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일 저녁과 주말 예약은 접수 시작 20초면 끝나요”
예약은 전쟁이었다. 14일 오전 8시50분, 비장한 마음으로 노트북 전원을 켰다. 서울 신대방동 보라매공원테니스장 주말 예약을 위해서다. 하루 전 여유롭게 서울시 공공서비스 예약에 들어갔다 실패한 경험을 반복하지 않으려고 10분 일찍 준비를 시작했다. 오전 9시1분도 되기 전에 8팀 중 6팀 예약이 마감됐다. 9시1분이 되자 8팀 모두 채워졌다. 아직 한 달이나 남은 다음달 14일 일요일 보라매공원테니스장 3번 코트 예약이었다. 보라매공원 내 다른 6개 코트에도 빈자린 없었다. 다른 공공 테니스장의 주말 예약 상황도 비슷했다. “예약 오픈 20초 컷”이라는 보라매테니스장 관계자 말은 사실이었다.
봄바람을 타고 다시 높아진 테니스의 인기는 실내 테니스장도 마찬가지였다. 업계에 따르면 코로나19 확산 전 전국 100여개였던 실내테니스장은 지난해 500여개 안팎으로 늘었다. 최근엔 24시간 이용할 수 있는 무인 테니스장까지 생겼다. 접근성이 좋아지면서 많은 청년 직장인이 점심시간이나 퇴근 후, 혹은 주말 30분~1시간씩 짬을 내 실내 테니스장에서 라켓을 휘두른다. 수년간 테니스 클럽에서 활동한 김모(37)씨는 “(클럽에) 젊은 층이 대다수”라며 “주말 클럽 이외에 테니스를 치려면 예약할 수 있는 코트 찾기가 어려울 정도다. 정말 테니스 인기를 실감하는 요즘”이라고 말했다.
테니스 인구가 늘면서 테니스장을 구하는 것이 힘들어졌다. 코트 비용은 공립, 사설에 따라 차이가 크다. 공립은 보통 시간당 평일 1시간 기준 3000~4000원(주말·공휴일 5000~8000원)이다. 사설은 1시간당 2~5만원 사이다. 업계 추정에 따르면 국내 테니스 인구는 2021년 50만명에서 지난해 60만명으로 빠르게 증가했다. 하지만, 문화체육관광부의 ‘2022년 전국 공공체육시설 현황’에 따르면 전국 테니스장은 코로나19 발생 직전인 2019년 말 818곳(3919면)에서 2021년 말엔 856곳(4039면)으로 4.6% 늘어나는 데 그쳤다. 공공 테니스장이 예약 시작과 함께 마감되는 기현상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 상황인 셈이다.
예약을 위한 불법 매크로까지 등장했다. 온라인에서 ‘테니스 매크로 예약’을 검색하면 ‘1분 만에 예약을 도와준다’는 업체들의 광고가 쏟아진다. 이 때문에 많은 테니스장들이 예약 시 불법 매크로 사용 등 부정한 명령이나 정당한 접근권한 없이 정보통신망(예약시스템)에 침입하면 법적 처벌될 수 있다고 안내하고 있다. 불법 매크로와 특정 개인의 독점을 막기 위해 서울 한남동 한남테니스장은 지난달부터 평일 10회, 주말 4회로 월 이용 횟수를 제한했다.
청년들에게 부는 테니스 열풍을 두고 일각에서는 “인스타그램 자랑용” “테니스룩이 예뻐서” 등을 이유로 추측한다. SNS을 보면 테니스에 대한 청년 세대의 관심을 확인할 수 있다. 인스타그램에 ‘테니스’를 검색하면 100만개의 게시물이 쏟아진다. 보라색, 핑크색 등 형형색색의 예쁜 코트가 있는 테니스장은 연인들이 즐겨 찾는 데이트 장소로 꼽히기도 한다.
정작 테니스를 좋아하고 많은 시간을 투자하는 청년들은 ‘보여주기식’ 운동이 아니라고 입을 모은다. 시간과 비용, 엄청난 체력을 요구하는 운동인 만큼 단순히 청년들이 유행을 따라가는 것은 아니란 의미다.
“남편과 같이 복식 경기를 하려고 시작했어요. 처음엔 많이 다친다는 말에 걱정도 많았어요. 막상 해보니 정말 재밌더라고요. 남녀노소 전 세대가 어울려서 하기 좋은 운동이라고 생각해요. 실제로 단톡방을 통해 모르는 사람들과 만나 게임을 하면 다양한 연령대를 만나는 즐거움도 있고요” (이모씨·여·34·회사원)
“어릴 적 만화 ‘테니스의 왕자’를 보고 꼭 한번 해보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매월 18만원에 달하는 강습비는 부담이었지만요.”(박모씨·여·29·회사원)
“원래 운동을 좋아하는 편인데 코로나19로 실내에서 운동하지 못해 답답했어요. 테니스는 같이 게임하는 상대방과 접촉하지 않는 스포츠라서 시작하게 됐죠” (김모씨·남·37·회사원)
테니스를 시작하려면 보통 6개월가량은 꾸준히 연습하고 레슨을 받아야 한다. 그래야 야외 코트에서 다른 사람들과 경기를 할 수 있다. 보통 실내 테니스장에서 시작하면 보통 월 20만원(주 2회 기준) 안팎의 레슨 비용이 든다. 여기에 라켓, 공, 코트 대여료에 대한 지출도 필요하고 신발, 의류 등은 별도다. 수백만원대 골프채, 필드 예약, 그린피, 골프웨어, 강습비 등 비용 부담이 상당한 골프에 비하면 초기진입이 비용 저렴한 편이다.
전문가들은 대부분 테니스 연습장의 대여용 라켓으로 충분히 연습한 뒤 장비를 구매하는 것을 추천했다. 고가의 라켓보다는 20만원대 안팎 라켓으로도 충분하다. 야외 코트에서 경기할 때는 테니스화가 필요하지만, 처음 실내 테니스장에서 연습할 때는 운동화를 신어도 괜찮다.
임지혜 기자 jihye@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