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세 30만원, 햇살 값은 50만원 [빈부격,창②]

월세 30만원, 햇살 값은 50만원 [빈부격,창②]

기사승인 2022-08-02 06:00:18
지난 6월, 서울 용산구 동자동 한 쪽방 옥상에서 올려다본 풍경.   사진=박효상 기자  

중세 유럽에서는 창의 숫자로 세금을 매겼다. 창은 곧 부의 상징이었다. 그 후로 500여 년이 흐른 지금, 유럽에서 약 8900km 떨어진 한국은 어떨까. 어쩌면 여전히, 창이 부를 가늠하는 기준이 되고 있지 않을까. “창 있는 방은 26만 원, 없는 방은 18만 원” 창은 곧 돈. 사람이 살아선 안 되는 공간에서조차 돈에 따라 삶의 등급이 나뉘고 있었다.
쿠키뉴스 특별취재팀은 지난 6월부터 두 달간 서울·경기 지역의 고급주택과 아파트, 다세대 주택, 고시원, 쪽방을 돌며 이곳에 사는 이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이를 통해 얻은 각종 데이터를 바탕으로 창에 비친 삶의 격차를 조명한다. 이번 기획을 통해 우리 사회가 창 없는 삶을 생각하고, 이들을 위한 논의를 시작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편집자주]
그래픽=윤기만 디자이너
햇살은 공짜가 아니다. 적어도 당신 집에서는. 창 있는 방과 월 5만원 추가 부담을 저울질하는 일용직 노동자, 빠듯한 예산으로 해가 드는 집을 찾으려 고군분투하는 사회초년생. 빛과 바람을 누리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다. 문제는 가난한 사람에게 더 많은 돈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고시원과 쪽방 등 빈곤 주거일수록 햇살은 더 비쌌다. 한 가구당 창의 총면적, 월세 등 주거비를 조사했다. 취재 결과를 토대로 1㎡의 ‘햇살 값’을 계산했다. 햇살 값은 창문 1㎡당 누릴 수 있는 햇살의 가격이다. 창의 총면적 대 월 주거비용 비율을 계산했다. 이후 창의 면적을 1㎡로 가정하고, 월 주거비용을 치환했다. 총면적이 10㎡, 월세가 20만원이라면, 1㎡ 햇살 값은 2만원이다. 전세 또는 보증금 있는 월세는 법령에 따른 전월세전환율을 적용해 보증금 0원의 월세로 바꿔 계산했다. 쪽방과 고시원의 보증금 0원에 맞췄다.

전월세 전환 방식
전월세전환율은 전세보증금을 월세로 전환할 때 적용하는 적정비율을 말한다. 주택임대차보호법에 따르면 기준금리에 대통령령으로 정한 이율(2%)을 더한 비율을 뜻한다. 이는 10%를 초과할 수 없다. 현행 기준금리(2.25%)에 2%를 더해 전환율은 4.45%로 계산했다. 구하는 식은 “보증금 x 4.25% ÷ 12”다. 가장 최근 전세 거래가격을 기준으로 했다.

보증금과 함께 월세를 내는 반전세의 경우, 월세를 전세로 바꿔 계산한 후 다시 이를 보증금 0원의 월세로 전환했다. 월세에서 전세 변환에는 한국부동산원의 4월 지역별 전월세전환율 중 수도권 기준(5.2%)을 적용했다. 다만 월세에서 전세로 변환할 때는 시장가격이 기준이다.       

용산구 동자동 정지영씨가 사는 쪽방 창문. 복도로 난 낡은 내창이다.    사진=박효상 기자 
고급 아파트와 열악 주거지역이 공존하는 서울 용산구. 이곳의 고급주택과 일반 브랜드 아파트, 대학가 원룸, 쪽방의 햇살 값을 계산해봤다. 주거 면적, 창 크기, 재질이 좋아질수록 햇살 값은 싸졌다. 동자동 1평 남짓한 쪽방. 구석구석 들어찬 세간에 한 사람이 누우면 발 디딜 곳 없다. 월세 30만원 짜리 정지영(71)씨의 집이다. 창 크기는 가로 0.8m, 세로 0.75m. 창문 면적은 0.6㎡이다. 성인 여성의 한쪽 팔 길이 정도다. 정씨가 내는 1㎡의 햇살 값은 50만원이다. 값어치를 할까. 복도로 난 내창은 온전한 햇살을 기대하기 어렵다. 불을 끄면 암흑이 된다. 오래된 나무틀에 판유리 단창이 달려있다. 얇은 판유리로는 소음도, 칼바람도 막을 수 없다.

