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각지대 소규모 유치원…학대·불법운영에도 교육청 ‘깜깜’

사각지대 소규모 유치원…학대·불법운영에도 교육청 ‘깜깜’

사각지대 소규모 유치원…학대·불법운영에도 교육청 ‘깜깜’

기사승인 2019-05-17 06:15:00

소규모 유치원이 관리 당국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다. 아동학대, 성희롱, 위법 운영 등의 의혹이 일어도 교육청 등에서는 관리·감독은커녕 이를 파악조차 하지 못했다. 

경기 남양주 진건읍에 있는 H 유치원의 문은 지난 8일부터 굳게 닫혔다. 이모 원장과 그의 남편인 김모 이사장의 비위 의혹이 불거졌기 때문이다. 학부모와 해당 유치원에 재직했던 교사 등에 따르면 이들 부부는 수업 중 아이들을 신체적·정서적으로 학대했다. 특히 김 이사장은 아이들 볼에 뽀뽀하며 깨물어 상처를 냈다. 

유치원 운영은 비정상적이었다. 증언에 따르면 김 이사장은 사무직원으로 등록돼 있지만 정규 수업 시간에 아이들을 가르쳤다.([단독] 자격 없는 원장 남편, 유치원 쥐락펴락…원생·교사 ‘벌벌’ 2019-05-15, 쿠키뉴스 보도) 자격이 없는 이가 유치원 정규 수업에 개입하는 것은 유아교육법 위반이다. 

학급 운영 또한 불법이었다. H 유치원은 5세, 6세, 7세반 등 3학급으로 운영됐다. 그러나 도 교육청으로부터 인가된 학급은 2학급뿐이었다. 3학급에 맞는 교실, 유희실, 체육장 등 필수시설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 원장은 쿠키뉴스에 “나이대가 다른 아동들을 합반으로 운영하면 원아 모집이 어려워 불법적으로 운영했다”고 시인했다.

방과 후 특성화 활동 역시 교육 당국의 관리·감독에서 벗어나 있었다. H 유치원은 방과 후 특성화 활동으로 피아노 수업을 진행했다. 지도는 이 원장이 맡았다. 보통 방과 후 특성화 활동을 운영하면 유치원은 자체 평가서를 교육지원청에 제출한다. 교육지원청은 이 자료를 유치원 지도·점검 등에 활용한다. H 유치원의 경우 피아노 수업을 교육 당국에 보고하지 않았다. 엄밀히 말하면 보고와 다르게 방과 후 활동을 진행했지만 교육청 등은 이러한 사실을 파악조차 하지 못했다.

남양주구리교육지원청은 ▲ 교원 인사와 복무 ▲ 재무회계 등 소관 부서별로 매년 1회 유치원 지도점검을 실시한다. 이마저도 대상은 전체 사립유치원 중 30~40%에 그친다. 

교원 인사와 복무를 지도점검하는 부서는 남양주구리교육지원청 초등교육지원과 유아교육담당이다. 해당 부서는 지난 2015년과 2017년 각각 H 유치원을 방문했다. 그러나 유아교육담당 관계자는 이사장의 수업 개입, 진행은 지도점검 대상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유아교육담당 관계자는 “지도점검 대상은 한정적”이라며 “국가에서 기본급보조비가 나오는 임용보고 된 교사에 대해서만 수업 진행 여부 등을 확인한다. 교원자격증이 없는 인물과 관련된 내용은 경기도교육청이 실시하는 종합·특정감사가 아니고서야 알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H 유치원은 도교육청 감사를 받았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단 한 번도 받지 않았다. 

도내 공·사립유치원 숫자는 넘쳐나는데 감사 인력은 턱없이 부족하다. H 유치원은 원아 100명 이하의 소규모 유치원이라는 이유로 감사 대상에서 번번이 밀렸다. 

주목해야 할 점은 이러한 문제가 H 유치원에 그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지난해 10월 사립유치원 비리 실태가 드러난 뒤 도교육청은 2년 내 945개 사립유치원 전수 감사 방침을 밝혔다. 인력도 기존 감사관 인력 86명에서 37명을 증대하기로 했다. 전수 감사는 환영할 일이지만 미흡한 점은 여전하다. 줄곧 방치됐던 소규모 유치원이 또다시 우선순위에서 밀렸기 때문이다. 도교육청이 발표한 올해 우선 감사대상은 ▲원아 200명 이상 ▲누리과정(만 3~5세 교육과정) 정부 지원금을 제외하고 학부모가 부담하는 학비가 월 50만 원 이상인 곳들로, 사실상 대규모·고액 유치원에 집중됐다.

모든 사립유치원을 2년 안에 감사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지적도 있다. 실제로 지난 9일 도교육청이 발표한 ‘2019년 사립유치원 감사 1/4분기 진행 상황’에 따르면 지난 1월부터 3월까지 종합(특정)감사를 받은 사립유치원은 총 28곳이다. 지금과 같은 속도라면 2년 동안 사립유치원 224곳이 감사를 받는다는 계산이 나온다. 전체 유치원 숫자의 1/4도 안 되는 수준이다.

시민단체 관계자는 교육청 감사가 ‘수박겉핥기식’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김한메 ‘전국유치원학부모 비상대책위원회’ 위원장은 “학부모들은 사립유치원 부정행위를 막을 수 있는 교육당국의 실효성 있는 대책을 원한다”면서 “그러나 현행 최대 5일 동안의 감사는 사립유치원의 방대한 자료를 확인하기에 터무니없이 부족한 시간”이라고 비판했다.

도교육청이 내세운 전수 감사 공약에 대해서도 김 위원장은 “2년 내 945개의 사립유치원을 모두 전수 감사한다는 것은 처음부터 실현하기 어려운 비현실적인 목표”라며 “오히려 감사 기간이 축소되는 등 부작용이 발생했다. ’보여주기식’이 아닌지 의심된다”고 꼬집었다.

도교육청 측은 “소규모 유치원까지 감사받을 수 있도록 교육지원청 인력까지 투입해 감사를 진행 중”이라며 “2년 내 전수조사가 비현실적이라는 지적은 동의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기획취재팀 민수미, 정진용, 이소연, 신민경 기자 spotlight@kukinews.com/ 사진=박태현 기자 pth@kukinews.com

민수미, 정진용, 이소연, 신민경 기자
jjy4791@kukinews.com
민수미, 정진용, 이소연, 신민경 기자
이 기사 어떻게 생각하세요
  • 추천해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추천기사
많이 본 기사
오피니언
실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