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위보다 무서운 가스요금…집 보일러를 껐다 [빼봤더니]

추위보다 무서운 가스요금…집 보일러를 껐다 [빼봤더니]

기사승인 2024-01-23 14:09:17
현재 우리 집 온도는 21도. 친환경 콘덴싱 보일러를 사용하고 있다. 사진=심하연 기자 

12월 가스요금 고지서를 받았다. 눈이 커졌다. 지난달은 이상하리만치 춥지 않아 보일러를 거의 틀지 않았는데도 1년 전 같은 달보다 2만원이나 더 나왔다. 칼바람 부는 오늘 같은 날씨가 이어지면 한파보다 다음 달 가스요금 고지서가 더 두려울 것 같았다.

지난해 12월 29일 통계청이 발표한 ‘2023년 12월 및 연간 소비자물가동향’에 따르면 관련 통계를 분리 작성한 2010년 이후 역대 최대 상승 폭을 기록했다. 도시가스비는 21.7%나 상승했다. 

주변에 물어보니 다들 가스요금 폭탄 고지서를 맞았다고 말했다. 유튜브에 ‘가스요금 줄이는 법’이라고 검색해 보았다. ‘가스요금이 가장 적게 나오는 보일러·온수 조작법’을 알려주는 영상부터 너무 추울 때는 온수매트나 전기장판을 이용하라고 조언하는 유튜버도 있었다. 4인 가구부터 1인 가구까지 가스요금을 1000원이라도 덜 내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었다. 댓글에는 잘 때 잠옷을 최대한 껴입고 잠들거나 난방텐트를 설치하라는 자취생 ‘꿀팁’들을 공유하고 있었다.

진짜 가스요금을 눈에 띄게 줄일 수 있을까. 일주일 동안 가스 없이 살아보기로 했다. 

잠을 잘 때는 수면양말에 바지, 잠옷까지 껴입었다. 사진=심하연 기자

실천할 수 있는 것은 많지 않았다. 방 보일러 끄기, 샤워·설거지할 때 온수 안 쓰기. 두 가지였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감기에 걸렸다. 가스는 생존의 문제였다. 지난여름 ‘빼봤더니’ 기사를 쓰며 전기 사용량을 줄이고자 에어컨을 끄고 살았을 때보다 훨씬 괴로웠다.

먼저 방 보일러를 껐다. 30분쯤 지나자 온기가 한 움큼도 남지 않았다. 옷을 껴입어도 어딘가 불편했다. 곧 이것이 기분 탓이 아님을 깨달았다. 보일러를 틀지 않고 차가운 매트리스 위에서 이불로 몸을 둘둘 말고 자고 있으니 자연스럽게 허리를 굽히고 다리를 웅크리게 되었다. 자고 일어나니 목도 허리도 찌뿌둥했다. 

가장 큰 난관은 샤워였다. 몸을 씻는 건 고사하고 양치를 한 뒤 입을 헹구는 것도 쉽지 않았다. 얼음장처럼 차가운 물로 몸 전체를 씻을 자신이 없었다. 결국 전기포트를 이용해 물을 끓여 섞어 쓰는 방법을 선택했다. 그마저도 공기가 차가워 물이 금방 식었다. 

설거지도 마찬가지였다. 뜨거운 물을 쓰지 못하니 기름때가 낀 그릇을 닦거나 팬에 눌어붙은 음식물을 벗겨 낼 때 힘이 두 배로 들었다. 애꿎은 세제만 계속 짜내 그릇을 닦았다. 이렇게 노력한(?) 결과는 어떨까. 못해도 주에 만 원은 아꼈다고 생각했는데 예상 요금은 지난주에 비해 4000원밖에 줄지 않았다. 내가 아낀 양은 5㎥. 나를 제외한 가족 세 명이 평소와 비슷하게 가스를 이용했다고 가정하면 한 달 동안 내가 아낄 수 있는 요금은 1만2000원 정도다. 

눌어붙은 팬을 수세미로 박박 문질러도 찬물에는 잘 지워지지 않았다. 사진=심하연 기자

정부는 한전과 더불어 가스공사의 적자도 문제라고 말한다. 전기요금 인상 폭만큼 가스요금도 함께 올라야 정상적인 에너지 공급 체계가 형성될 수 있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전문가는 총선 이후 가스요금이 큰 폭으로 오를 것이라고 예상한다.

전기는 덜 쓰는 것이 가능하다. 에너지 효율을 높인 제품도 많다. 전기를 사용하는 대부분의 제품은 생활의 질이나 편리성을 높이기 위해 만들어진 것들이 많다. 그러나 가스는 다르다. 가스는 삶의 필수조건과 정확히 맞물려 돌아간다. 씻기 위해 물을 뜨겁게 덥힐 때, 밥을 먹기 위해 가스레인지에 불을 올릴 때, 얼어죽지 않기 위해 최소한의 보일러를 돌려야 할 때 사용된다. 가스요금을 아끼기 위해 줄일지언정 안 쓸 수는 없었다. 줄이는 데도 한계가 커 ‘줄여 봤자’에 가깝다. 

서울 마포구에 거주하는 지인 이모(29)씨도 지난달 가스요금이 7만원이 나왔다고 했다. 이씨는 “가스요금이 걱정돼서 이틀 정도 보일러를 틀지 않고 온수만 사용했는데, 그날 밤 수도관이 얼어서 터져 버려 단수가 됐다”며 “동파 방지를 위해서는 반드시 보일러를 틀고 있어야 해서 가스요금을 줄이기 쉽지 않다”고 토로했다.

가스앱에서 체험 전후 예상 가스요금을 비교해 보았다. 계량기를 통해 직접 계산해 볼 수 있다. 약 4000원 차이가 났다. 사진=심하연 기자 

에너지효율을 높인 제품을 이용해 가스요금을 낮추면 좋겠지만 쉽지 않다. 에너지업계 관계자는 “지어진 지 오래된 건물에 설치된 보일러는 노후화되어 가스요금이 더 많이 나온다”라며 “에너지효율이 높은 콘덴싱 보일러를 이용하는 방법이 있지만 교체 비용이 100만원 가까이 나와서 전월세 세입자가 교체하기에는 부담이 클 것”이라고 전했다. 이어 “가정용 가스레인지 등도 에너지효율이 50~55%에 머무르는 수준”이라고 말했다.

신철원 소비자주권시민회의 팀장은 “가스는 겨울철에 수요가 집중되기 때문에 소비자 부담을 낮추기 위해서 계절별 변동 요금제 등을 도입하는 것도 방법”이라며 “요금 인상 폭과 시기 등을 사전 고지하고, 에너지바우처 지급을 확대하는 등 소비자를 설득할 여러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말했다.

현재 정부와 가스공사 등은 동절기(12~3월) 도시가스 사용량을 전년도 사용량보다 3%이상 절약하면 절감량에 따라 현금을 지급하는 에너지캐시백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지급액을 늘려 달라는 목소리가 많지만, 가스공사도 예산 문제로 당장 증액하기는 어렵다는 입장이다.

에너지자원공학 전문가는 “현재 에너지업계가 어려운 상황에 놓인 것은 사실이지만, 고물가 시기에 전기·가스요금까지 인상하면 가계 부담이 매우 커질 것”이라며 “에너지요금이 상승하면 전반적인 물가도 같이 오르기 때문에 신중히 접근해야 한다”고 밝혔다.

심하연 기자 sim@kukinews.com


심하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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