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김양균 기자] “그곳 주소가 서울시 OOO이죠? 어디가 편찮으시죠? 언제부터 가슴이 아팠나요? 시간은요? 가만히 앉아있어도 가슴통증이 지속됐나요? 통증은 쥐어짜듯이 콕콕 쑤시듯이 아프세요? 식은땀은요? 호흡은 어때요? 연령대가 어떻게 되시나요? 출동구급대에 연결하겠습니다. 아, 구급대원이죠? 신고자와 연결되어 있어요. 31세 남성이고요. 신고자 연결되어 있으니까 말씀하세요!”
한차례 폭풍 같은 통화가 지나갔다. 김미영 소방사(38)는 옅은 한숨을 밷었다. 주간(오전 9시~오후6시)에는 이런 구급신고가 30건, 야간(오후 6시~오전 9시)에는 40~50건의 신고 전화가 울린다. 서울종합방재센터 내 119구급상황관리센터의 일상은 늘 생사를 오가는 이들의 연락으로 시작되고 끝난다.
신고자가 전화기의 119버튼을 누르면(서울지역의 경우) 서울종합방재센터로 연결된다. 대단위로 이뤄지는 신고 중 의료지도와 관련된 것은 수초 내에 119구급상황관리센터로 연결된다. 센터는 다시 신고자의 정보를 취합해 응급과 비응급으로 분류한다. 이 과정은 중요하다. 출동을 하더라도 긴급을 요할 시의 대비를 위해서다. 응급의료자원정보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이 일의 장점이요? 음… 수준 높은 의료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거죠.” 김미영 소방관이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쑥스러움이 많은 김 소방관은, 그러나 하고픈 말은 꼭꼭 짚어가며 설명해줬다. 모든 일이 그렇지만 단점도 있다. 주로 전화통화로 신고자와 이야기를 하는 탓에 신고자가 본인이 알려주는 대로 응급처치를 하는지 확인이 쉽지 않은 점이다. 어쩌면 현행 의료지도의 맹점 혹은 한계일지도 모른다.
센터가 자랑하는 스마트영상 응급처치는 어떨까. 환자의 편의와는 별도로 일하는 소방관들의 애로도 조금 있다. “일단 스마트 응급 처치가 얼굴이 너무 노출돼요. 이만하게 나온다니까요(웃음).” 음성에서 영상으로 ‘진화’했지만, 자그마한 스마트폰 화면(심지어 흔들리는)으론 특히 맥박 등의 확인이 어렵다. 환자 상태를 명확이 알기 어려우면, 경험과 노하우, 그리고 매뉴얼에 따른다. 그래도 맘은 급하고 걱정은 산처럼 크다.
◇ 전화기부터 찾는 직업병도…
“전화로 심폐소생술을 상담해줄 땐데, 보호자는 환자가 죽는다고 난리가 났어요. 다행히 현장에 젊은 사람들이 있어서 협조가 잘 이뤄졌죠. 환자가 소생해서 응급실로 인계됐을 때 그 기분이란!”
언제 보람이 크냐는 기자의 물음에 창피하다며 손 사레를 치던 심지영 소방장(42)이 고백하듯 밝힌 6년간의 소회였다. 정중앙에는 ‘환자의 소생’이 자리하고 있었다. 소방관을 선택한 이유를 주저 없이 “운명”이라고 한 그이지만, 체력의 한계를 시험하는 격무만큼은 또렷한 답이 없다. 장장 15시간에 달하는 야간 근무를 마치고 나면 컨디션은 “바닥을 뚫는”다. 심 소방장이 피식 웃으며 한편으론 무서운 이야기를 던졌다. “소방관이 암 인자도 많고 단명 한다던데… 팔자려니 해요.”
