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윤민섭 기자] 지난 24일, 블리자드의 하이퍼 FPS 게임 오버워치가 출시 1년을 맞았다. 이 게임은 출시와 동시에 한국 게임시장의 질서를 재정립하며 파란을 일으켰다. 그러나 지지부진한 e스포츠화 등 여전히 풀어야 할 숙제가 많다.
▶ 2016 GOTY 2위·유저 수 3000만 명 돌파… 롤 넘고 PC방 점유율 1위 오르기도
오버워치는 대중과 평단으로부터 그 만듦새를 두루 인정받았다. 유저들은 오버워치를 놓고 ‘잘 만든 게임’이라고 입을 모아 말한다. FPS 장르 본연의 재미는 물론, 등장 캐릭터의 개성과 블리자드 특유의 스토리 텔링까지 모두 챙겼다는 평이다. 높은 완성도에 힘입어 전체 유저 수는 1년 새 3000만 명을 넘어섰다.
전 세계 유력 게임 웹진들로부터 2번째로 많은 GOTY(올해의 게임) 표를 얻었고, 리뷰 모음 사이트인 메타 크리틱에서는 91점의 높은 총점을 받았다.
이러한 흥행가도는 실적으로 이어졌다. 지난 4월 블리자드는 “오버워치의 전 세계 누적 매출이 10억 달러(한화 약 1조2000억 원)를 넘어섰다”고 밝혔다. 블리자드의 수많은 걸작 중에서도 가장 빠른 시일 내에 1조 클럽에 가입한 진기록이다.
‘고급시계’는 한국에서도 그 영향력을 행사했다. 지난해 6월, 출시 1달 만에 PC방 점유율 1위를 차지했다. 리그 오브 레전드가 204주간 수성하던 왕좌를 쉽게 빼앗았다.
이후 다시 순위가 뒤바뀌어 현재 리그 오브 레전드 1위(약 30%), 오버워치 2위(약 25%)로 ‘서열정리’가 된 형국이지만, 두 게임의 점유율 차이는 5% 미만이다. 3위군을 형성하고 있는 피파 온라인3와 서든 어택 등이 약 5%의 점유율을 유지하는 점을 고려하면 선두그룹은 당분간 바뀌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 새로운 팬덤 개척? 10·20대 여성 사로잡은 APEX
e스포츠 시장에서의 약진도 눈에 띈다. OGN이 주최하는 오버워치 APEX는 어느덧 3번째 시즌을 치르고 있다.
지난해 10월 첫 발걸음을 내디딘 APEX 시즌1은 약 2개월에 걸친 대장정 끝에 해외 명문 e스포츠팀 엔비어스가 초대 우승팀에 올랐다. 우승상금은 1억 원이었다. 첫 대회 우승상금이 리그 오브 레전드 챔피언스 코리아(롤챔스)와 비교해도 꿀리지 않는 수준인 것은 오버워치 e스포츠에 대한 기대를 방증한다.
이후 약 1달 반의 재정비를 거친 뒤 APEX 시즌2가 개최됐다. 첫 시즌보다 규모가 커져 약 80일 동안 진행됐고, 루나틱 하이·러너웨이 등이 인기 팀으로 우뚝 섰다. 또한 ‘류제홍’ ‘학살’ 등 새로운 e스포츠 스타들이 대거 발굴됐다. 지난 4월8일 서울 고려대학교 화정체육관에서 열린 시즌2 결승전 현장은 만원을 이뤄 대회 인기를 실감케 했다.
현재 상암 e스타디움에서 치러지고 있는 시즌3는 4월28일부터 7월29일까지 총 3달에 걸쳐 열린다. 전 시즌과 마찬가지로 16팀이 자웅을 겨루며, 결승전 무대는 e스포츠 성지인 부산 앞바다가 유력하다.
오버워치 e스포츠 시장은 분명 성장하고 있다. e스포츠 부동의 원탑인 롤챔스를 제외한다면, 이처럼 급격하게 몸집을 키운 대회는 없다.
