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 박용주 기자 =조선 후기 실학자 이재 황윤석(1729~1791)이 필생의 역작으로 남긴 백과전서(百科全書) ‘이재난고(頤齋亂藁)’ 일부가 고향인 전북 고창군으로 돌아온다.
26일 고창군에 따르면 이재 황윤석의 8대 종손인 황병무씨가 ‘이재난고’와 ‘이재유고 목판’ 100점을 최근 고창군에 기탁·기증, 30일 이재와 후손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기념행사를 가질 예정이다.
이재난고는 실학자 이재(頤齋) 황윤석이 열 살 때부터 세상을 뜨기 이틀 전까지 53년 동안 배우고 경험한 다양한 정보를 상세히 기록한 일기다.
전북도 유형문화재 제111호인 이재난고는 50여책, 6000장 정도의 내용으로 현존하는 조선시대 일기류 중에서도 방대한 내용을 담은 저작물로, 책마다 쓰기 시작한 연대와 끝낸 연대를 기록하고 ‘난고(亂藁)’ 또는 ‘이재난고’라는 표제를 달았다고 알려져 있었다.
그러다 학계를 중심으로 이재난고는 애초 60책으로 이재의 수고본 2책을 더해 62책이라는 주장이 제기됐고, 이 가운데 47책의 일기를 1994년부터 2003년까지 한국정신문화연구원에서 이재난고 9책으로 발간해 연구에 활용하고 있다. 이 일기만도 400만자에 달하는 방대한 양을 담고 있다, 62책 전체는 약 530만자 정도일 것으로 추산된다.
특히 이재난고는 조선 후기 ‘과학자의 연구 노트’로 불릴 정도로 정치, 경제, 과학, 역사, 사회, 문화, 언어 등 전 부분에 대한 기록을 담고 있다.
이재난고에는 조선 후기 양반 지식인이 살아온 궤적도 여실히 드러난다. 당시 쌀값이나 국밥 가격 등 물가 변동까지 알 수 있을 정도다. 그는 여행하면서도 마을 이름을 한자와 한글로 나란히 병기했고, 식물, 광물, 기물의 이름도 한자와 한글을 나란히 적어 뒀다.
특히 그는 정읍의 이언복이 60냥에 구입한 자명종을 18세에 구경한 후 1761년(영조 37)나경적이 제작한 자명종을 직접 봤으며, 1774년(영조 50) 염영서를 통해 선급금 5냥을 주고 구입했다는 내용도 적어 뒀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고장이 나서 직접 수리하려다 실패하고 이후 수리비 4냥을 더 주고 고쳤다는 내용도 있다.
고향인 고창에 대한 기록도 많은데 당시 생활 모습을 엿볼 수 있다. 대표적인 사례로 당시 고창(흥덕)에서 서울까지 6박 7일 걸린 노정(路程: 580리)과 여행일지, 경승지나 유적지 등을 돌아본 내용도 있다.
또 충청도 진천과 경상도 상주에서 호랑이로 인한 피해 상황과 호랑이 사냥 관련 현상금(큰놈 100냥, 중간놈 50냥, 작은놈 30냥), 하루에 20여 마리를 잡았다는 내용과 1768년(영조 44) 7월에 과거시험을 본 날 점심으로 일행과 냉면을 시켜 먹은 내용, 주막 국밥값 3전, 고급 누비솜옷 4냥, 평민의 누비솜옷 2냥, 말 한 마리 40냥과 말을 대여할 경우 100리마다 1냥 7전, 전의현감 월급 15냥 등이 기록돼 있다. 이재난고를 두고 조선후기 생활문화를 들여다 볼 수 있는 ‘조선시대 타임캡슐’로 불리는 이유다.
고창군은 이재난고의 국가지정문화재 ‘보물’ 승격과 과학기술정보통신부(국립중앙과학관)의 ‘국가중요과학기술자료’로 등록 등을 추진해 나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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