용산구 청파동의 한 원룸 창문. 방범창과 차면시설 탓에 바람이 잘 통하지 않고 바깥도 볼 수 없다.  
대학생과 사회초년생이 주로 거주하는 원룸 햇살 값은 조금 나았다. 용산구 청파동 숙명여자대학교 인근 한 원룸. 5개 층이 있는 건물의 2층 집이다. 창 면적은 1.65㎡이다. 햇살 값은 1㎡당 36만3000원. 흔히 하이샷시로 불리는 폴리염화비닐(PVC) 재질 이중창이다. 층이 낮아 방범창과 차면시설이 달려있다. 차면시설은 사생활 보호를 위해 다는 가림막이다. 거주자 한모(27·여)씨는 “방범창과 차면시설 때문에 환기가 힘들고, 볕이 충분히 들지 않는다”며 “열심히 돈을 벌어 높은 층으로 이사 가는 게 꿈”이라고 말했다.

용산구 한 아파트. PVC 프레임의 보다 튼튼하고 넓은 창이 달려 있다.   사진=박효상 기자  

브랜드 아파트로 가면 햇살 가격은 1㎡당 10만원대로 뚝 떨어졌다. 용산 삼각지역 고가도로 인근 브랜드 아파트에서는 햇살 값이 1㎡당 10만6124원이었다. 쪽방 5분의 1 가격이다. 창 면적은 거실과 방, 베란다 등을 합쳐 39.38㎡이다. 가장 큰 창은 거실에서 대로변으로 나 있다. 가로 4.25m, 세로 2.3m다. 가로 폭은 2차선 도로보다 조금 더 큰 정도다.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받은 시공 당시 창호일람표에 따르면 24㎜의 복층유리를 사용했다. 쪽방에 쓰인 단창 2개가 겹쳐 있다는 이야기다. 이중창이기에 단창 4개가 붙은 것과 같다. 유리가 두꺼울수록 단열 기능은 좋아진다. 한겨울에 기온이 영하로 떨어져도 웃풍이 들지 않는다.    

용산구 한 고급주택. 3m 높이의 창문들이 벽을 둘러싸고 있다. 탁 트인 창으로 한강을 볼 수 있다.    사진=박효상 기자  
한강을 내려다보는 용산 고급주택은 어떨까. 이곳은 방 4개에 화장실 2개가 있다. 남쪽으로 창이 난 43층 고층이다. 지난달 말 거래된 전세 가격은 19억5000만원이다. 이를 전월세전환율에 따라 환산하면 월세는 723만1250원이다. 햇살 값은 1㎡당 6만2181원으로 저렴한 수준이다. 여기는 창의 총면적을 다 합치면 주거 면적보다 크다. 외장 창 높이만 무려 3m다. PVC보다 비싸고 미관을 돋보이게 하는 알루미늄 프레임을 썼다. 복층유리보다 열을 효과적으로 차단하는 저방사(로이) 복층유리를 사용했다. 남쪽으로 난 창으로는 하루종일 햇빛이 들어온다. 해가 내리쬐더라도 내부 온도에 큰 영향을 주지 않는다. 시원하게 뚫린 창을 통해 언제든 한강을 내려다볼 수 있다. 

용산만의 문제는 아니다. 수도권의 주택 40여곳을 분석한 결과, 가장 비싼 햇살 값은 0.19㎡의 창이 있는 서울 관악구 한 고시원이다. 1㎡당 210만5263원으로 계산됐다. 수도권 고시원과 쪽방 등 빈곤 주거의 평균 햇살 값은 69만5062원이다. 원룸 18만4100원, 다세대 주택 10만5796원, 아파트 9만5460원순이었다.

창에 비친 불평등 [빈부격,창]
월세 18만원 쪽방부터 100평 고급 주택까지 [빈부격,창①]
사람 팔자, 창이 바꾼다 [빈부격,창③]
쪽방 선풍기는 더 비싸게 돌아간다 [빈부격,창④]

이소연 기자 soyeon@kukinews.com

도움 한국언론진흥재단-세명대 기획탐사 디플로마 과정

이소연 기자
soyeon@kukinews.com
이소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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