10·20대 여성 팬덤이 형성된 것은 오버워치 e스포츠만의 특징이다. APEX가 개최되는 날 상암 e스타디움은 10·20대 여성들로 만석이 된다. 이들을 경기장으로 이끄는 원동력은 무엇일까.
e스타디움에서 만난 ‘직관러(경기장에 직접 관람을 하러 오는 사람들)’들에게 현장에 오는 이유를 물었다. 이들은 대체적으로 “오버워치 게임 자체 재미가 첫째”라고 답했다.
이들은 “리그 오브 레전드를 하지 않거나, 하더라도 오버워치를 훨씬 더 많이 한다”며 “그게 APEX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지는 것 같다”고 답했다.
한 팬은 “롤은 아이템 트리 등의 설정이 AOS 장르에 익숙지 않은 게이머들에게 너무 어렵고 복잡하다. 반면 오버워치는 직관성이 뛰어나고 조작이 간편해 입문이 쉽다”고 오버워치 선호 배경을 설명했다.
또 다른 팬은 “롤은 상대적으로 올드 유저들이 많기 때문에 신규 유저가 적응하기 힘들다. 그 뒤로는 손이 잘 안 간다”는 의견을 내기도 했다.
러너웨이 팬이라고 밝힌 한 10대 여성은 “APEX는 팀마다 다른 매력이 있다. 또 선수마다 개성도 다 다르다”고 얘기했다.
아울러 “다른 팀과 경기를 할 때면 내가 응원하는 팀이 아닌 상대 팀에게도 흥미를 느낀다. 우리 팀과는 또 다른 매력과 스타일이 있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이들은 또 “APEX 직관 시 남녀 비율은 체감상 8:2 혹은 7:3 정도로 여성이 많은 것 같다”고 답했다.
허나 일부 직관 팬들은 너무 늦은 대회 시간에 문제가 있다고 말한다.
“막차를 놓칠까 봐 중간에 나온 적도 몇 번 있다”는 한 팬은 “게임이 장기전으로 이어지면 집에 갈 때가 걱정된다”고 전했다.
그는 “직관을 오는 대부분의 팬이 여성인데, 귀가길 안전 문제 때문에라도 일찍 시작했으면 좋겠다”면서 “한 시간이라도 당겨주거나 하루 1경기 체제로 전환했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밝혔다.
“저번 시즌에는 막차를 놓쳐서 이모네 집에서 자고 갔다”는 한 팬은 “서울에 살더라도 끝까지 다 보고 집에 가면 새벽 1시가 넘는다. 근처 찜질방에서 잠을 자고 갈 계획으로 오는 팬들도 있다”고 말했다. 현재 APEX 시즌3는 매주 화·금요일 저녁 7시에 시작한다.
어느 순간 대회의 성장이 멈춰 ‘박스권’에 갇힐 것이란 우려도 있다. 지난 1월17일 롤챔스 스프링과 APEX 시즌2가 동시 개막했을 당시 시청자 수가 수 배 가까이 벌어졌을 정도로 두 게임 간 인기 차이는 명확했다.
이 격차는 실제 게임 인기에도 영향을 끼쳤다. 게임트릭스에 의하면 양대 리그 개막일 당시 미세한 차이로 앞서며 PC방 사용량 1위 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오버워치는 바로 이튿날 리그 오브 레전드에게 1위를 내줬다. 이 차이는 계속 벌어져, 한 달이 지나자 두 게임의 차이는 2%p 이상, 두 달이 지나자 8%p 가까이 커졌다.
▶ 대기업 스폰서 전무·해외팀 줄줄이 해체… 지역 연고제는 감감무소식
빈약한 수익 창출 문제도 발목을 잡는다. SK 텔레콤, kt, 삼성 등 e스포츠 시장에서 잔뼈가 굵은 대기업이 스폰서로 있는 리그 오브 레전드 프로팀들과 달리, APEX 참가팀은 대기업 네이밍 스폰서가 전무하다. 어느 정도 인지도 있는 후원 기업이라고는 아프리카TV와 콩두 컴퍼니 정도다.