한번 소방관은 영원한 소방관이라고 하더니! 그가 평소 ‘직업병’이라며 들려준 해프닝은 흥미로웠다. 언제 어느 때나 무슨일이 생기면 일단 전화기를 비롯한 통신수단부터 확보한단다. 그렇게 전화기를 붙들고서 필요한 대비를 해야 마음이 편하다고 했다. 하다못해 지하철을 탈 때에도 만약을 대비해 문을 수동으로 여는 방법을 골똘히 지켜본다.
김민정 소방관(40)의 이야기는 ‘다이내믹’했다. 김 소방관은 주소를 안 가르쳐 주는 게 곤욕이라고 했다. “어떤 신고자는 주소는 가르쳐 주지 않고 무조건 빨리 오라고 소리를 질러요. 집까진 알아서 오라는 데 정말 난감해요. 통신사 기지국으로 조사해도 1~5킬로미터의 오차가 있거든요. 영화에서처럼 어딘지 딱! 하고 나오지 않아요.”
별난 신고자에게 시달리는 건 일상이다. 막말과 욕설, 폭언이 많다보니 김 소방관은 “욕먹는 것은 익숙해졌다”고 말했다. 처음만 해도 욕설에는 무응답이나 통화를 끝내는 것으로 대처했다. 시간이 갈수록 욕은 괜찮으니 제발 주소만 제때 알려주면 땡큐다. 응급처치 안내를 해도 시키지 말고 빨리 오라는 신고자에게 김 소방관은 전화기를 붙들고 통사정하다시피 설득을 한다.
한번은 자살 기도자의 신고를 받았다. 목을 맨 상태에서의 전화를 한 터라, 말을 제대로 알아듣기 어려웠다. 그렇지만 목숨이 경각이 달린 터. 주소부터 확보해야 했다. 천신만고 끝에 구조출동을 해서 소방관들은 문을 부수고 들어가 신고자를 살렸다. 자살하겠다며 겁박하는 전화는 수시로 걸려온다. “전활 받으면 딱 그래요. ‘지금 뛰어내릴거야. 네가 부추겨서 뛰어내린거야’ 그러죠. 전 위치를 실토하도록 끈질기게 설득합니다.” 김 소방관이 어렵사리 위치를 확보하면 구조대와 구급대가 수분내로 출동한다. 불행 중 다행일까. 실제 자살로 이어지는 경우는 없었다고 한다. 전화말미 그가 늘 덧붙이는 말이 있다. “뛰어내리지 마세요. 저희가 구해드릴게요.”
최근 반려동물을 키우는 가정이 많다보니 당혹스러운 신고도 적지 않다. 한번은 자녀가 아프다는 신고에 출동해보니 강아지였다. ‘우리 애’의 정체가 반려동물이라고 말을 안 한 것. 적반하장의 경우도 있다. 동물병원에 가시라고 조언을 하면, 이송을 안해준다고 거칠게 항의한다. 문제는 이런 경우 정작 구해야 할 인명 구조가 지체된다는 점이다.
애로사항은 이밖에도 많다. 환자는 병원에 가고 싶지만, 보호자가 못 가게 하거나 그 반대의 사례다. 특히 응급환자일 경우에는 입술이 바짝바짝 탄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경우, 응급실의 치료비가 부담되기 때문이다.
가까스로 응급실로 이송한다 쳐도 이번에는 병원이 환자를 내친다. 그렇게 하릴없이 병원을 돌고 돈다. 병원의 기피 사유는 여럿이다. ‘돈을 안낸다’, ‘주취환자다’, ‘상습자다’, ‘진료비를 내지 않고 도망가서’….
온갖 사연으로 가득한 하루를 마감하면 이들에게 돌아오는 건 돌덩이가 된 어깨와 쉬어버린 목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소방관을 늘려준다는 약속은 언제쯤 이뤄질까? 4교대만 되면 정말 한결 낫겠다면서도 씩씩하게 응급환자를 살려내는 이들의 뒷모습은 기자의 착각이었을까. 무거운 짐이 얹어진 듯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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