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자리 잃는 약사들, 법 개정 목소리 커져

설 자리 잃는 약사들, 법 개정 목소리 커져

“물품 관리자 아닌 환자 치유를 위한 의료인으로 거듭나야”

기사승인 2017-11-10 00:03:00
의사, 간호사, 간호조무사 등은 의료인이다. 하지만 약사는 의료인이 아니다. 문제는 의료정책의 다수가 의료인을 대상으로 이뤄진다는 점이다. 

단적으로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정책에 약사와 관련된 내용은 찾아보기 힘들다. 보건의료 인력 적정화나 4차 산업혁명을 대비한 제약ㆍ바이오산업 육성 및 지원 방안에도 약사의 위치는 없는 듯하다.

이에 약사들의 존재가치를 찾기 위한 몸부림이 점차 거세지고 있다. KFDC법제학회가 9일 개최한 추계 학술대회에서는 ‘약사법과 전문인력’이 4개 대주제 중 하나로 선정돼 약사직능의 미래와 외부로부터의 위협, 법적인 문제와 개정필요성 등을 포괄적으로 다뤘다.


학회장이기도 한 권경희 동국대학교 약학대학장은 30여년 전부터 내려온 물품 관리를 중심으로 정의된 약사의 역할과 개념을 사회적 요구와 시대적 변화에 맞춰 바꿔야할 때라고 강조했다. 

약사법상 약사의 정의대로 단순히 의약품과 의약외품의 제조, 조제, 보관, 판매, 수입 관리하는 물품 관리자가 아니라 그 너머 환자를 중심으로 지적서비스 혹은 약료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역할의 규정이 달라져야한다는 주장이다.

권 교수는 “약사법 상 전문 인력이 더 이상 약사만이 아닌 상황이 됐다. 다양한 분야로부터의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그럼에도 그간 너무 등한시했다. 6년제로 전환되며 사회적 요구에 발맞춘 변화를 모색하려 했지만 7년째 표류 중”이라며 지금이라도 바꿔야한다는 뜻을 전했다.

한양대학교 약학대학 이주연 교수는 의료과실과 약물부작용이 심화되는 상황에서 약사의 역할을 강조하는 국제사회의 분위기에 발맞춰 맞춤형 약물사용관리 서비스를 제공하는 등 환자의 건강회복에 일조할 수 있는 역량을 키우고 법적, 제도적 뒷받침이 이뤄져야한다고 말했다.

현행 약사법 상 규정된 약사의 업무범위로는 의약품에 대한 접근성을 보장하고 올바른 정보를 제공하며 복약순응도를 높이고 환자의 건강상태를 평가하는 등 사회적으로 요구되는 역할을 제대로 이행할 수 없다는 지적이기도 하다.

심지어 순천향대학교 약학대학 최경희 교수는 “약사법에서 정하고 있는 약사의 업무영역에 대해 크게 간과한 채 사회적 변화와 약사의 역할에 대해 학생들에게 가르쳤는데 돌이켜보니 환자들에게 불법을 강요했던 것 같다”며 법 개정과 약사의 전문성을 강화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한다고 입장을 피력했다.

대한약사회 강봉규 정책위원장도 “의료인은 아니지만 보건의료인으로 국민의 건강증진을 위한 보건의료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돼 있다. 문제는 일련의 규정이 애매해 의사들이 금연사업, 자살예방사업, 만성질환관리 등을 참여하는 것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취하는 것”이라며 약사법 및 의료법 개정을 통한 명확한 역할정립 필요성을 제안하기도 했다.


한편, 이 같은 분위기 속에서도 약사 직능에 대한 도전은 계속되고 있었다. 이날 학회에 참석한 산업인력공단 장석근 자격분석설계팀장에 따르면 고용노동부는 의약품 및 바이오의약품 제조기사와 산업기사 총 4종의 전문자격을 신설하기 위한 법령개정에 돌입했다.

장 팀장은 “11월 중 고용노동부에서 입법예고를 통해 국가기술자격법 시행규칙을 개정하고 내년 법제처 검토를 거쳐 이르면 2019년 하반기부터 자격취득자가 배출될 것”이라고 전했다. 이들은 향후 의약품 및 바이오의약품 제조과정을 관리하는 전문가로 활동할 수 있다.

이와 관련 강 위원장은 신설 자격의 범위가 약사법상 정하고 있는 의약품 제조 관리자로써 약사의 역할과 영역을 침범할 수 있다는 문제를 제기하며 강하게 불만을 제기했다. 

이에 장 팀장은 “충분히 의견을 수렴해 정리하고 갈 수 있다”면서도 생산시설 현장을 중심으로 직무내용을 마련한 것으로 의약품의 품질 및 제조를 관리하는 약사의 영역과는 다르다는 점을 거듭 강조하면서도 자격증 신설은 기정사실화하는 분위기를 연출했다.

이 같은 분위기에 이모세 대약 보험위원장은 자격증 신설을 오히려 기회로 활용해 제조관리 전문약사나 안전관리전문약사 등 약사의 전문화가 이뤄질 수 있다는 점을 언급하며 보건의료영역 뿐만 아니라 제약산업 분야에서의 약사의 역할에 대한 논의도 필요하다고 시사했다.

오준엽 기자 oz@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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