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보고] 6병동의 엄마악어 아기악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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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 화상환자 세상 편견 고되지만…

기사승인 2017-07-13 00:31:00

[편집자주] 쿠키뉴스는 앞서 화상전문병원 르포르타주를 통해 화상병원 의료진의 일상을 그린 바 있다. 이번에는 환자에게 시선을 돌려, 고통과 편견에 시달리는 화상환자, 그중에서도 어린이 환자의 이야기를 깊게 들여다봤다. 어린이 환자가 앞으로 견뎌내야할 세상은 그리 녹록치 않다. 어려움, 특히 향후 겪게 될 여러 정신적 문제에 초점을 맞추었다. 암담하고 고단한 세상이 소년에게 파도처럼 몰려올 것이다. 아직 화상 환자에 대한 배려가 부족한 사회에서 무작정 희망과 기대를 그리는 것은 무례한 일일 것이다. 다만, 소년이 거센 파도를 헤치고 세상 속에 꿋꿋이 나아가길 기원할 뿐.


[쿠키뉴스=김양균 기자] “그렇게 살고 싶냐. 내 살 떼서 붙여라!” 환자를 향한 불청객의 잔인한 조롱은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병원 직원들이 달려들어 재빨리 취객을 밖으로 끌어냈지만, 그의 저항은 제법 거칠었다. 사내는 허공을 향해 주먹과 발길질을 해댔다. “카악, 퉤” 병원 바닥은 금세 가래침으로 얼룩졌다. 흡사 소년이 병원을 나서며 맞닥뜨려야 할 세상의 그림자인 것만 같다.  

“저기” A수간호사가 엘리베이터 안에서 나직이 말했다. 방금 전의 충격에 빠져 있다 퍼뜩 놀라 A를 돌아봤다. “아동 환자 어머니께서 취재에 어렵게 응해주셨어요.” “그랬군요.” “따뜻하게 대해주세요.” “네.”

병실에 들어서자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스티커’였다. 간호사 호출 버튼이 있는 머리맡에는 바다사자와 돛단배, 조개 스티커가 붙어있었다. 필시 바다를 좋아하는 김유민(가명·5)군의 ‘소행’일 것이다. 아이의 스케치북에도 유독 바다 풍경이 많다. 바다가 좋아 바다에 가고 싶은 유민군은, 그러나 바다에 갈 수 없다. 손이 편치 않기 때문이다. 

뜨거운 국에 손을 심하게 데인 유민군은 수차례 이어진 수술에도 좀처럼 차도가 없다. 엄마는 아이에게 무거운 짐을 지운 것만 같아 가슴이 미어진다. 화상환자들에게 자주 관찰되는 심리란 ‘내게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가’이다. 유민군의 경우, 보호자는 아이의 상처에 감정이입하고 있었다. 여기서 ‘내게’는 ‘내 아이’로 확대된다. 실제로 어머니는 자신이 사고를 방조 혹은 방치했기 때문이라고 스스로를 자책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유민군에게 엄마의 존재는 절대적이다. 잘 때도 엄마가 곁에 있어야 안심을 한다. 유민군이 그린 악어, 돌고래, 물고기 그림은 꼭 한 쌍이다. 큰 악어는 엄마, 작은 악어는 유민이다. “엄마 저는 다섯 살이죠?” “그래, 유민이는 5살이야.” “여섯 살 되면 바다에 가요?” “응…. 6살 되면 바다에 가자.” “엄마 악어 그림 그려주세요.” “여기 자….” “엄마, 엄마, 악어도 바다에 살아요?” “그래. 유민아.” “바다에서 악어를 볼래요.”


유민군은 장난꾸러기다. 9살 형과 뒤엉켜 놀다보면 먼지투성이가 되곤 했다. 사고 전까지는 그랬다. 유민군의 어머니는 말끝마다 ‘보통 아이들처럼’이란 말을 붙이곤 했다. 보통 아이들처럼 유민군이 평범하게 자라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요즘 같은 여름은 유민군을 더 힘들게 한다. 햇볕은 화상 상처에 치명적이다. 가만히 있어도 땀이 나는 폭염에도 환부를 내어 놓아선 안 된다. 이러한 불편함은, 그러나 아무것도 아니다. 정작 화상이 무서운 이유는 따로 있다. 비단 상해나 치료 과정에서의 극심한 고통은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합병증은 환자와 보호자 모두를 괴롭힌다. 유민군과 같은 어린이 환자는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를 비롯해 우울·불안·수면장애·행동장애·학습장애·주의력 결핍 등의 중복장애가 자주 나타난다. 

