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값 폭락 등으로 농민들이 어려움에 빠진 사이 농협금융지주가 경제관료 출신인 이석준 회장을 새로운 수장으로 맞이했다. 농협금융 회장은 농민지원을 위해 농협금융의 실적을 책임져야 하는 자리다. 실물경제가 점차 악화되는 상황에서 새로 농협금융의 사령탑에 오른 관료 출신 회장의 역할에 농협 안팎의 이목이 집중된다.
26일 금융권에 따르면 국내 주요 금융그룹들은 올해 고금리와 실물경제 악화에 대비해 건전성 관리를 강화하고 있다. 전임 농협금융 회장도 올해 신년사에서 “글로벌 인플레이션 장기화, 기준금리 인상으로 인한 가계대출 부실화 가능성 등으로 경기위축이 우려되고 있다”고 말한 바 있다. 그동안 금리인상에 기대 순익 증가를 꾀하던 금융사 입장에서 경제 악화와 부실 증가라는 걸림돌이 등장한 셈이다.
금융환경 변화에 따라 성장에 빨간등이 들어온 상황에서 농협금융은 경영책임자인 회장을 내부 출신에서 경제관료 출신으로 교체했다. 새로 취임한 이석준 회장은 재무부 출신의 ‘예산통’으로 국무조정실장을 역임했으며, 윤석열 대선캠프 영입 1호 인사이다. 금융권에서는 이를 두고 낙하산 인사라는 지적과 함께 경제 관료의 경영능력에 대한 의문을 꾸준히 제기하고 있다.
보수 7억원, 경제관료들 ‘군침’
농협금융지주 회장 자리는 경제관료들 사이에서 민간 금융사 경영을 경험해 볼 수 있다는 점에서 놓은 평가를 받는다. 앞서 임종룡 전 금융위원장이 농협금융회장을 거쳐 금융위원장에 임명되면서 그 위상이 높아졌다. 또한 임 전 위원장은 현재 농협금융회장 경력을 바탕으로 우리금융회장 자리에 도전하고 있다.
여기에 높은 보수도 경제관료들의 선택을 부추기고 있다. 농협금융 회장의 보수는 기본급과 성과급, 경영활동비를 합쳐 연 7억원이 넘어간다. 2020년 기준 공기업 기관장 평균연봉은 2억1512만원, 준정부기관 기관장은 1억8485만원, 기타공공기관 기관장은 1억7196만원이다. 농협금융지주 회장 보수가 공기업 기관장 평균 연봉의 3배를 넘어가는 수준이다.
물론 높은 보수에 대한 비판도 적지 않다.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안호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2021년 금융지주 회장이 기본보수는 3억2900만원에 성과보수는 3억9500만원을 받은 점을 지적하며 “코로나로 신용사업, 경제사업 수익은 급증했지만, 조합의 주인인 농민들은 점점 더 가난해지고 있다. 신용사업의 역대급 수익을 농민에게 일부분 환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고액 경제관료 경영 성과는
이석준 회장을 제외한 역대 6명의 농협금융 회장 가운데 4명이 경제관료 출신이다. 신동규 2대 회장, 임종룡 3대 회장, 김용환 4대 회장, 김광수 5대 회장 등 4명의 경제관료가 회장을 역임하는 동안 농협금융의 순익은 4918억원에서 1조7359억원으로 성장했다.
전임 경제관료 출신 회장들의 실적은 천차만별이다. 첫 경제관료 출신 회장인 신동규 2대(2012년~2013년) 회장은 임기를 1년 남기고 “농협금융은 제갈공명이 와도 안 된다”는 말을 남기고 중도 사퇴했다. 신동규 2대 회장이 후임인 임종룡 3대 회장에게 자리를 물려주던 2013년 농협금융의 순익은 2930억원으로 출범 첫해(2012년) 대비 40% 급감했다.
임종룡 3대 회장은 임기 첫해(2013년) 2930억원의 순익을 기록한 이후 금융위원장 내정으로 2015년 자리에서 물러났다. 2015년 농협금융의 순익은 4023억원으로 증가했다. 다만 출범 첫해 순익 4918억원과 비교하면 18%가량 감소했다.
농협금융의 순이익이 본격적으로 성장한 것은 김용환 4대 회장과 김광수 5대 회장 시절이다. 김용환 4대 회장은 취임 첫 해 4023억원이던 순익을 부실채권 정리를 통해 1조2189억원까지 끌어올렸고, 김광수 5대 회장은 이를 다시 1조7359억원까지 증대시켰다.
농협 내부에서도 역대 경제관료 출신 회장들에 대한 경영성과 평가는 엇갈린다. 일각에서는 농협금융의 금융시스템 안착에 기여했다는 평가가 나오는 반면 농협금융 회장은 경영과 무관하게 정부와의 소통창구 였다는 평가도 나온다.
농협금융 관계자는 “농민 지원이라는 농협의 특성에 따라 정부와의 소통을 강조해 왔다”며 “금융지주 회장에 경제관료 출신들이 선호된 것은 정부와의 소통을 강화하겠다는 취지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농협금융에 부족한 금융시스템을 보강하기위한 목적도 사실”이라고 덧붙였다.
금융통? 예산통? 애매한 이석준 역할
새로 취임한 이석준 회장은 낙하산 논란을 성과로 돌파하겠다는 방침이다. 그는 앞서 첫 출근 길에 관치 금융 및 낙하산 인사 논란에 대해 “제가 안고 가는 문제이기 때문에 열심히 해서 (성과로) 보여주겠다”고 말했다. 이어 “금융지주회사가 됐기 때문에 이제 내실을 다지고 실질적으로 진짜 지주의 역할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금융지주 회장으로서 금융지주의 역할을 확대하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그는 취임 이후 가진 첫 경영전략회의에서도 “각자가 맡은 업무부터 1등이 되면 그러한 1등이 모이고 모여 농협금융이 초일류 금융지주가 될 수 있다”며 성과 창출에 대한 의지를 강조했다.
다만 농협금융 안팎에서 그의 경영능력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구심이 제기되는 상황이다. 더욱이 국무조정실장을 역임하기 앞서 이 회장이 주로 정부 예산 관련 업무를 담당했던 만큼 은행을 중심으로한 금융분야에 대한 이해도가 과거 회장들 보다 떨어진다는 지적도 나온다.
앞서 신동규 2대 회장과 김용환 4대 회장은 농협금융 회장으로 활동하기 앞서 수출입은행장을 역임하며 은행장 경험을 쌓았고, 임종룡 3대 회장은 재경부 은행제도과 과장부터 금융정책과 과장을 거쳐 금융정책국 금융정책심의관을 역임하는 등 금융정책 분양에 전문가로 평가받았다. 김광수 5대 회장 역시 재정경제부 금융정책과 과장, 금융위원회 금융서비스 국장, 금융정보분석원장을 역임하며 금융통으로 분류되기는 마찬가지다.
반면 이 회장은 기획예산처 행정재정기획단장, 기획재정부 행정예산심의관과 경제예산심의관, 예산실장을 역임한 예산 전문가로 평가된다. 이에 농협금융 안팎에서 농협금융 성장에 있어 이 회장의 역할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농협금융 한 관계자는 “신임 회장이 농협금융에 어떠한 기여를 할지 아직 확신이 없다”며 “본인이 발언한 대로 성과로 입증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조계원 기자 chokw@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