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다 없는데 왜 재밌어? ‘일타 스캔들’ [권해요]

사이다 없는데 왜 재밌어? ‘일타 스캔들’ [권해요]

기사승인 2023-02-01 07:00:07
tvN ‘일타 스캔들’ 포스터

언뜻 tvN ‘일타 스캔들’은 최치열(정경호)을 주인공으로 한 히어로물처럼 보인다. ‘1조원의 남자’라 불릴 만큼 막대한 부를 가진 건 기본. 수업을 마치면 선물을 주려고 그를 쫓아오는 팬들을 막아야 할 정도로 대단한 인기를 자랑한다. 학생과 하이파이브 한 번만 해도 실시간 검색어 1위를 기록하는 등 일거수일투족이 학생들과 학부모들의 관심사다. 업계 1위인 만큼 학원업계에 미치는 영향력도 상당하다. 그럼에도 학생들을 먼저 생각하는 따뜻한 마음은 응당 히어로가 갖춰야 할 미덕이다. 최치열을 상징하는 주무기가 발차기인 건 상징적이다. 그를 시기하는 빌런 같은 동료 강사들이 곳곳에 존재한다. 돈과 힘, 인기를 모두 거느린 최치열이 그의 능력을 활용해 어떤 활약을 보여줄지 기대하는 건, 히어로물을 볼 때 갖는 마음가짐과 비슷하다.

‘일타 스캔들’은 쉬운 길을 가지 않는다. 남해이(노윤서)가 올케어반에서 밀려난 사건이 대표적이다. 최치열은 공정한 테스트를 거쳐 올케어반에 뽑힌 남해이가 학부모들의 뒷공작으로 제외된 걸 눈치 챈다. 더러운 일에 질색하는 최치열은 올케어반을 맡지 않겠다고 공언하며 학원 대표와 줄다리기한다. 이제 히어로 최치열이 정의의 사도처럼 전면에 나설 타이밍이다. 그가 어떻게 위기에 빠진 남해이를 빌런들로부터 구출할지 시선이 쏠린다.

하지만 판타지는 없었다. 남해이는 학원에서 쫓겨난다. 엄마인 남행선(전도연)이 1인 시위까지 하며 저항하지만, 결국 블랙리스트에 올라 올케어반은 물론 최치열 수업도 듣지 못하게 된다. 최치열은 그 모습을 멀리서 바라만 보며 죄책감에 시달린다. 6회에서 남재우(오의식)가 오해를 받아 경찰서에 잡혀간 장면에서도 마찬가지다. 재우를 고소하겠다는 이에게 누나인 남행선(전도연)은 무릎을 꿇고 눈물 흘리며 사과한다. 그 모습을 최치열은 또 바라만 본다. 만약 전형적인 한국 드라마 남자 주인공이었으면 사건을 해결하든 못하든 일단 사건에 뛰어들고 봤을 거다.

tvN ‘일타 스캔들’ 현장 스틸컷. tvN 홈페이지

‘일타 스캔들’는 로맨스도 쉽게 가지 않는다. 반찬가게 사장이자 남해이의 보호자인 남행선은 최치열의 재력이나 힘, 인기에 별다른 매력을 느끼지 못한다. 그에겐 매일 새벽부터 반찬을 만들어 매출을 올려야 하는 자영업자로서의 현실, 곧 고3이 될 해이의 성적을 신경 쓰는 부모로서 역할이 중요하다. 새 휴대전화로 보상 받는 것보다 진심 어린 사과가 더 중요하다고 말하고, 최치열이 사는 펜트하우스에선 방 개수보다 텅 빈 냉장고와 침대 옆 침낭에 눈길이 가는 인물이다. 히어로 최치열이 아닌 평범한 인간 최치열로서 남행선과 동등한 위치가 됐을 때에야 로맨스가 꽃핀다. 최치열이 남해이의 교육을 위한 히어로가 되면 상황은 코미디로 급변한다.

최치열이 아무것도 안 하는 건 아니다. 최치열은 불합리한 일을 당한 남해이를 위해 무료 비밀 과외를 제안한다. 원인을 제공한 학부모를 색출하거나 부정을 용인한 학원과 맞서 싸우는 대신,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 잡는 그만의 해결책이다. 경찰서에서 나온 행선이 혼자 편의점 앞에서 술 마시는 모습을 지나치지 못하고 같이 마셔주기도 한다. ‘일타 스캔들’은 최치열을 통해 한방에 해결하는 속 시원한 사이다를 주는 대신 한 걸음 더 다가가 곁에 있어 주며 이렇게 말하는 듯하다. 허황된 판타지보다 따뜻한 현실이 낫지 않냐고. 과거로 회귀해 부와 명예를 얻고, 대단한 능력으로 사건을 척척 해결하는 주인공들이 판치는 최근 드라마 트렌드를 거스르는 드문 작품이다. 이제 6회까지 방영한 ‘일타 스캔들’을 그 어떤 드라마보다 편한 마음으로 볼 수 있는 이유다.

이준범 기자 bluebell@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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