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코올중독 회색지대, 가상현실로 잡는다?

알코올중독 회색지대, 가상현실로 잡는다?

가상현실(Virtuall Reality·VR), 중독치료 도입 늘어

기사승인 2017-10-24 03:00:00

 

#시끌벅적한 고깃집. 불판 위에서 삼겹살이 노릇노릇하게 구워지고, 그 옆으로 상추바구니, 김치 등 밑반찬과 소주병이 놓여있는 광경이 눈앞에 펼쳐진다. 지글지글 고기 굽는 소리와 고소한 냄새에 절로 입맛이 당긴다. 주인공은 상추에 고기, 마늘, 김치를 얹어 쌈을 싸먹고, 모여앉은 일행과 건배를 한다. 다음 장면. 지저분한 상가 화장실에서 주인공이 변기를 부여잡고 있다. 몇 차례 헛구역질을 하다가 결국 손가락을 입에 넣고 구토 시도한다. 보기에도 역한 토사물이 화면을 가득 채웠고, 비릿한 냄새도 그대로 재현됐다.

가상현실(Virtuall Reality·VR)을 중독 질환 치료에 도입하는 움직임이 활발해지고 있다. 특히 우리 사회에 숨어있는 초기 알코올중독(의존증) 환자 치료에 적극 활용되고 있다.

특정 환경과 상황을 실제처럼 구현한 가상현실 프로그램을 통해 음주에 대한 왜곡된 인식을 재정립시키고, 실제 음주행동을 교정하는 인지행동치료의 한 종류다. 3차원 시청각 자료에 후각을 가미해 현실감을 높였다.

한창우 강남을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가상현실을 매개체로 삼아 환자에게 실질적인 음주 갈망을 유도한 후 강력한 혐오반응을 유발시켜 음주 의지를 떨어뜨리는 방법”이라고 설명했다. 

가상현실 치료 대상은 알코올중독 초기에서 중기에 있는 환자들이다. 초·중기 중독 환자들의 경우 인지기능이 아직 살아있어 인지행동치료가 가능하고, 중증 환자들에 비해 치료효과가 빠르다.

중독 초기 환자들의 가장 큰 문제는 자신의 상태를 스스로 인정하는 병식을 갖기가 어렵다는 점이다. 우리나라는 음주에 관대한 사회 분위기로 인해 알코올중독을 ‘문제’로 인식하기가 쉽지 않다. 특히 병에 대한 인식 없이 교정 및 치료로 이어지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가상현실 치료가 중독 초기 환자에게 ‘병식’을 심어주는 치료의 첫 단계인 셈이다.

한 교수는 “막연히 알코올중독이고, 치료받아야 한다고 진단하면 대부분의 환자들이 믿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의 행동을 부인하는 ‘부정’과 모든 문제를 남 탓으로 돌리는 ‘투사’가 나타나면서 치료를 거부하는 경우가 많다”며 “이때 가상현실 인지행동치료를 활용해 본인의 문제를 실제로 보여주면 환자들이 보다 쉽게 병을 인정하고, 치료에도 긍정적으로 나선다”고 말했다. 

한 교수는 중독 질환에 대한 교육의 필요성에 대해서도 강조했다. 한 교수는 “환자들이 대부분 자신이 알코올 중독 증상을 보이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한다. 갑자기 목이 탄다거나 갈증이 나는 증상은 단순한 갈증이 아니라 술을 마시지 않아서 발생하는 ‘갈망’일 수 있다. 또 상담 중에 손을 덜덜 떨면서도 ‘금단현상’인 줄 모르고 단순한 습관이라고 이야기 하는 환자들도 있다”며 “별 일 아니라고 넘기는 행동들을 따라가다 보면 결국 알코올중독을 가리키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환자들이 당장 술을 안 먹게 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술을 끊고 살아갈 수 있는 힘을 길러주는 것”이라며 “수동적으로 술을 끊겠다고 오는 사람들은 쉽게 무너질 수 있다. 그러나 자발성이 있는 환자들은 다르다. 가상현실을 통해 치료 동기를 유발해주면, 스스로 술을 이기고자 하는 의지가 생기기 때문에 치료 순응도도 높은 편”이라고 말했다.

다만 중증 중독 환자에게는 이러한 ‘혐오 자극’을 기반으로 한 가상현실 치료는 무의미하다. 오히려 술을 마시고 싶어 하는 ‘갈망’을 부추길 수 있어 위험하다. 한 교수는 “중증 환자들은 이미 뇌가 술을 마신 상태를 정상으로 인식하기 때문에 술을 마셔도 구토하지 않는다”며 “중증 환자들은 일상 관리를 통한 치료모델보다는 입원치료를 권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한 교수는 “알코올 중독은 시간이 갈수록 악화되는 진행성 질환”이라며 “아직 일상생활이 무너지지 않은 초·중기 환자들, 직업과 사회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환자들은 빠르게 치료를 받고 관리를 시작하는 것이 좋다”며 “중독이 가져다주는 갈망은 사람의 의지보다 훨씬 위에 있다. 혼자서 스스로의 의지만 가지고 이겨내기는 불가능하다. 병원과 치료기관 등을 통해 적극적으로 도움을 받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전미옥 기자 romeok@kukinews.com

전미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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