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2001년 아내의 만성골수성백혈병 진단과 최초의 표적치료제 ‘글리벡’ 복용을 계기로 환자단체에서 활동하고 있다. 그동안 만성백혈병치료제 글리벡·스프라이셀 등의 약값 인하와 건강보험 급여화 운동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생명과 직결된 신약을 빠르게 등재하는 방법을 터득했다. 그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식약처 허가를 받은 생명과 직결된 신약의 건강보험 급여 등재를 추진 중인 “제약사”를 상대로 정부가 수용할 수 있는 적정한 가격으로 약값을 인하하라고 요구하는 모습을 환자나 환자단체가 “국민”에게 보일 때 신약의 건강보험 급여 등재가 빠르게 이루어졌다.
결국 약값을 높게 받으려는 제약사와 약값을 낮게 주려는 정부 간의 이해의 간극이 크기 때문에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약제급여평가위원회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건강보험공단과 제약사 간 약가협상이 결렬된다. 환자나 환자단체가 제약사 앞에서 기자회견이나 집회를 하고, 이들의 간절하면서 정당한 목소리가 언론방송을 통해 기사와 뉴스로 보도되어 이슈화 되면 당연히 건강보험심사평가원·보건복지부·청와대·국회 더 나아가 국민까지 관심 갖게 된다.
물론 환자나 환자단체에 큰 부담이 될 수 있는 제약사 앞 기자회견이나 집회를 꼭 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환자나 환자단체에서 제약사에 의견서를 제출하거나 청와대에 국민청원을 하거나 언론사에 독자 투고를 하는 등 제약사에 대해서도 이윤보다는 생명을 우선시하는 재정 분담을 요구하는 목소리를 내는 것이 중요하다.
신약의 약값 결정에 관여된 공무원은 본인의 돈을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건강보험 재정을 사용해 환자들이 적절하게 치료받을 수 있도록 하는 권한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이들 공무원들이 효과와 안전이 검증된 생명과 직결된 신약을 필요로 하는 환자들에게 신속한 건강보험 급여화를 통해 치료받도록 해주지 않을 이유가 전혀 없다. 다만, 국민의 건강보험료로 조성된 건강보험 재정을 함부로 쓰면 늘 언론방송 기자와 국회와 시민단체의 문제제기에 직면하기 때문에 이러한 감시의 눈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이유로 보건복지부·건강보험심사평가원·건강보험공단의 약가 담당 공무원은 제약사에 대해서는 약값을 인하하라는 목소리는 내지 않고, 정부에만 신속한 건강보험 급여화를 요구하는 환자와 환자단체보다는 제약사에 대해서도 약값을 적정한 수준으로 인하하라는 목소리를 내면서 정부에 대해서도 신속한 건강보험 급여화를 요구하는 환자와 환자단체의 목소리에 더 귀 기울이는 것은 인지상정(人之常情)이다. 이 단순한 상식을 일부 환자나 환자단체가 모른다는 사실이 늘 안타깝다.
환자와 환자단체가 목소리를 내어야할 대상이 궁극적으로는 제약사도, 청와대도, 보건복지부도, 건강보험심사평가원도, 건강보험공단도 아니고 ‘국민’이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국민이 매년 국민 전체의 건강을 위해 낸 건강보험료로 조성된 건강보험 재정을 사용하기 위한 가장 쉬운 방법은 건강보험 재정에 돈을 내고 있는 국민을 설득해야 한다는 사실을 꼭 기억해야 한다. 국민이 안 보는 것 같아도 생명과 직결된 신약의 건강보험 급여 등재 뿐 만 아니라 건강보험 재정이 투입되는 모든 과정과 이슈를 언론방송을 통해, 국회를 통해, 다 보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안기종 한국환자단체연합회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