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김양균 기자] “할아버지가 화장실에서 쓰러지셨다고요? 의식 있으세요? 일단 거실로 환자분을 옮기시겠어요? 호흡은 규칙적인가요? 전화 끊지 마세요!” 김미영 소방관의 목소리가 일순 커진다. 전화벨이 울리는 동시에 어디선가 경각에 달린 ‘숨’을 유지하려는 긴박한 목소리가 이어진다. 생사의 아슬아슬한 경계는 전화 한 통에서 시작된다. 이곳은 다급한 생명 구호의 최일선, 서울종합방재센터의 119구급상황관리센터다.
섭외는 일사천리였다. 온종일 지켜보겠다고 밝히자 ‘오마이갓’이란 반응이 나오긴 했지만. 지난달 27일 충무로역에서 20여분을 걷자 서울종합방제센터였다. 옛 안기부 건물까지는 오르막의 연속이었다. 셔츠의 등이 땀으로 흥건해졌을 무렵, 특유의 주황색 유니폼을 입은 소방들관이 보이기 시작했다. 목적지는 119구급상황관리센터였다. 간단한 출입등록을 거쳐 지하로 내려가자 압도적인 풍경에 입이 떡 벌어졌다.
119구급상황관리센터(센터장 이대우)는 응급의학과 및 흉부외과 전문의로 구성된 구급지도의사를 비롯, 의료지도 요원(9명), 구급상황관리사(13명) 등으로 구성된다. 센터는 119 신고자에 대한 질병상담이나 병원정보를 제공하거나 구급일반 기술상담·구급상황관리·구급대 의료지도를 맡는다. 일반 의료상담도 이들의 몫. 이밖에도 24개 의료기관에서 위촉된 전문의 52명이 ‘전문의료상담의사’로 주간(9:00~19:30)과 야간(19:30~9:00)을 번갈아가며 지킨다. 간호 소방관과 응급구조사는 전문의의 조언 하에 전문적인 구급 활동을 펼친다.
정일상 구급지도의사(응급의학 전문의)는 10년째 센터에서 근무하고 있다. 10년간의 소회를 묻자 돌아온 대답은 의외로 단출하다. “할만하다.” 의료현장에서 환자를 돌보는 것과는 큰 차이가 있다. 그는 구급대원 교육 및 직간접의 의료지도를 맡는다. 산악사고가 나면 환자의 응급 정도에 따라 구급헬기 출동 여부가 결정된다. 결정이 나면 수도방위사령부의 허락을 받아 출동이 이뤄진다. 헬기는 1회 출동시 비용만 수백만원에 달하는 만큼, 신중을 기해야 한다. 그러나 경미한 부상에도 헬기를 요청하는 신고자도 종종 있다. 이유가 재밌다. 헬기를 타보고 싶어서란다. 이럴 경우 구급대원들은 헬기가 안 왔다고 불만을 토로하는 환자를 달래가며 들것으로 이송한다고 전했다.
구급지도의사는 현장 출동도 겸한다. 화재 사고가 대표적이다. 아비규환의 현장은 모든 것이 넘어야 할 산이다. 정 전문의는 “병원과 달리 재난 현장은 장비와 인력이 부족하다. 아직 선진국에 비하면 시스템 정비가 안 된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특히 응급환자의 심정지 등 급박한 상황에서 구급대원들은 환자에게 꼭 필요한 약물의 사용이 법으로 금지돼 있다. 인명 구조를 위해 이뤄진 처치가 만일 2차 의료 사고로 연결될 때, 법으로 보호를 받지 못하는 상황마저 오는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제때 적합한 응급처치가 이뤄지지 못하는 안타까운 경우가 적지 않다. 일부 지방자치단체에서 한시적으로 약물 처치가 이뤄진 경우가 있지만, 예외적인 경우에 한했다. 정 전문의는 “답답하다”고 말했다.
◇ 스마트영상 응급처치?
119구급상황관리센터는 올 초부터 ‘스마트영상 응급처치’를 도입했다. 개략은 이렇다. 현장에 구급대원이 도착할 때까지 스마트폰 영상 통화로 코치해주는 응급 구조 개념이다. 8개월여 동안 심정지 225건, 응급질환 265건, 사고부상 49건 등 총 539건의 성과를 올렸다. 이에 대해 한 응급의학과 전문의는 “‘드라마틱한 심정지 사망 확률을 낮추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평가했다.
응급환자가 발생하면 통상 구급차가 도착하기까지 5분 남짓이 소요된다. 이때 환자가 방치되면 추후 뇌손상 등으로 직결된다. 스마트영상 응급처치는 이러한 ‘공백’을 메워주는 역할을 한다. 이대우 센터장은 “소생의 범위를 사고 전과 같이 일상생활을 가능토록 하는 것으로 확장해서 바라봐야 한다. 스마트영상 응급처치는 이를 위한 ‘골든타임’을 확보해 준다”고 자평했다.
