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김태구 기자] 국세청이 개인회생 및 신용회복 등 채무조정을 통해 성실하게 빚을 갚고 서민에게 높은 세금 연체이자를 물리고 과도한 추심으로 빈축을 사고 있다. 정부가 나서 경제적 소외계층의 재기를 가로 막고 있는 셈이다. 이는 채무조정 제도 강화, 장기채권 소멸 등을 청사진으로 제시한 문재인 정부의 서민금융정책 방향에 반한다는 지적이다.
이에 따라 서민 금융기관을 중심으로 민간 금융사뿐만 아니라 정부도 이런 사람들을 위해 세액 조정, 세금 장기 분할 납부 등과 같은 실질적인 구제방안을 직접 제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흘러나고 있다.
30일 관련기관에 따르면 국세청은 경제적 어려움으로 채무조정(개인회생 및 신용회복 등)을 신청한 사람에게도 예외 없이 연 10.95%(일 0.03%)의 세금 납부불성실가산세를 부과하고 있다. 세금 연체자에 대한 징벌적인 차원이라는 것이 국세청의 설명이다.
또한 국세청은 5월 종합소득세 신고기간 동안 세금 체납자에 대해 무더기 통장압류를 실시했다. 이 가운데에는 신용회복(개인회생) 중인 통장도 예외 없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 조성목 서민금융연구포럼 회장은 “개인회생, 신용회복 등 채무조정 신청자 중 많은 사람들이 막대한 세금으로 고통을 받고 있다”면서 “사채업자 빚도 못 갚아 채무조정 제도를 찾는 것인데, 세금을 내지 못한다고 높은 가산세를 부과하고 통장압류를 한다면 민간기구에서 살려 주고 싶어도 세금이 때문에 못 돕는 꼴이 된다”고 지적했다.
체납 가산세율이 과도하다는 지적은 꾸준히 제기돼 왔다. 체납가산세율은 금융회사 등이 연체대출금에 적용하는 이자율 참고한 것으로 2003년 이후 13년째 변동이 없다. 같은 기간 시중금리와 기준금리가 1~2%대로 낮아진 것을 고려하면 가산세율 인하 요인은 충분하다.
지난 19대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에서 조정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제기된 바 있다. 또한 국세청 내부에서도 체납 이자율이 높다는 의견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채무조정자와 같은 경제적 취약계층에게 너무 과도하다는 지적이다. 세금 분할 납부기간이 짧아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지 않아서다.
국세청 관계자는 “납부할 세금과 가산세가 1000만원 초과한 경우에는 소득세에 한해 2개월 내에 나눠서 낼 수 있다. 또한 재해를 당했거나 사업에 현저한 손실, 질병 등 장기치료를 요하는 경우 등 일정한 사유가 있는 사람에게도 9개월 동안만 가산세를 유예해 주는 제도가 있다”면서도 “(이 기간을 지나) 체납이 지속된다면 가산세는 계속 붙어 세액 원금을 초과할 수도 있다. (시중에 비해) 과도한 건 사실”이라고 밝혔다.
대한법률구조공단 관계자도 “개인회생을 신청할 경우 세금은 30개월 이내 변제해야하는 우선변제채권으로 분류되고 감면도 없다. 때문에 세금이 많으면 법원에서도 개인회생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따라서 대개 세금을 제외하고 나머지 민간 채권만 개인회생을 신청한다”고 설명했다.
신용회복위원회를 통한 채무조정도 마찬가지다. 금융권 관계자는 “신복위의 개인워크아웃을 신청할 때 국세는 채무조정 대상이 아니다”면서 “민간채권에 대해선 이자를 면제받으면서 최장 8년 동안 갚으면 되지만 국세는 자신이 계획을 세워 납부해야 한다”고 말했다.
예컨대 채무 5000만원을 신용회복위원회의 채무조정을 통해 갚을 경우 매월 50만원 정도 납부하면 된다. 하지만 세금 5000만원의 경우 매달 가산세가 붙고 납부 기한이 법상 30개월로 제한돼 있기 때문에 매월 약 190만원 갚아야 하는 구조다. 30개월 동안 5000만원에 대한 가산세는 738만원에 달한다. 현실적으로 채무조정을 신청하는 경제적 취약계층이 갚을 수 없는 구조다.
이같은 문제점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지만 국세청은 법과 원칙에 따라 충실하게 세금을 부고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국세청 관계자는 “법과 제도가 개선되지 않으면 어쩔 수 없다”면서 “채무조정자와 같은 경제적 취약 계층을 돕고 싶지만 방법이 없다”며 말했다. 가산세와 관련된 규정은 대통령으로 문재인 대통령의 결단에 따라 조정될 수 있는 부분이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는 공약 사항인 최고 이자율(25%) 인하 및 제한, 1000만원 이하 10년 장기채권, 채무조정제도 강화, 이자한도제한, 죽은 채권 소멸 등 민간 금융사에게만 책임을 전가하는 서민금융정책을 제시하고 있다.
조성목 회장은 “채무조정 상태에 있는 취약 계층이 과도한 가산금으로 인해 납세도 포기하고 회생절차도 단념한다면 국가적 손실”이라면서 “채무조정을 신청한 사람에 한해 납세 기간 연장, 가산세 면제 등을 정부가 제공한다면 국가경제와 세수 확보 차원에서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정부와 민간이 합동으로 서민들에게 재기의 기회를 마련해 줄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 줘야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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