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측불허’. 록 밴드 YB의 보컬 윤도현은 팀의 열 번째 정규음반을 만드는 동안 이 단어를 머리에 새겼다고 한다. 그는 판박이 같은 표현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자주 쓰는 코드 진행을 뒤틀기도 해보고, 음악 안에 ‘공간’을 만드는 방법도 고심했다. 두 달여간 경기 양평의 산자락에 틀어박혀 음악만 만들던 그가 마침내 결과물을 손에 들고 하산한 날, YB의 다른 멤버들은 낯선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절망이나 절박함 같은…산속에서 작업한 분위기가 물씬 났어요.”(박태희) 최근 서울 동교로의 한 카페에서 만난 YB가 들려준 얘기다.
윤도현은 산에서 머무는 동안, 자신의 음악관을 스스로 전복시켰다. “누가 보면 ‘저 사람 약간 이상한 거 아니야?’라고 생각할 정도로” 괴상한 멜로디를 써보고, ‘이건 노래가 아닌 것 같아’라고 여겼던 방식으로 노래를 불러보기도 했단다. 윤도현은 ‘솔직함’에서 희열을 느꼈다. “저의 나약함이나 드러내고 싶지 않았던 것들을 음악으로 끌어내는 게 재밌었어요. 제가 저를 솔직하게 드러냈기 때문에, 제가 만든 음악에 제가 위로받을 수 있었죠.”(윤도현)
윤도현이 써온 노래를 받은 YB 멤버들은 “밥을 맛있게 만들자는 자세”(박태희)로 수정 작업에 뛰어들었다. 편곡과 가사를 바꾸길 수차례. ‘반딧불…그 슬픔에 대한 질문’은 노랫말을 고치는 데만 몇 달이 걸렸다. “만약 예전과 비슷한 록이 나왔으면 ‘(우리가) 여기까지인가’ 했을 거예요. 그런데 ‘어떻게 바뀔 것인가, 혹은 어떻게 지킬 것인가’를 같이 고민하게 해준 것 자체가 신선했어요.”(김진원) 박태희는 음악을 완성해가면서 ‘윤도현이 왜 이런 가사와 멜로디를 썼을까’를 이해할 수 있었다고 했다. YB의 정규 10집 ‘트와일라잇 스테이트’(Twilight State)는 그렇게 세상에 나왔다.
YB는 이달 30일부터 내달 1일까지 서울 이태원로 블루스퀘어 아이마켓홀에서 정규 10집 발매 기념 콘서트를 연다. 윤도현은 “무대에선 마구 비뚤어지려고 한다. 내가 미칠 수 있는 한계를 자꾸 느껴보고 싶다”고 말했다. 그의 비뚤어짐은 “나를 솔직하게 다 드러내는 것”에서 시작한다. 그리고 이는 정반합의 과정을 거쳐 하나의 음악이 된다. 박태희는 “이런 솔직함 때문에 어려움도 많았다”면서 “솔직함이 충돌로 가고, 그게 절제된 솔직함으로 가서 지금의 YB가 된 것 같다”고 말했다.
“우리의 음악적 철학을 한 마디로 설명하긴 힘들어요. 흔히 우리를 얘기할 때 ‘희망’ ‘위로’ ‘사랑’을 떠올려 주시지만, 그건 듣는 분들의 몫이라고 봅니다. 그저 우리가 일상에서 느끼는 것들을 솔직하고 과감하게 드러내는 게 우리의 철학이면 철학이에요. 그리고 그 솔직함은 100%여야겠죠. 100% 이야기하지 못할 거면 말하지 않는 게 낫지 않겠어요?”(윤도현)
‘윤도현밴드’로 시작해 음악 외길을 걸은 지도 어느새 25년. ‘국민 밴드’로 이름을 떨친 2000년대 초반을 지나온 뒤에도 밴드는 생명력을 잃지 않았다. ‘나는 나비’(2006), ‘흰수염고래’(2011) 등 ‘중년’ 뮤지션이 돼서도 끊임없이 히트곡을 쏟아냈다. 윤도현은 쑥스러운 듯 웃으며 “항상 현장에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박태희는 팀의 존재 이유를 폴란드에서 열리는 ‘폴&록 페스티벌’에 비유했다. ‘폴&록 페스티벌’은 아티스트와 제작자 모두 ‘노 개런티’로 참여하는, 유럽 최대 규모의 음악 축제다.
“그 축제의 주제가 사랑과 평화에요. 한편으론 너무나 평범한 단어잖아요. 그런데 거기 모인 아티스트들의 이야기와 음악, 그리고 그들에게 공감하는 대중의 모습이 사랑과 평화, 우정 그 자체였어요. 우리의 존재 의미도 거기에 있는 것 같아요.”(박태희)
“와이 비(Why Be), 우리가 왜 존재하느냐. 내가 존재하니까 YB가 있고 YB가 있어서 내가 존재한다. 요즘 그런 생각이 뼈저리게 와닿아요. 25주년이고, 열 번째 음반이고, 난 아직 드럼을 치고 있고… 그것 자체가 요즘엔 은은한 감동으로 느껴집니다.”(김진원)
이은호 기자 wild37@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