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Z 사람] 심형래, 영화에 대한 도전 그리고 ‘비판’ ‘비난’

[Ki-Z 사람] 심형래, 영화에 대한 도전 그리고 ‘비판’ ‘비난’

기사승인 2011-01-08 13:04:00

[쿠키 영화] 1993년 국내 한 마케팅 회사가 서울지역 국민학생 (현 초등학생) 5학년 이상에서 대학생까지 청소년 671명을 대상으로 연예인 선호도 설문조사를 했다. 가장 좋아하는 가수는 서태지와 아이들이며, 탤런트는 고인이 된 최진실, 그리고 개그맨은 이경규가 차지했다. 재미있는 사실은 이경규 다음으로 2위를 차지한 심형래는 국민학생들에게는 1위를 차지했다.

당시 코미디계는 몸으로 웃기는 개그에서 말로 웃기는 개그로 넘어가던 시점임을 고려해도, 심형래는 어린 학생들에게는 최고의 코미디언이었고, 우상과도 같았다. 80년대 후반에 심형래가 출연한 영화인 <우뢰매>를 보지 않은 학생들이 거의 없을 정도였다. 그는 스스로도 늘 강조하듯 한국에서 슬랩스틱 코미디의 최강자였고, 지금도 후배들은 이를 쉽게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이런 심형래가 1999년 7월 영화 <용가리>를 선보이면서, 논란에 중심에 서기 시작했다. 브라운관에서 늘 반갑던 심형래는 조롱의 대상으로 떠오르기 시작했고, 그가 하는 영화 작업은 비판보다는 비난에 시달렸다. 그리고 영화 <디워>가 843만 관객을 모으고, 할리우드에서 다시 <라스트 갓파더>까지 만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심형래에 대한 시선은 여전히 반신반의다.

◇ SF 영화에 대한 도전 그리고 비난

심형래가 SF영화에 대한 관심을 보인 것은 그가 상상력이 풍부한 것에 기인할 것이다. 현실을 반영하거나 조롱, 혹은 회피하는 영화와는 달리 SF영화는 오로지 창작자의 상상력에 기인해, 비현실적인지만, 꿈을 심어줄 수 있는 그림을 관객들에게 보여준다. <우뢰매> 등을 통해 SF영화가 아이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는 주연인 심형래가 직접 느꼈을 터. 그래서 본격적으로 SF영화 제작에 뛰어든 심형래는 어느 순간 코미디언에서 영화 제작자로 관심을 받기 시작한다.

실제로 심형래는 영화 <용가리>를 제작한다고 알려진 1997년경부터 SF영화의 선두주자로 촉망받는다. 1998년에는 서울대 학부생과 대학원생을 대상으로 ‘국내 SF영화의 현실과 문제점’이라는 강의를 진행하기도 한다. <용가리>가 선보이기도 전, 단지 <우뢰매>와 <티라노의 발톱> 제작의 경험에만 기인한 것이다. SF영화에 대한 척박한 국내 영화계의 현실을 고려한다고 해도, 심형래에 대한 세간의 인식이 당시 어떠했는지 짐작할 수 있는 부분이다.

심형래가 본격적으로 논란의 대상이 된 것은 1999년 7월 14일 영화 <용가리>에 대한 언론시사회가 열린 후였다. 국내 SF영화 제작 기술로는 최고일 수 있었지만, 같은 시기 개봉한 할리우드 영화 <쥬라기 공원>과 너무 비교된 것이다. 국내 언론들 중 일부만 중평 수준의 점수를 줬지, 대다수는 실망감을 금치 못했다.

물론 여기에는 또다른 외적 요인들이 작용했다. 바로 심형래의 자신감과 더불어 심형래라는 인물 자체가 그 대상이다. 심형래는 영화 공개 1년 여전인 1998년 칸 영화제에서 대대적인 프리세일을 펼쳤다. 당시 심형래는 “약 70억원의 제작비가 소요될 SF대작 <용가리>는 미국배우, 영어대사를 써서 세계시장을 겨냥해 만들 계획이다. 이번 칸영화제에서 1000만달러 가까이 수주를 얻을 자신이 있다”고 자랑했다.

그러나 실제로는 제작 일정 등의 이유로 유럽과 미국 측 바이어들은 손을 털었다. 일본에만 판권을 넘겨 150만 달러를 받았다. 영화 메이저 시장의 진출 실패는 물론 1000만 달러에 대한 자신감이 단순히 허언에 그친 셈이었다. 시선은 여기에서부터 달라졌다.

심형래는 당시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국내 개봉 이후 여기저기서 비판을 하도 많이 받고 나 스스로도 지나치게 나서는 게 문제라는 생각에서 일절 인터뷰 등을 하지 않았다. 결과를 보여 주는 게 제일이라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왜 우리나라 사람들은 꼭 금메달을 따야지만 사람 대접을 해 주는지 모르겠다. 동메달 따면 사람이 아닌가”라며 섭섭함을 드러내기도 했다.

