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어린이집의 아동 학대 사건이 잇따르자 일각에서는 보호자가 어린이집 CCTV를 쉽게 볼 수 있도록 개선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머리채 잡아끌고 때리고…보호하랬더니 학대한 교사들
9일 엄마들이 주로 활동하는 맘카페 등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최근 아동 학대가 발생한 인천 서구 A 국공립 어린이집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는 글이 쏟아지고 있다. 회원들이 관련 기사를 첨부해 올린 게시글 마다 다른 회원들이 어린이집의 초성과 지역, 설립연도 등 정보를 댓글로 올리며 공유하고 있다.
맘카페 회원들은 "아이들이 대체 무슨 죄가 있나" "이런 일 보면 어린이집 무서워서 못 보내겠다" "부모님 눈에서 피눈물 나겠다" 등 반응을 보이며 함께 분노했다.
엄마들의 분노를 부른 이 사건은 인천시 서구에 있는 A 국공립 어린이집의 20∼30대 보육교사 6명이 지난해 11∼12월 어린이집에서 자폐증 진단을 받거나 장애 소견이 있는 5명을 포함한 1∼6세 원생 10명을 학대한 사건이다. 이들은 아동학대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 혐의로 경찰에 입건됐으며, 어린이집 원장도 관리·감독과 주의 의무를 다하지 않은 혐의(아동복지법 위반)로 입건돼 경찰 조사를 받았다.
학대 가해자인 보육교사들은 경찰에 넘겨졌지만, 피해 아동들은 상처를 지우지 못했다. 학대 피해 아동의 부모들은 길거리로 나와 학대 피해 아동에 대한 지원책 마련을 호소했다.
25일에 불과한 등원 기간에 무려 148건의 학대를 당했다는 자폐 아동 부모는 전날 인천 서구청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장난감을 만지고 놀면 여러 명의 교사가 한꺼번에 달려와 주먹으로 얼굴을 수없이 내리치고 얼굴을 가리며 도망치고 있는 아이를 뒤쫓아와 때렸다"고 분노했다.
이어 "학대 영상을 본 뒤 지난 여름 담임교사가 우리 아이를 보고 '너무 예쁘니 긴 머리를 자르지 마세요'라고 했던 말이 아이의 머리채를 끌고 다니려고 했던 것이란 걸 깨달았다"며 "아팠던 기억이 지워지길 바라는 마음에 집에서 아이의 머리를 단발로 잘라줬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이 학부모는 또 "(보육교사들은) 아이를 돌봐야 할 점심시간에 같이 둘러앉아 고기를 구워 먹었다"며 "아이들은 매트 위에 모여 앉아서 노트북으로 미디어 영상을 바라보며 방치돼 있었다"고 말했다.
학대 피해 아동의 부모는 아이가 학대로 인한 트라우마로 매일 밤에 잠이 들 때까지 2∼3시간 동안 울고 있으며 몸을 바닥에 던지는 등 자해 행동도 하고 있다고 전했다.
인천 장애인차별연대 등 4개 단체는 "지금까지 경찰 수사에 따르면 CCTV를 통해 확인된 학대 건수는 무려 268건이나 되고 이 모든 학대에 6명의 보육교사 전원이 가담한 것으로 확인됐다"며 특히 자폐성장애를 가진 아동 두 명에게 학대가 집중됐다고 밝혔다. 지난 3일 청와대 국민청원에 '인천 서구 국공립 아동학대 사건 구속수사 해주세요'라는 제목으로 올라온 글은 최근까지 2919명이 동의했다.
◇"질 높은 공공보육이라더니…국공립도 못 믿겠다" 부글부글
국공립 어린이집 아동 학대 논란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해 11월에는 울산 남구 한 국공립 어린이집에서 보육교사가 3살 아이에게 12분 만에 물 7컵을 마시게 하고 친구들이 먹고 남은 잔반까지 먹이는 등 학대한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해당 사건은 경찰 재수사에서 83건에 이르는 추가 학대 정황이 확인됐다. 또 다른 아동에 대한 학대 정황도 추가돼 선고가 현재 연기된 상태다.
