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다가 상금도 없고, 내 돈을 기부하면서 말이다. 국제구호개발기구 옥스팜코리아가 강원 인제군과 함께 개최하는 '2023 옥스팜 트레일워커'가 바로 그 행사다.
1981년 홍콩에서 시작된 옥스팜 트레일워커는 영국, 뉴질랜드, 프랑스, 인도, 호주 등 전 세계 12개국에서 진행되고 있다. 대회를 통해 모인 후원금 전액은 전 세계 90여 개국 가장 도움이 필요한 긴급구호 현장에서 사용된다.
순위와 기록을 놓고 경쟁하는 대회가 아닌, 순수하게 기부를 목적으로 팀원들과 극한의 경험을 공유하는 뜻깊은 행사인 만큼 참가자들 사이에서는 '인생 기부 프로젝트'로 불린다.
국내에서는 지난 2017년 전남 구례에서 처음 열렸으며 이후 강원도 인제와 고성군 일대 등에서 열린 다섯 차례의 대회를 통해 총 7억7000여만 원의 기부금이 모였고 2232명이 참가했다.
오는 5월 20일과 21일 양일간 강원 인제군 일대에서 개최되는 올해 대회에도 900여 명이 참가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처럼 결코 쉽지 않은 도전에 사람들이 이토록 열광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15일 인제군청을 방문한 옥스팜 트레일워커를 총괄하는 옥스팜코리아 박성민 팀장을 만나 들어봤다.
다음은 박성민 팀장과 일문일답.
- 코로나19 이후 다양한 기부 걷기대회가 많이 생겼는데 옥스팜 트레일워커는 무엇이 다른가?
일반적으로 기부 걷기대회라고 하면 세상에 기여하는 좋은 마음으로 시작해 육체적으로 크게 어렵지 않은 정도로 적당히 땀 흘리고 행복하게 끝나는 소프트한 형태의 대회로 진행하는 경우가 많다.
밤새워 100km를 걷는 대회인 옥스팜 트레일워커는 꽤 큰 금액의 기부금을 직접 모아야 하면서도 새벽에 시작해 다음날 저녁까지 걸으면서 자신의 한계에 도전하는, 어떻게 보면 극한의 형태라고 볼 수 있는 기부행사다.
물론, 대회의 수익금을 기부하는 것이 아닌 참가비와 기부펀딩 모두 전액 기부가 되는 것도 또다른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 38시간 동안 100km를 4인 1조로 완주하고 기부펀딩까지 달성해야 하는 등 참가 자격과 수칙이 무척 까다롭다. 이렇게 까다로운 조건에도 매년 200팀 가까이 신청하는 이유는?
먼저 자신의 한계에 도전해 볼 수 있는 대회라는 점과, 다음으로는 직접 기부금을 모으고 대회에서 자기자신을 극복해내는 일련의 과정에서 느끼는 성취감이 남다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기부에 대한 마음과 상황적 여유가 충분해도 체력이 부족한 사람이 있고, 체력과 의지가 되더라도 기부에 대한 인식과 자신이 직접 펀딩에 나서야하는 것에 대해 막연한 사람도 있다.
하지만 이렇게 대회 완주를 위해 넘어서야 하는 장애물이 까다롭고 난이도가 높기에, 완수했을 때 성취감과 만족감은 더욱 큰 것 같다.
1년 정도의 시간이 지나면 힘든 순간들은 잊혀지고 좋은 기억들만 남아 다시금 그 만족스러운 순간을 떠올리게 마련이다.
- 홍콩을 비롯한 다른 12개국에서도 대회가 진행되는데 한국의 대회와 다른 점과 같은 점은 무엇인가? 한국 대회만의 특별한 점이 있다면.
우리나라는 최근 한파가 몰아치는 매서운 추위의 겨울을 포함해 사계절이라는 다양하고 뚜렷한 기후조건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외국인들이 매력을 느끼는 웅장하면서도 아기자기한 산악 위주의 지형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진행되는 대회이기에 자연스럽게 다른 국가들의 대회에 비해 난이도가 있는 편이다. 봄철의 큰 일교차와 끊길 듯 끊기지 않는 크고 작은 산들로 구성된 코스로 인해, 비교적 큰 규모의 트레일 대회가 자주 열리는 홍콩이나 유럽에서 온 참가자들조차 상당히 힘들어한다.
- 대회에는 어떤 분들이 주로 참가하나? 특별히 기억에 남는 팀들이 있다면.
대회에는 만 19에 이상 남녀노소가 참여한다. 주요 참가연령대는 30~50대인데, 일생에 100km 걷기에 대한 소망을 달성하고 싶어 대회에 참가하는 사람들이 많고, 달리기가 아닌 체력에 부담이 덜 가는 걷기대회이기에 다른 대회보다 40~60대의 비중이 높은 편이다.
대회 홍보대사인 김미순-김효근 부부는 아내분이 시각장애인인 팀이다. 2018년 이 팀과 함께 옥스팜 홍콩대회에 참가했다.
그 팀을 서포트하기 위해 100km 중 절반인 50km 정도를 옆에서 걷고 달리며 앞이 보이지 않는 어려움에도 세상에 이바지하고자 하는 부부의 의지와 육체적인 한계를 극복해내는 모습을 보며 큰 감동을 받았다.