국내 스마트폰 보급률이나 통신 속도 등을 고려하면 한국 고유의 응급구조 사례로 이들이 자부심을 가질 만 해보였다. 특히 도서산간지역 등 의료소외 지역에서 더 유용하다는 말은 설득력이 있다. 하지만 현재 서울시에서만 도입해 실시하고 있다.
스마트영상 응급처치 비율은 센터 응급 상담의 15%정도를 차지한다. 실행률을 올리고 싶어도 그럴 수 없는 속사정이 있다. 인력문제가 요원하기 때문이다. 현재도 인력 부족 문제는 심각하다. 전화상담이 몰리는 오후나 야간 시간대에 심정지 환자 신고가 접수되면, 스마트영상 응급처치를 시행하고 싶어도 인력이 부족해 대응할 수가 없다. 현재 센터는 3명의 전담인원이 스마트영상 응급처치를 전담하고 있다.
물론 반응은 뜨겁다. 전남, 경북 등 각 지역 소방본부로부터 벤치마킹을 위해 센터를 찾아오는 일이 빈번하다. 기자가 방문한 날도 경상북도 소재 소방본부에서 소방관들이 견학을 왔다. 소방방재청도 확대 시행을 고려 중에 있다고 관계자들은 전했다. 이대우 센터장은 “(스마트영상 응급처치) 전국 확산을 위해 소방방재청에서도 관심을 갖고 추진한다면, 지금보다 체계적인 시스템이 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시스템 구축을 위해 서울시에 예산 지원을 요청해 놓은 상태라고 전했다. 내년 에산 12억원은 이미 확보한 상태다.
우여곡절도 있었다. 현재 스마트영상 응급처치는 말 그대로 ‘맨땅에 헤딩’하는 방식으로 자리를 잡았다. 일단 전화가 오면 소방관은 스마트영상의 활용 여부를 결정한다. 결정이 되면 전화를 끊고 신고자에게 태블릿PC로 다시 영상전화를 거는 방식이다. 다시 전화를 했을 때 받지 않는 경우나 영상 통화에 익숙지 않아 겪는 애로사항은 덤. 스마트폰 기종에 따른 어려움도 있다. 아이폰의 경우 아이패드로만 가능하고, 또 수신자의 데이터 사용에 따라 한창 설명 중에 영상통화가 끊기는 일도 적지 않다.
“신고자가 전화를 했을 때 버튼만 눌러 영상통화로 전환되도록 하면 좋을 텐데, 시스템상 끊고 다시 전화를 걸어야 하는 경우가 답답해요. 스마트영상 응급처치시 데이터 소요가 불가피하다고 하면, 그냥 ‘전화로 하라’고 하는 경우도 많습니다.”(이대우 센터장)
◇ 주말에도 화장실 갈 시간도 없이 격무 시달려
병원이 문을 닫는 주말이면 상담전화는 더 폭주한다. 이때 시민들에게 병원별 진료시간과 당직 전문의 유무를 수집해전달하는 것도 이들의 중요한 임무다. 그렇다보니 소방관들은 화장실 갈 시간도 없다. 끼니를 놓친 식사는 5분 만에 후다닥이다. 3교대로 주간(9:00~18:00)과 야간(18:00~9:00) 근무가 이뤄지는 탓에 소방관들의 어깨에는 늘 피곤이 붙어있다. 기자는 신고자들에게 큰 목소리로 상담을 하는 것은 ‘피곤한’ 소방관들의 ‘짜증’은 아닌지 궁금했다. 김미영 소방관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신고자들은 대개 마음이 급하고 불안해합니다. 매뉴얼에 따라 같이 동요하지 않아야 해요. 상대의 심리를 가라앉히고자 톤을 일부러 강하게 말하는 거죠. 싸우는 것처럼 보이지만 흥분한 상대를 빠른 시간에 강하게 안정시키기 위한 방법이에요.”
신고자의 전화를 받으면 이들은 증세를 묻고 구급대에 연결, 환자 정보를 전달한다. 환자의 각 상황에 맞춘 응급처치도 그의 역할이다. 친절하고 꼼꼼한 중간역할은 중요하다. 환자 당사자와 신고자에게 구급차가 도착하기 전까지 안내를 하다보면 입이 바짝바짝 타고 목에선 피맛이 날 때도 있다. 힘들지 않냐는 물음에 김 소방관은 아무 말 없이 웃었다. 이날 만난 소방관들은 격무를 소명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다음 편에서는 119구급상황관리센터 소방관들의 웃음과 눈물이 소개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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