2016년 말, 기존 스타크래프트팀이 줄줄이 해체되며 회수된 자본이 오버워치팀 창단으로 향할지 업계의 관심이 쏠렸다. 그러나 기업들의 선택은 리그 오브 레전드팀으로의 ‘선택과 집중’이었다.
‘카이저’ 류상훈의 이적은 문제의 심각성을 대변한다. 지난 시즌 준우승팀 러너웨이의 핵심 멤버였던 류상훈은 이번 시즌 도중 미국 C9으로 소속을 옮겼다. 그럼에도 오버워치 팬덤에서 그를 비난하는 여론은 조성되지 않는다. 준우승 상금을 제외한다면, 그가 러너웨이팀 소속으로 활동하면서 얻은 수익이 제로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현재 러너웨이는 팀의 게임단주이자 맏형인 ‘러너’ 윤대훈이 비용 전액을 부담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러너웨이뿐이 아니다. 지난 시즌의 플래시 럭스처럼 스폰서는커녕 제대로 된 유니폼도 없이 대회를 치르는 팀도 있다. 이들은 대회에서 3000원 짜리 저가 헤드셋을 사용하다가 게임 내 의사소통에 문제가 생겼다. 이후 시청자들과 게임장비 전문업체 제닉스로부터 후원이 잇따르기도 했다.
지난 2월에는 상대팀 선수들의 열악한 경제 사정을 이용한 승부 조작 시도가 있었다. 루미너스 솔라의 진석훈 감독과 백민제 코치는 APEX 챌린저스 시즌2 오프라인 예선전 당시 상대팀인 언리미티드 팀원들에게 고가의 게임 장비를 대가 삼아 고의패배를 종용했다.
정황을 포착한 OGN은 두 코칭 스태프에게 자신들이 주관하는 모든 리그의 참여자격을 박탈하고, 루미너스 솔라팀 소속 선수들에게는 다른 팀 이적 후 참가만을 허용했다. 언리미티드의 최윤수 또한 차기 시즌 참가자격을 잃었다.
이러한 ‘불모지 환경’과 별개로 e스포츠에 관한 블리자드의 계획은 원대하다. 앞서 블리자드는 메이저 스포츠들의 지역 연고제를 표방한 오버워치 리그를 출범하겠다고 공언했다.
지난 2월 오버워치 리그의 총괄을 맡은 네이트 낸저가 방한해 “오버워치를 축구처럼 글로벌한 리그로 발전시키겠다”는 포부를 드러냈지만 이이 이야기는 1년이 지나도록 진척이 없다.
당시 낸저는 지역연고제가 정확히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질지를 묻자 “각 지역의 스포츠 구단주나 게임단주에게 리그를 소개하고 있는 단계”라고 답했고, 게임 경기장 마련 문제와 관련해서도 “팀 오너와 상의할 부분”이라며 애매한 태도로 일관했다.
최근에도 ‘일부 인기 지역 팀 유치에 200만 달러를 요구하고 있다’ 등의 소문만 흘러나오고 있을 뿐, 여전히 명확한 비전은 제시되지 않고 있다.
다양한 종목의 e스포츠팀을 운영하는 해외 게임단의 사례는 어떨까. 디그니타스, 스플라이스, 컴플렉시티, 팀 솔로미드(TSM) 등 여러 명문 e스포츠팀에서는 오버워치팀을 해체하는 추세다.
한편 블리자드는 지난 23일 공식대회인 ‘오버워치 컨텐더스’를 개최한다고 발표했다. 6월 초부터 1달간 북미와 유럽에서 펼쳐지는 이 대회는 사실상 오버워치 리그의 시범 대회 성격을 띠고 있어 본 무대의 청사진이 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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