이 사건과 관련해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는 전날 검찰에 "3살 아이에게 거의 매일 13분 동안 7컵의 물을 억지로 마시게 했다면, 혈중 나트륨 농도가 떨어지고 물이 뇌세포로 이동하면서 뇌가 부어 자칫 사망에 이를 수도 있다"는 전문가 의견서를 제출, 살인미수 혐의가 적용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잇단 국공립 어린이집의 아동 학대 논란에 부모들은 분노를 감추지 못하고 있다. 국공립 어린이집은 장애아보육, 시간연장보육 등을 포함한 취약 보육을 우선적으로 실시해 부모들의 선호도가 상대적으로 높다. 교사의 질이나 시설이 다른 민간 어린이집보다 나을 것이라는 부모들의 기대 때문에 오랜 기간 입소 대기를 해야 할 만큼 인기가 있다.
오는 3월 시립 어린이집에 자녀 입소를 앞둔 유모씨(37)는 "국공립, 시립 어린이집은 민간 어린이집보다 관리가 잘 될 거라 기대했는데 (최근 사건을 보니) 너무 걱정된다"면서 "힘없는 아이들을 상대로 너무 잔인하다"고 비판했다.
두 아이를 둔 김모씨(38)는 "국공립이나 시립 민간 등이 중요한 게 아니라 원장, 보육교사를 잘 보고 원을 선택해야겠다"면서 "왜 아이를 좋아하지도 않으면서 보육교사 자격증을 취득하고 그 직업을 택한 건지 이해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어린이집 CCTV 상시화" 요구 봇물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2019 아동학대 연차보고서'에 따르면 한 해 동안 어린이집과 유치원에서 각각 1371건, 139건의 학대 행위가 발생했다. 보육기관에서 하루 평균 4건의 아동 학대가 발생한 것이다.
아동학대 여부를 가려내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게 바로 CCTV다. 지난 2015년 개정된 영유아보호법에 따르면 모든 어린이집은 CCTV가 의무화되고 보호자가 자녀의 안전을 확인할 목적으로 영상을 열람하고자 하면 규정에 따라 볼 수 있다.
영유아보육법 시행규칙은 '열람 요청을 받은 날부터 10일 이내에 열람 장소와 시간을 정하여 보호자에게 통지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지만 정작 CCTV를 보려면 여간 까다로운 일이 아니다.
경찰청이 지난 2019년 배포한 '아동학대 수사 업무 매뉴얼'에 따르면 수사 과정에서 CCTV 열람 시 피해자는 물론 피의자를 포함한 모든 이의 동의가 필요하다. 만약 한 사람이라도 동의하지 않는다면 동의한 사람만 나오는 영상 위주로 일부 공개 또는 비식별화 조치(모자이크)를 해야 한다. 가해자를 포함한 영상 속 모든 이의 동의를 얻기도 쉽지 않거니와 비식별화 조치 비용도 만만치 않다.
실제 지난달 아동학대를 의심한 학부모가 어린이집 CCTV 열람을 요청하자 경찰이 비식별화 조치에 약 1억원의 비용이 든다고 통보해 논란이 일기도 했다. 법으로 CCTV 설치를 의무화했음에도 실효성이 없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어린이집 CCTV 열람을 언제든 쉽게 할 수 있도록 한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청와대 국민청원에는 전날 '어린이집 CCTV 실시간 조회를 위한 관련 법 제정 요청 드립니다'라는 글이 올라왔다.
청원인은 "모든 사건, 사고가 발생된 이후 형사법에 의한 관련자 처벌로 끝나면 결과적으로 잘 끝났다고 말 할 수 있을까"라면서 "이제는 모든 국공립, 개인 어린이집에서 학부모들이 실시간으로 어린이집 CCTV를 모바일이나 다양한 매체로 조회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갖추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동 학대에 대한 사후 조치가 아닌 예방 측면에서 CCTV 열람 상시화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해당 청원은 현재 이날 오후 3시 40분 기준 441명의 동의를 얻었다. 지난해말에도 어린이집 CCTV 열람의 상시화를 요구하는 국민청원이 올라와 2964명의 동의를 얻기도 했다.
jihye@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