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금융지주 이사회에서 ESG경영의 핵심인 사외이사가 줄어들고 있다. 신한금융지주와 우리금융지주가 사외이사 축소를 결정했으며, NH농협금융지주는 이순호 사외이사가 예탁결제원 사장 내정으로 사임했다. 법률·회계·소비자보호 등 각 분야의 전문가인 사외이사는 이사회의 전문성을 보강하고 있는 만큼 사외이사 축소가 이사회의 전문성은 물론 다양성을 떨어트릴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4일 금융권에 따르면 신한금융은 오는 23일 열리는 주주총회를 통해 사외이사 규모를 기존 12명에서 9명으로 축소할 예정이다. 신한금융은 이날 주총에서 진옥동 신한금융 회장 내정자의 사내이사 선임 안건과 함께 8명의 이사후보에 대한 재선임 안건을 올렸다. 지난해 말 신한금융의 사외이사는 총 12명이었다. 이 중 변양호 VIG파트너스 고문이 올해 초 자진해서 사퇴했으며, 나머지 11명의 사외이사 중 10명이 임기 도래를 눈앞에 둔 상황이었다. 이 가운데 박안순 일본 대성상사 회장과 허용학 퍼스트 브릿지 전략 대표사가 사임하기로 하면서 8명의 재선임 안건만 주총에 상정됐다.
우리금융도 사외이사 규모가 7명에서 6명으로 축소한다. 우리금융은 사외이사 7명 중 4명의 임기가 만료되는 가운데 노성태, 박상용, 장동우 이사가 사의를 표명했다. 이에 우리금융은 지성배 한국벤처캐피탈협회 회장과 윤수영 키움자산운용 대표 등 2명을 임기 2년의 신임 사외이사로 추천했다. 경영 연속성을 위해 정찬형 이사는 1년 임기로 재추천했다. 나머지 한자리는 앞서 과점주주 중 한 곳인 한화생명이 지난해 6월 블록딜 방식으로 우리금융 지분 3.16% 전량을 매각하면서 자연스럽게 줄게 됐다. 농협금융도 사외이사 규모가 지난해 말 7명에서 이순호 사외이사의 최근 사임으로 6명으로 줄었다.
금융지주의 사외이사 축소에 따라 이사회 내 사외이사의 비율도 감소했다. 신한금융의 이사회 내 사외이사 비율은 86%에서 82%로, 우리금융은 78%에서 75%, 농협금융은 70%에서 67%로 줄게 된다. 이는 현행법에서 정하고 있는 사외이사 규모를 모두 충족하는 수준이다. 상법에서는 상장회사의 경우 이사 총수의 4분의 1 이상을 사외이사로 선임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자산 2조 원 이상의 대규모 상장회사의 경우 사외이사를 3명 이상으로 하고 이사 총수의 과반수가 되도록 강화된 기준을 적용하고 있다. 다만 미국 S&P500 기업 이사회의 사외이사 비율 86%에 비해서는 낮은 수준이다.
사외이사 규모 면에서 우려가 크지 않지만 이사회의 전문성과 다양성 하락은 피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예컨대 신한금융의 변양호 사외이사는 재정경제부 고위공무원 출신이자 대한민국 1호 사모펀드인 보고펀드의 대표이사를 역임한 경력을 바탕으로 이사회 내 리스크관리 분야의 전문성을 보강해 왔다. 허용학 사외이사 역시 홍콩중앙은행에서 대체투자부문 최고운용책임자(CIO)로 재직한 경력을 가져 투자와 리스크관리에 일조해 왔다. 이들의 공백은 신한금융 이사회의 전문성 하락을 의미한다.
금융권 관계자는 “최근 기업에 대한 요구가 다양해지고 있다. 단기적 이익을 넘어 환경과 인권 등 여러 이해관계자의 요구가 늘어나고 있다”며 “사외이사는 기업이 이러한 요구에 부응하고 장기적인 가치를 창출할 수 있도록 전문성을 바탕으로 조언자이자 감시자의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사회적 네트워크를 통해 기업의 경영을 지원하는 역할도 무시할 수 없다”고 말했다.
금융권에서는 적정 사외이사 규모를 두고 고심하는 분위기다. 사외이사를 늘릴 경우 기업 지배구조의 투명성을 높이고 이사회의 전문성과 다양성을 높일 수 있다. 하지만 사외이사 규모가 과도하게 늘어날 경우 의사결정 속도가 느려질 수 있기 때문이다. 신한금융 관계자도 이번 사외이사 축소에 대해 “신한금융의 사외이사 숫자가 타 금융사 대비 많다. 이사회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사외이사의 규모를 조정했다”고 설명했다.
한편 금융당국은 사외이사의 역할과 책임을 강화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금융위원회는 지난해 8월 내부통제 제도개선 태스크포스(TF)를 발족하고 올해 1분기 입법예고를 목표로 금융회사 지배구조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개정안은 금융회사 이사회가 경영진의 내부통제 관리업무를 감독하도록 이사회의 내부통제 감시·감독의무를 명문화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를 통해 이사회 주요 구성원인 사외이사의 역할과 책임을 강화하겠다는 계획이다.
조계원 기자 chokw@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