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피가 터질 정도로 열심히 공부하는 수험생, 야근도 불사하는 직장인, 그리고 밤낮없이 환자를 돌보는 의사. 이들 세 사람이 우연찮게 모였다면 그 장소는 어디일까. 아무래도 병원일 가능성이 가장 높지 않을까.
우리 사회에서 ‘과로’가 열정의 증거처럼 여겨진지 오래다. 앞서 예를 든 세 사람 모두 사회적으로 긍정적인 이미지를 주는 것처럼 말이다. 과거 한강의 기적을 만들어 낸 산업화의 초석이기도 했지만, 오늘날 과로는 질병과 죽음을 야기하는 사회적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특히 최근 의료현장에서는 스스로 목숨을 끊은 간호사, 근무 중 갑자기 세상을 떠난 의사 등 과로로 인한 사망 사건이 잇따라 발생하고 있다. 대학병원, 종합병원 등 환자가 몰리는 대형병원일수록 문제가 심각하다. 간호사들은 물 한 잔 마시지 못하는 환경에서 일하고, 의사들도 밤잠 못자는 과로에 시달리고 있다고 호소한다.
그러나 대책은 수년째 제자리 상태다. 부족한 의료 인력을 늘려서 과중한 업무를 분담하자는 정부와 낮은 수가와 열악한 근로환경 개선부터 요구하는 의료계의 의견이 수년째 엇갈리고 있기 때문이다.
분명한 것은 현재 의료현장의 문제가 비정상적이라는 점이다. 외과, 산부인과 등 필수전문과목에서는 전공의 정원을 채우지 못하는 경우가 매년 발생하고, 간호사들은 화장실에 갈 시간이 없어 물도 마시지 못하며 일을 한다고 호소한다.
지방 의료기관에는 의료인력 부족이 더 심각하다. 수술실에서는 법적으로 인정되지 않는 PA가 관례로 자리 잡고 있고, 심지어 동시에 여러 수술이 이뤄지거나 무자격자가 수술을 집도하는 사건도 불거지는 등 다양하다.
결국 의료인의 과로는 반드시 해결해야 하는 문제다. 과로로 인해 환자 안전이 위협 당하고, 의료계 희생자를 줄이어 양산하는 구조를 지속해서는 안 될 일이다. 때문에 대립만 지속해서는 해결책을 찾기 어렵다. 의료계는 인력 증원에 대한 걱정을 어느 정도 감수할 필요가 있고, 그동안 낮은 수가가 문제라면 정부도 정당한 비용을 치를 수 있어야 한다. 정부와 의료계를 비롯한 국민적인 합의가 필요한 때다.
전미옥 기자 romeok@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