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관계에 긴장이 심화되면서 문화·예술계에도 불똥이 튀는 모양새입니다. 그룹 방탄소년단을 향한 일본 보수 언론의 ‘흠집내기’ 식 보도에 이어, 이번에는 방탄소년단의 일본 음악 방송 출연이 녹화 하루 전날 취소됐습니다.
빅히트엔터테인먼트(빅히트)에 따르면 9일 예정돼 있던 방탄소년단의 아사히TV ‘뮤직스테이션’ 녹화가 전날 무산됐습니다. 아사히TV는 방탄소년단 멤버 지민이 과거 입었던 ‘티셔츠’를 문제 삼았는데요. 지민이 팬에게 선물 받은 것으로 알려진 이 티셔츠에는 광복을 맞은 한국 국민이 만세를 부르는 모습, 전범국 일본에 떨어진 원자폭탄 투하 그림과 함께 ‘애국심’ ‘우리역사’ ‘해방’ 등의 단어가 영문으로 새겨져 있습니다.
아사히TV 측은 홈페이지를 통해 “이전에 멤버(지민)가 착용한 티셔츠 디자인이 파문을 불러와 일부에서 보도됐고 방송사는 소속사에 착용 의도를 묻는 등 협의했다”며 “종합적인 판단 결과, 이번 출연을 진행하지 않기로 결정했다”라고 밝혔습니다. 아사히TV가 언급한 ‘일부’ 매체는 우익 매체 중 하나인 도쿄스포츠인데요. 도쿄스포츠는 지난달 지민의 티셔츠에 대해 “비상식적인 원폭 티셔츠” “반일활동을 하고 있다”라고 전했습니다. 심지어 5년 전 멤버 RM이 광복절을 기념하며 SNS에 올린 글까지 끄집어내 비난했고요.
티셔츠는 표면적인 이유일 뿐이라는 주장도 나옵니다.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징용 책임이 있는 일본 기업에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는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단이 나온 것과 관련해, 일본 정부가 문화·예술 분야에서까지 한국을 압박하고 있다는 해석입니다. 이 판결의 영향으로 트와이스나 방탄소년단 등 한국 가수들이 NHK ‘홍백가합전’ 출연자 명단에서 제외될 수도 있다는 보도도 나왔습니다. 일본의 반공우파 매체인 유칸후지 온라인판 후지자크자크가 NHK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이렇게 전했는데요. ‘홍백가합전’은 일본 가요계 연중 최고 행사 중 하나로, 지난해 트와이스가 한국 가수로는 6년 만에 이 프로그램에 출연한 바 있습니다.
이런 긴장 속에서도 일본 아미(방탄소년단 팬클럽)는 꿋꿋합니다. 방탄소년단이 지난 7일 일본에서 낸 아홉 번째 싱글 ‘페이크 러브/에어플레인 파트.2’(FAKE LOVE/Airplane pt.2)는 오리콘 데일리 싱글 차트 1위에 올랐고요, 13~14일 도쿄돔을 시작으로 이어지는 ‘러브 유어셀프’(LOVE YOURSELF) 돔 투어도 매진입니다. 흔히 문화 교류는 영혼을 잇는 유대라고 하죠. 이 유대가 외부적인 이유로 단절되는 일은 없어야 할 것입니다.
이은호 기자 wild37@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