“엄마 아기 악어 그려주세요.” “응 조금만 있다가.” “아기 악어 그려주세요.” “그래.”

유민군은 상당 기간 병원에서 치료를 받아야 한다. 엄마는 병원에서 유민군을 돌보느라 가족과 떨어져 지내는 게 다반사다. 그러다보니 큰 아이는 일찍 철이 들었다. “크게 내색은 하지 않지만 아침마다 아빠에게 묻는대요. 엄마가 스무 밤 자면 오냐고요.” 영상 통화를 할 때마다 큰 아이의 얼굴에는 엄마에 대한 그리움이 짙게 묻어난다. 그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엄마의 눈에는 이내 안타까움이 그렁그렁 맺히곤 한다. 빠듯한 살림살이는 유민군의 병원 생활이 길어질수록 더 팍팍해졌지만, 엄마는 완치만 된다면 영혼이라도 내어줄 수 있다. 보통 아이들처럼 평범하게 자라는 것. 그것만이 엄마의 유일한 소망이다. 

잇단 수술로 병원에 가야할 때마다 유민군은 방문을 걸어 잠그고 나오지 않으려 한다. 병원에 가면 ‘아프기’ 때문이다. 매번 아이를 설득하는 엄마의 목소리는 애달프다. “유민아 딱 스무 밤만 자고 올 거야.” 마지못해 따라나서는 아이를 업은 엄마나, 그 뒷모습을 보는 아빠의 가슴은 무너져 내리곤 했다. 


아직 유민군에게 우울 반응은 관찰되지 않는다. 그러나 엄마는 시한폭탄 같다. 화상 치료 과정에서 유민군이 견뎌야 할 통증이나 흉터, 후유증 등은 아이가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어떤 방식으로라도 표출될 수 있기 때문이다. ‘아이가 수술을 받다가 혹시 잘못되지는 않을까. 수술 후유증이 생기는 것은 아닐까. 언제쯤 완쾌될까’ 아이가 칭얼대다 잠든 밤이면 엄마는 이런 생각들로 잠 못 이룬 밤이 부지기수다. 

모든 치료가 끝나도 넘어야할 산은 남아있다. 우울증과 용모 손상에 따른 회피반응, 활동퇴행, 불안감 등이 환자를 짓누른다. 이를 잘 이겨내도 세상의 차가운 시선은 환자에게 버거운 짐이다. 우리 사회는 아직 화상 환자에 대한 배려가 부족하다. 편견과 시선은 화살처럼 마음에 내리 꽂히는 경우가 많다. 

유민군의 사례처럼 가족과 장기간 떨어져 지낸 경우, 가족 간에 서먹한 감정이 생기는 것은 또 다른 문제다. 이로 인해 부모와 자녀 사이에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다. 장기간의 입원치료로 학업을 따라가지 못해 학교에서 어려움을 겪거나, 화상 흉터는 따돌림의 한 원인이 되기도 한다…. 


◇ 아기악어는 금세 자라날 거야

악어의 조상은 카르누페스 캐롤리넨시스(Carnufex carolinensis)로 알려져 있다. 공룡이 등장하기 전 이 녀석은 지구를 지배한 최강의 포식자였다. 현재 이 녀석을 가장 닮은 것은 바로 바다악어다. 바다악어는 몸무게는 1톤이 넘고 몸길이만 6미터나 된다. 현존하는 파충류 중에서 가장 크고 힘이 세다. 넘치는 힘으로 파도를 헤치며 자기보다 몸집이 큰 호랑이도 잡아먹는다. 

기사에 넣을 사진을 고르던 중 유민군의 악어 그림에서 기이한 현상이 일어났다. 주황색 악어가 점차 살이 붙고 단단한 외피를 갖추더니 살아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마침내 사진을 뚫고 나온 바다악어는 기자를 흘깃 쳐다보다 한강으로 유유히 사라졌다. 깜짝 놀라 얼이 나간 와중에 유민군의 말이 떠올랐다. “아저씨, 아기악어는 금방 클거에요.” 

아기악어는 굳센 바다악어로 자란다. 단단한 꼬리로 파도를 헤치며 더 넓은 바다로 나아간다. 때때로 고래와 씨름하고 밤이 되면 지중해의 이름모를 별똥별을 바라보며 잠들 것이다. 오른손에 난 작은 흉터는 바다악어의 긴 여정을 함께 할 것이다. 뱃사람들은 훗날 이렇게 노래할지 모른다. ‘바다악어가 있었네. 오른발에 흉터가 있는 녀석이었지. 악어가 물살을 가르고 헤엄칠 때, 우리는 그 힘찬 모습에 경이로움을 느꼈다네.’ 

angel@kukinews.com

김양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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