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에 연이틀 비상저감조치가 발령됐다. 환경부 초미세먼지 예보기준을 WHO(세계보건기구) 수준으로 강화해야 한다는 시민들 요구가 계속되고 있다.
13일에 이어 14일 중국발 미세먼지까지 유입되며 전국 총 10개 시도에서 비상저감조치가 시행 중이다. 수도권에는 이틀 연속 비상저감 조치가 발령됐으며 이는 지난해 1월과 3월에 이어 이번이 세 번째다. 국립환경과학원에 따르면 이날 대기 정체와 중국발 스모그 영향으로 서울의 미세먼지 농도는 137㎍/㎥, 초미세먼지 농도는 106㎍/㎥으로 평소보다 4~10배 가량 높은 수치를 기록하고 있다.
1급 발암물질인 미세먼지가 기승을 부리며 미세먼지 기준에 대한 국민의 불안이 높아지고 있다. 우리나라 환경부는 WHO보다 완화된 미세먼지 기준을 사용하고 있다. 환경부는 이미 지난 3월 기준을 한차례 강화했다. 개정된 환경부 기준에 따르면 지름 2.5㎛ 이하의 미세먼지(PM-2.5. 초미세먼지) ‘좋음’은 0~15㎍/㎥로 이전과 같다. 그러나 ‘보통’은 현행 16~50㎍/㎥에서 16~35㎍/㎥로, ‘나쁨’은 51~100㎍/㎥에서 36~75㎍/㎥로, ‘매우 나쁨’은 101㎍/㎥ 이상에서 76㎍/㎥ 이상으로 기준이 강화됐다.
그러나 환경부 기준과 WHO 권고기준 간 괴리는 여전하다. WHO 권고기준은 초미세먼지 ‘보통’은 16~25㎍/㎥, 나쁨은 26~50㎍/㎥, 매우 나쁨은 50㎍/㎥ 이상으로 본다. 이 때문에 환경부에 따르면 초미세먼지는 ‘보통’인데 WHO 기준에 따르면 ‘나쁨’이거나, 환경부는 ‘나쁨’인데 WHO 기준에 따르면 ‘매우 나쁨’인 경우가 발생한다.
또 환경부와 서울·경기·인천 등 수도권 3개 지방자치단체가 공동 발령하는 고농도 미세먼지 비상저감조치의 발령은 아직 바뀌기 전 기준을 고수하고 있다. 서울형 미세먼지 비상저감조치는 당일 오후 5시 기준 ▲당일(0시~오후 4시) 초미세먼지 50㎍/㎥ 초과 ▲익일 초미세먼지 나쁨 (50㎍/㎥ 이상) 이상 예보 기준을 충족할 경우 시행된다. 환경부가 기준을 강화한 대로라면 35㎍/㎥ 이상부터가 ‘나쁨’이다. 그러나 고농도 미세먼지 비상저감조치는 이전 기준인 50㎍/㎥을 고수하고 있는 것이다.
불안한 시민들은 환경부를 믿지 못하겠다고 하소연한다. 시민들은 WHO 권고기준으로 현재 미세먼지 수준을 알려주는 애플리케이션 내려받아 참고하는 등 자구책을 찾는 상황이다. 지난해 3월 기준 디지털 마케팅 기업 NHN애드가 발표한 내용에 따르면 한 미세먼지 애플리케이션의 국내 총설치수는 89만여건에 달했다. 회사원 이모(28·여)씨는 “포털사이트에서 제공하는 미세먼지 수치를 믿지 않은 지 꽤 됐다”며 “애플리케이션으로 한 번 더 확인하는 게 습관이 됐다”며 불편을 토로했다.
포털사이트에도 ‘메인화면에서 제공하는 미세먼지 수준을 우리나라 환경부가 아닌 WHO 기준으로 알려달라’는 사용자 요구가 빗발쳤다. 이에 포털사이트 ‘네이버’는 지난해 10월부터 WHO 권고기준과 미국 환경보호국 대기오염지수(US.AQI) 권고치 기준범위 내에서 비교 분석해 볼 수 있는 서비스를 제공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해당 수치는 메인화면에 바로 뜨지 않고, 한 번 더 클릭해서 들어가야만 볼 수 있다. 또 이 사실을 모르는 사용자들도 많다.
시민들은 환경부의 안일한 대응을 지적했다. 두 아이의 아빠라고 밝힌 한 네티즌은 “환경부가 미세먼지 기준을 WHO 권고기준보다 완화해서 설정한 이유가 무엇인지 이해가 안 간다”며 “우리나라 국민은 미세먼지를 워낙 많이 마셔서 내성이 높으니,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는 ‘나쁨’도 우리 국민들에게는 ‘보통’ 수준이라는 말인가”라고 비판했다.
환경부 관계자는 WHO 기준을 절대적 수치가 아닌 상대적 수치로 봐달라고 설명했다. 관계자는 “WHO에서는 권고기준, 잠정목표 (3), 잠정목표 (2), 잠정목표 (1) 4단계로 기준을 설정했는데 우리나라는 잠정목표 (2)에서 미국, 일본과 같은 잠정목표 (3)으로 강화했다”며 “환경기준이란 규제나 처벌을 위한 것이 아닌 정책적인 목표치다. 그래서 WHO도 기준을 4단계 제시하고, 각국의 정책, 환경 등 역량과 상황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맞는 목표치를 설정하라고 제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기준을 강화할 경우 매일 미세먼지 ‘나쁨’이라고 뜨게 되고, 국민 불안감을 오히려 더 유발할 수 있다”며 “또 어제와 오늘을 구분하는 의미가 없어질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관계자는 고농도 미세먼지 비상저감조치 관련해서는 “전국적으로 비상저감조치 발령 기준을 통일하고 맞추는 작업을 조만간 시행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정진용 기자 jjy4791@kukinews.com/ 사진=박태현 기자 pth@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