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개정된 의료기기 ‘신포괄수가제’가 의료 질을 낮춰 국민에게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됐다.
지난해 12월 31일 정부가 의료기기 신포괄수가제 기준을 개정함에 따라 포괄항목이 대폭 확대됐다. 변경된 내용에 따르면 기존 1인당 사용금액이 20만원이 넘을 경우 비포괄로 분류되던 의료기기 품목이 올해부터 포괄로 전환된다. 이에 따라 총 2746개 치료재료가 포괄품목으로 적용받게 됐다.
의료기기 업계 매출도 직격타를 맞았다. 치료재료 포괄 품목이 넓어지면서 유사 품목 중 가격이 비싼 특수 제품들의 사용이 급속도로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의료기기산업협회 등 유관 기관에서는 이번 개정안이 의료기기 시장 활성화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뿐더러 국민 의료 질을 하락시킬 것이라며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득보단 실 크다는 업계, 원인은 병원 속 ‘값 싼 제품’ 비율 증가?
신포괄수과제는 환자 질병군에 따라 기본적인 진료에는 사전에 정해진 포괄수가를 적용하고, 고가의 서비스와 의사행위 등에는 행위별 수가로 보상하는 제도를 말한다. 행위별 수가제와 포괄수가제 장점을 결합해 만들어져 국민에게 경제적 부담을 줄이고, 의료기기 사용을 촉진한다는 취지를 담고 있다.
그러나 포괄항목이 늘어나면서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이번 개정에 따르면 1인당 사용금액이 20만원 이상인 치료재료 중 ‘유사항목 동일분류’ 항목으로 정해지면 규격·재질·형태 등 상관없이 같은 금액으로 측정된다. 결국 의료기관에서는 같은 가격이라면 특별 기능이 있는 원가가 비싼 제품보다 기능이 없지만 값싼 일반 제품을 선호할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일례로 환자 가래를 뽑는 ‘흡인용 카테터’ 경우 많은 종류가 있지만 그 중에서도 환자 안전을 위해 가온·가습 효과를 적용해 만든 제품도 있다. 이러한 제품 경우 일반적 제품보다 가격이 비싸지만 ‘유사항목 동일분류’로 구분돼 같은 포괄 금액으로 처리된다.
수술 환자에 사용되는 센서도 마찬가지다. 마취 중 산소포화도나 심전도만 측정하는 센서가 있는가 하면 근육 이완 위험성까지 알리는 기능이 있는 센서 등 종류가 다양하다. 이러한 특수 센서 경우 급여기준이 ‘매우 위험한 환자에게 사용하는 경우’ 같이 제한적인데다가, 이번 지침 개정으로 인해 원가 가격을 보장받지 못하기 때문에 실제 현장에서는 사용될 가능성이 낮아졌다.
업계는 의료 질 저하뿐만 아니라 신의료기술이 제대로 활용되지 못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국의료기기산업협회 지정훈 수가개선 분과장은 “개정 전 의료기관에서는 조금 비싸다고 해도 환자 치료 질 향상에 도움이 되면 당연히 더 좋은 제품을 사용했다. 가격이 높아지는 만큼 똑같이 보상해줬기 때문”이라며 “비포괄 제품이 포괄로 넘어가면서 어떤 제품을 사용해도 동일한 가격으로 반영되니, 의료기관에서는 이익을 내려면 기본적이고 성능이 비교적 떨어지는 저렴한 제품을 쓸 수밖에 없다”고 언급했다.
또한 “진단 및 처치 정확성 등 임상적 유용성을 인정받은 품목이라도 포괄항목으로 분류되는 경우 사용량이 감소할 수 있고, 정액수가가 포괄로 분류됨에 따라 치료재료 재사용 문제가 심화될 우려도 있다”고 했다.
과소·과잉 진료, 공공병원 만성 적자 해결 순기능도…“합의점 찾아야”
정부나 의료계에서는 신포괄수가제 순기능에 중점을 두고 있다. 신포괄수가제도는 입원료·처치료·검사료·약제비 등을 미리 정해진 금액대로 지불하고, 의사의 시술 및 행위에 대해서는 행위별 수가제를 적용하고 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은 신포괄수가제를 통해 과소·과잉 진료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는 입장이다. 또한 적절한 약제, 치료재료 사용으로 공공병원의 만성적인 적자 문제도 함께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의료계 역시 단편화된 수가 품목으로 처방이 간편해지고, 불필요한 제품 도입이나 사용을 줄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고 본다. 더불어 이를 통해 국민의 의료비 부담도 감소됐다고 분석한다.
한국의료기기산업협회 보험위원회 황효정 포괄‧신포괄 부분과장은 “이번 개정은 포괄구분 기준에 대한 학회 및 전문가와 충분한 논의가 이뤄지지 못했다”며 “내년에 열릴 예정인 7개 질병군 포괄수가제의 원가 기반 지불모형 개편에서는 의료전문가와 산업계가 참여해 충분한 논의와 안내가 이뤄지길 기대한다”고 전했다.
박선혜 기자 betough@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