그러나 악재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당시 <용가리>에 11억 정도를 투자한 CKD(종근당 기술금융) 등에서 투자 원금소송 등을 내고, 세종문화회관과도 소송에 걸렸다. 그가 신지식인으로 선정되어 활동한 것 역시 과연 합당한가라는 지적이 일었다. 또 그동안 고려대를 나온 것으로 알려진 것과 달리, 고졸 출신인 것이 밝혀지면서 대중의 질타를 받기 시작했다.

결국 영화의 퀄리티 지적에서 시작한 문제는 어느새 심형래 개인으로 옮겨가면서, 심형래의 행보 하나하나가 대중들에게 곱지 않은 시선으로 비춰졌다.

국내 코미디계의 전설이자, SF영화의 선두주자였던 심형래는 그렇게 추락하는 듯 싶었다. 그러던 중 심형래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의 판도가 다소 변화된 것은 2008년 영화 <디워>를 통해서였다. 843만 명의 관객을 모으긴 했지만, <디워>는 영화계 뿐만 아니라 사회 전반적으로 이슈가 되면서 방송 시사프로그램의 주제로까지 떠올랐다. 또 이 영화는 전문가들과 관객들이 정면으로 충돌한 사례를 남기기도 했다.



최근에 <라스트 갓파더>에 대해 ‘불량품 판 가게’에서 나온 상품으로 폄하한 시사평론가 진중권과의 악연도 이때 시작됐다. 이 때문에 843만 명의 관객수에 대한 평가도 새롭게 제기됐다. 영화 그 자체보다는 일종의 ‘논란’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디워>에 대한 평가가 보류된 것도 이 때문이다.

◇ <라스트 갓파더> 새로운 평가의 시작?

지난 2010년 12월 29일 개봉한 <라스트 갓파더>는 심형래에 대한 평가를 새로운 시점에서 논해야했다. 우선은 SF영화가 아니라는 점이다. 그동안 노하우 축적으로 SF의 기술은 국내에서 최고라고 스스로 자부했던 심형래가 신작에서는 SF가 아닌, 자신이 수십 년간 가장 잘했던 장르인 슬랩스틱 코미디를 통해 승부수를 던진 것이다.

게다가 자신이 직접 출연해, 전 국민적으로 인식된 ‘영구’ 캐릭터를 통해서다. 자칫 자신의 최고 장기를 내세움으로서, 실패할 경우 크나큰 상처를 입을 수 있는 상황이다. 그런데 심형래는 이에 대해 자신만만해 했다. 언론시사회 후 기자들과 전문가들의 반응은 <디워>때와 사뭇 달랐다. 절반 정도의 호의와 절반 정도의 부정이 존재했다. 그리고 바로 관객들과 만난 <라스트 갓파더>는 순식간에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하며, 누적관객 150만 명을 훌쩍 넘어버렸다.

물론 여기에는 ‘진중권 효과’와 심형래는 종횡무진 홍보 활동도 한몫했다. 진중권의 날 선 비난은 대중들을 자극해 “어떠 영화길래”라는 호기심을 불러일으켜 극장을 향하게 했고, 동시에 개그프로그램, 토크프로그램 등을 가리지 않고 출연하는 심형래에 대한 30대 중반 이후의 시청자들은 향수에 젖어 다시 극장을 향하게 했다.

물론 이러한 반응이 1월 내내 지속될 것이라는 보장이 없다. 벌써 <디워>때와 마찬가지로 외적인 요인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라스트 갓파더>에 국민의 세금이 투입되었다든지, 미국 개봉이 불투명하다든지 등의 이야기들이다.

최근에 기자와 만난 심형래는 그래도 영화에 대해 자신감이 충만했다. 심형래는 “한국 사람들은 너무 자극적인 코미디를 봐서, 제 영화가 밋밋할 수 있어요. 하지만 영화가 계속 재미있으면 그게 ‘유머1번지’지 영화입니까. 실제 자극적인 코미디를 가장 잘 만들 수 있는 사람은 심형래에요. 대한민국에서 나만큼 웃긴 사람은 없어요. 그런데 내가 그렇게 자극적으로 만들면, 가족들이 볼 수 있는 영화가 아니죠. 특히 이번 영화는 코미디 영화는 퀄리티가 낮다고 생각하는 것을 없애기 위해, 세트라든가, 컬러라든가 그 시대 고증에 많이 신경을 썼어요. 자신이 있죠. 어른이든, 아이든 누구나 편하게 볼 수 있는 영화를 만들어야죠”

<라스트 갓파더>가 극장에서 내려질 때 심형래에 대한 평가는 또 한번 이뤄질 것이며, 북미를 목표로 삼았기에 미국 진출 여부와 흥행에 대한 시선도 심형래를 향할 것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 평가와 별개로 심형래는 계속 영화를 만들 것이며, 그에 대한 평가와 싸울 것이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유명준 기자 neocross@kukimed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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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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