기가 어려웠습니다. 화장실에서 코를 풀어보니 시커먼 먼지가 가득했습니다. 

오전 9시. 정세레나(35) 수녀님과 대학생 2명이 교대 조로 투입됐습니다. 하루를 같이 보낸 소녀상 지킴이는 기자에게 “꼭 다시 와달라”며 아쉬운 작별인사를 전했습니다.

외교부는 지난 30일 일본 측에 “12·28 한일 합의를 착실히 이행하겠다는 입장에 변화가 없다”고 밝혔습니다. 한국 정부는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의견은 듣지 않고 한일 양국의 이해관계만 따지고 있는데요. 소녀상 지킴이의 노력이 열매를 맺는 날이 꼭 오리라 믿습니다.  

tladbcjf@kukinews.com / 사진=박효상 기자 tina@kukinews.com 

심유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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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유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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