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으로 오는 21일(현지시간) 美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의 빅스텝에 제동이 걸렸다. 미 연준의 고강도 긴축 영향이 본격화되면서 0.25%p 인상만으로 물가 안정 목표 달성이 충분하다는 전망이 나온다.
연준은 오는 21일부터 이틀간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 회의를 열고 금리 인상 폭을 결정할 예정이다. 미국의 정책금리는 현재 4.50~4.75%로 당초 시장에서는 연준이 이번 FOMC에서 금리를 0.50%p 인상할 것으로 내다봤다. 시카고상품거래소(CME)의 페드워치에 따르면 이달 연준이 빅스텝을 밟을 가능성은 74.2%에 달했다.
시장의 이같은 전망은 파월 의장의 ‘최종금리’ 발언에 근거하고 있다. 파월 의장은 지난 7~8일 열린 상·하원 청문회에서 “최종금리가 이전 전망보다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전체적인 지표가 더 빠른 긴축이 정당하다는 것을 보여준다면 금리 인상 속도를 높일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미 연준의 빅스텝 가능성은 한국에도 부담으로 작용했다. 현재 한미 금리차는 1.25%p 미 연준이 빅스텝에 나설 경우 금리차는 1.75%p까지 확대된다. 한국 보다 높은 미국의 금리는 국내 외국인 자본의 이탈을 부추기는 여러 요인 중 하나인 만큼 한은의 금리 인상 압력을 부추겼다.
하지만 이러한 시장 분위기는 SVB 사태 이후 급변하고 있다. SVB는 캘리포니아주 산타클라라에 본사를 둔 은행으로 주로 벤처기업과 거래해온 은행이다. 지난해 말 기준 SVB 총자산은 2090억달러(276조원)로 미국에서 16번째 대형은행이다.
SVB는 연준의 고강도 긴축에 따라 주요 고객인 벤처기업들의 자금난에 유동성 마련을 위해 매각에 나선 채권의 가격 하락이 겹치면서 결국 파산했다. SVB 파산으로 미국내 단기금융시장의 불확실성이 확대되고 미 연준의 급격한 금리인상 영향이 실물경제에 본격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증권가에서는 이에 연준이 이번 FOMC에서 금리를 0.25%p 인상하는데 그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한국투자증권 이남강 연구원은 “SVB 파산은 연준의 금리인상에도 불구하고 작년 10월 이후 다시 완화세로 돌아선 금융여건을 다시 악화시킬 가능성이 높다”며 “일정 정도의 금융여건 악화는 수요압력이 높은 현재의 미국경제 상황에서 노동수요와 총수요를 억제하여 물가안정목표를 이루려는 연준의 목적에 부합한다”고 분석했다.
이어 “SVB 파산이 단기자금에 대한 유동성 프리미엄 상승으로 이어진다면 FOMC는 3월 회의에서 0.25%p 인상만으로도 0.50%p 인상에 상응하는 효과를 달성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고 전망했다.
하이투자증권 박상현 연구원도 이번 사태를 두고 “연쇄 은행 부도 가능성과 뱅크런(대규모 은행 인출), 벤처 및 스마트 기업의 자금난과 연쇄 도산 리스크를 야기할 수 있어 SVB 사태의 후폭풍이 우려된다”며 “회색코뿔소, 즉 신용위기가 왔다”고 분석했다. ‘회색코뿔소’는 충분히 예상할 수 있고 파급력도 큰 위험이지만 사람들이 외면하거나 대처하지 못한 위험을 의미한다.
그러면서 “미국 연준의 정책 행보 역시 더욱 중요해졌다. 연준이 물가안정만을 위해 금리인상 사이클을 고집한다면 사태의 조기 진화는 더욱 힘들 수 있다”고 강조했다. 다만 그는 “일부 은행의 추가 부실리스크가 있지만 전반적인 미국 은행 펀더멘탈은 아직 양호하다”고 과도한 우려를 경계했다.
조계원 기자 chokw@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