지금도 매년 저희 대회에 직접 참가해 완주하며 다른 참가자들에게 큰 울림을 주고 있다.
- 기부펀딩이라는 미션이 무척 생소한데 이런 어려운 수칙을 적용하는 이유는?
누군가에게 자신의 일로 도움을 요청하는 것도 쉽지 않은데, 전 세계 가난을 극복하는 일에 동참해달라고 요청하는 것은 더욱 어려운 일이다.
기부펀딩이라는 미션은 펀딩을 해야하는 참가자가 대회 목적에 대해서 잘 이해하고 가족과 지인들에게 기부를 이끌어 내야하는 과정이다.
이를 통해 자신들이 하고 있는 행동의 의미를 더욱 확고히 인지하는 계기가 되고, 옥스팜의 활동을 더 자세하게 탐구하고 지지하는 과정도 된다. 이것은 대회가 추구하는 자발적인 기부행위의 보편화와 우리나라의 기부문화를 적극적으로 바꾸는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 대회 준비를 위해 특별히 심혈을 기울이는 부분이 있다면.
아무래도 대회에 참여하는 참가자와 스태프, 자원봉사자 및 관계자들이 모두 안전하게 대회를 마쳐야하기 때문에 기부도 중요하지만 대회 준비와 운영에 있어서는 ‘안전’이라는 단어를 가장 중요하게 여기고 있다.
이를 위해 지자체, 지역 자원봉사단체, 협력기관들과 사전에 철저한 시뮬레이션과 체계적인 준비를 통해 대회를 진행하고 있다. 심지어 현장 등록과정에서 다른 대회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CPR실습교육을 지역 소방서와 함께 실시한다.
- 대회 장소가 바뀔 때 마다 코스도 달라지는데 코스 개발은 어떻게 하나?
통상 대회가 열리기 8개월 전부터 코스 개발에 들어간다. 먼저 온라인에 있는 지도 정보사이트를 통해 여러가지 길과 경로를 파악하고, 대략적인 코스를 임의로 그려본 후 현장답사를 진행한다.
1차 차량 답사 이후 구간별 도보 답사를 하고, 그 다음 단계에서는 참가자들의 걷는 시간대를 감안해 100km를 한 번에 걷거나 50km씩 두 번 나누어 걷는다.
직접 걸어봐야 시간대별로 달라지는 현장의 특성을 파악해 참가자들에게 더 나은 서비스를 제공하고 알맞은 체크포인트의 위치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요즘 같은 겨울에도 지속적으로 코스답사를 하게 되는데 매우 춥지만 멧돼지를 마주칠 위험이 줄어들고, 나무의 잎사귀들이 떨어져 황량하지만 그만큼 노면이 잘 드러나서 옛길도 찾기가 쉬워지는 특징도 있다.
- 6년 동안 대회를 운영하면서 특별히 기억에 남는 점이 있다면.
무엇보다 전 세계적으로 큰 영향을 끼친 코로나19는 잊을 수 없는 난관이었다.
대회를 개최한 이래 크고 작은 난관들이 있었지만 매번 극복해내며 자리잡고 성장해가고 있던 와중에, 2020년에 찾아온 코로나로 인해 해당연도 대회가 취소되고 2년간 대회일정을 4차례 연기했다.
행사를 개최해본 사람이라면 이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잘 알 것이다. 참가자의 입장에서도 2년간 대회를 기다린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실제 대회를 치를 수 있었을 때도 감염을 막고 안전하게 대회를 완료하기 위해 각종 통제조항을 지키며 관계자, 참가자들과 함께 힘들게 그 미션을 완료했던 것도 기억이 남는다.
- 올해 50km 코스를 처음 신설했는데 그 이유는?
대회를 지속적으로 개최하는 동안 체력적으로 조금 자신이 없는 사람들이나 부담을 느끼는 사람들로부터 더 쉬운 코스에 대한 요구가 많았다.
더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한계에 대한 도전의 기회와 기부에 대한 의지를 다질 수 있는 있도록 올해는 시범종목 개념으로 50km 코스를 30팀에 한정하여 진행할 예정이다.
- 올해 대회에 기대하는 점이 있다면.
5월에 열리는 2023년 옥스팜 트레일워커는 인제군과 함께하는 3번째 대회다. 전 세계 가난을 극복하고 불공정을 해소하는 본래 취지도 있지만, 수도권이 아닌 지역에서 열리는 만큼 많은 협력을 통해 인제 및 강원 지역에 실질적인 도움이 되고 지역의 기부문화를 바꾸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 앞으로 옥스팜 트레일워커를 어떤 대회로 키우고 싶나?
대회의 목적은 진지하고 엄중하지만 여기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대회신청을 하고 끝마치는 순간까지 더욱 즐기고 소중한 인생 경험이 되길 바란다.
우리가 함께 살아가는 이 세상은 적극적인 도전에 기꺼이 나서는 사람들의 지속적인 노력과 행동을 통해 조금씩 나아지고 변화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옥스팜 트레일워커가 이런 행동하는 사람들의 도전의 장이 되길 바란다.
인제=한윤식 기자 nssysh@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