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었지만, 부모님께 피해를 입으셨다고 말씀하신 분들을 한 분 한 분 직접 만나 뵙고 말씀을 듣겠습니다.”
힙합 가수 마이크로닷이 결국 사과했습니다. 부모님이 20년 전 충북 제천에서 친척과 이웃 등에게 거액을 빌려 뉴질랜드로 도주했다는 주장이 나온 지 3일 만입니다. 의혹이 수면 위로 올라왔을 당시 명예훼손으로 고소하겠다던 모습과는 180도 달라진 태도인데요. 마이크로닷의 사과가 싸늘해진 여론을 달랠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립니다.
의혹은 지난 19일 시작됐습니다.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마이크로닷의 부모님이 과거 충북 제천에서 주변인들에게 사기를 저지른 뒤, 어느 날 갑자기 뉴질랜드로 도주했다는 취지의 글이 퍼져 나갔습니다. 마이크로닷 측은 의혹을 전면 부인했습니다. 명예훼손으로 고소하겠다는 경고도 덧붙였죠. 악수였습니다. 이후 사기 피해 제보가 속출했고, 온라인 연예 매체 디스패치를 통해 지난 1999년 6월 제출했던 고소장과 사건사실 확인원 등이 공개됐습니다.
고소장에 따르면 충북 제천 송학면에서 목장을 운영했던 마이크로닷의 부모는 1997년 5월쯤 지인 10여명에게 수십억 원을 빌린 뒤 잠적한 혐의로 경찰에 피소됐습니다. 또 다른 피해자는 마이크로닷의 부친이 여러 사람을 연대보증인으로 내세워 6~7억원 가량을 대출 받은 뒤 야반도주를 했다고 밝혔습니다.
여론은 급속도로 악화됐습니다. 마이크로닷은 물론, 그와 공개 열애 중인 배우 홍수현에게까지 악플이 달릴 정도였죠. 침묵 속에 하루를 보낸 마이크로닷은 21일 새벽 입장문을 내 부모님의 사기 의혹에 대해, 또 앞선 자신의 대응에 대해 사과했습니다. 그는 부모님과 관련한 의혹에 대해 정확하게 알지 못했다고 합니다. 가족이 뉴질랜드로 이민 갈 당시 그는 겨우 다섯 살로 너무 어렸다는 겁니다.
마이크로닷과 소속사 모두 어설픈 대응으로 화를 키웠습니다. 의혹이 처음 불거졌을 당시, 소속사 측은 “‘긴밀한’ 확인 과정을 통해 사실 무근임을 확인했다”고 말했습니다. 긴밀하다는 건 빈틈이 없다는 뜻이죠. 그런데 이후 3일 만에 입장이 뒤집히면서 소속사의 처지가 우습게 됐습니다. ‘모른다’와 ‘아니다’는 동어가 아니라는 걸, 소속사는 몰랐던 걸까요?
마이크로닷 또한 그동안 피해자의 문제 제기를 묵살했다는 지적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모양새입니다. 의혹이 처음 제기된 건 2년 전으로, 마이크로닷이 그동안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무시했다는 건데요. 자신을 피해자 가족이라고 소개한 A씨는 마이크로닷이 자신의 SNS 계정을 차단해왔다며, 이미 문제를 인지하고 있던 것으로 보인다고 주장했습니다. 일부 누리꾼들은 마이크로닷이 자신의 SNS에 달린 부모님의 사기 의혹에 관한 댓글을 삭제했다면서 A씨의 주장에 힘을 보탰고요.
20여년 전의 고소 건은 피의자들의 행방을 찾을 수 없어 기소 중지된 상태입니다. 사기죄 공소시효는 7년이지만, 피의자가 형사 처분을 피할 목적으로 해외에 체류했다면 그 기간만큼 공소시효는 중지됩니다. 경찰도 피의자에 대한 공소시효가 아직 남아있다면서 수사 재개를 검토하고 있다고 합니다. 사건 피의자가 마이크로닷의 부모님이라는 사실은 이미 확인됐으며, 피의자들의 자진 귀국을 종용할 계획이라는 보도도 나왔습니다. 부디 모두에게 조금의 억울함도 남지 않도록 문제가 해결되길 바랍니다.
이은호 기자 wild37@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