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추행, 특수폭행 등 잇따른 의사들의 강력범죄로 의료계 안에서 자율정화를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일각에선 검찰 수사나 법원 판결과는 별개로 자체 징계 수위를 높여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26일 의료계에 따르면 지난 2021년부터 올해 초까지 함께 일하던 전공의와 간호사 등 10여명을 성추행, 성희롱한 혐의로 지난 4월 정직 5개월 처분을 받은 서울아산병원 A교수가 오는 9월 돌아온다.
피해자들은 A교수의 복귀 사실을 최근에서야 인지하고, A교수에 대한 고소, 고발을 고민 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서울아산병원은 향후 비슷한 사건이 발생하지 않도록 재발방지책 마련에 힘쓰겠다고 밝혔다. 서울아산병원 관계자는 “전 직원을 대상으로 성희롱 예방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며 “앞으로 교육을 더 강화할 계획이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피해자들과 A교수의 분리방안에 대해 “당직 근무와 교육 등 해당 과의 근무 스케줄을 사전에 조정할 계획이다”라고 덧붙였다.
전북대병원 B교수는 지난해 9월 회식 자리에서 전공의의 머리를 소주병으로 내려쳐 직무 정지 6개월에 진료를 금지하는 겸직 해제 징계를 받고도 최근 병원에 복직했다.
이에 대한의사협회는 지난 23일 B교수 사건을 상임이사회 서면결의를 거쳐 중앙윤리위원회에 회부했다. 향후 검찰 수사 결과를 참고해 사실관계를 바탕으로 처분 수위를 결정하겠다는 입장이다. 윤리위는 최고 수준 징계인 의사면허 자격정지 혹은 면허취소 처분을 보건복지부에 요청할 수 있다.
의료계 내부에선 추행, 폭행 등이 잇따라도 피의자에 대한 조치가 ‘솜방망이 처벌’에 그치고 있다는 탄식이 나오고 있다. 의료기관 자체 처분에 더해 의협이 강력한 추가 징계에 나서야 한다는 주장에 힘이 실린다.
의협 관계자는 “성범죄나 강력범죄를 저지른 의사가 현재 의협으로부터 받는 제재는 충분하다고 보지 않으며, 실효성에도 의문이 있다”며 “의사 신분을 악용한 범죄에 대한 징계 강화는 의협의 일관된 입장이었다. 범죄를 저지른 의사들을 더 엄격히 징계해 국민 진료권을 보호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의료인 징계 강화를 위해 정부와 국회도 제도 개선에 나서야 한다”면서 “현재의 법과 제도 안에선 의료계가 적극적인 자율정화에 나서기 어렵다. 강력한 자율정화가 이뤄지도록 의협에게 징계권을 부여해야 한다”고 피력했다. 대한변호사협회와 달리 의협을 포함한 의료인 단체들은 면허 신고를 대행할 뿐 자율징계권이 없다.
조승원 대한전공의협의회 부회장도 불미스러운 일로 징계를 받은 의사가 의료현장으로 돌아오는 일들이 반복되고 있는 점을 지적하며 전공의들이 안전한 환경에서 수련 받을 수 있도록 제도가 개선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 부회장은 “서울아산병원 A교수도 전북대병원 B교수와 마찬가지로 징계가 끝나면 병원으로 돌아올 가능성이 높다. 피해자들의 2차 피해로 이어지지 않을까 우려된다”며 “이런 일들이 관행처럼 되풀이되고 있어 조만간 대전협 차원에서 목소리를 낼 예정이다”라고 전했다.
정부는 오는 11월 시행되는 ‘의료인 면허취소법’(의료법 개정안)으로 일부 의료인에 의한 범죄가 억제될 것으로 기대하며 피해자 보호를 위한 상담센터 운영을 활성화하겠다는 입장이다.
지난 22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신현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서울아산병원 A교수에 대한 의료계와 정부의 단호한 대처를 요구한 데 대해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은 “현장과 전문가 의견을 듣고 개선방안을 만들도록 하겠다”고 답변했다.
조 장관은 “의료법 개정에 따라 의료인 결격사유가 모든 범죄로 확대됐기 때문에 11월에 시행되고 나면 이런 문제가 억제될 수 있을 것이다”라며 “이와 별도로 보건의료 인권침해 상담센터 활성화 조치를 강구하겠다”고 밝혔다.
신대현 기자 sdh3698@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