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상당수의 이주배경 아동이 사각지대에 방치돼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학교에 가서 교육 받을 권리나 아플 때 병원에 가서 치료 받을 권리가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실정이다. 특히 부모의 체류 기간이 만료돼 출생신고를 하지 못한 미등록 이주배경아동의 경우 복합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어 정책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노충래 초록우산 아동복지연구소장은 24일 국회도서관에서 열린 ‘취약·위기 이주배경 아동·청소녀의 권리 실태와 대책’ 토론회에서 “유엔아동권리협약과 아동복지법에는 모든 아동이 차별 없이 권리를 보장받아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면서 “사각지대에 있는 이주배경아동들이 건강한 한국 사회의 일원이 될 수 있는 토대를 만들어야 한다”고 밝혔다.
2023년 기준 한국의 이주배경 학생 수는 18만명에 달한다. 이 중 부모의 체류 자격 문제로 인해 합법적으로 등록되지 못한 미등록 이주 아동은 공식 집계만으로도 5078명, 실제로는 약 2~3만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한국행정연구원은 2021년 기준 미등록 이주 아동 수가 약 2만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고 지난해 발표했다. 미등록 이주 아동은 외국인 부모의 체류 기간이 만료됐거나 난민 신청에 실패한 경우에 해당한다. 출생등록을 하지 못해 복합적인 어려움을 겪는 실정이다.
이주배경 아동은 한국국적 아동에 비해 교육권을 제대로 보장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한국의 만 13~18세 청소년의 학업 중단 경험 비율은 0.2%에 그치는 데 반해 이주배경 아동은 1.5%에 달했다. 여성가족부에 따르면 ‘학교를 다닌 적 없다’고 응답한 비율도 2.5%나 됐다. 중도입국 아동의 경우 학업 중단 경험은 3.5%, 학교에 다닌 적 없는 비율은 7.7%로 더 높게 나타났다.
의료서비스 접근도 어려운 실정이다. 국민건강보험은 이주배경 아동 중 일부에게 제한적으로 가입을 허용하고 있어, 이주배경 아동 대부분은 의료서비스를 제공받지 못하고 있다. 실제 2023년 필수예방접종 완전접종률을 보면 이주배경 아동은 1세 55.2%, 2~3세 66.7%에 그쳤다. 한국 국적 아동이 1세와 2~3세가 각각 96.4%, 92.9%에 달하는 것과 비교하면 낮은 수치다.
특히 미등록 이주 아동은 의료기관을 이용할 때 건강보험 급여 적용을 받지 못해 과도한 치료비를 부담해야 한다. 상당수는 경제적으로 병원비를 감당하기 어려워 진료를 미루거나 포기하는 상황이다. 일부에선 통증이나 이상 증세가 있어도 부모에게 알리지 않거나 스스로 문제를 감내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김사강 이주와인권연구소 연구위원은 “복지부의 ‘외국인근로자 등 의료비 지원사업’이 있지만, 예산이 한정돼 있고 지원 대상이 될 수 있는 자격 요건이 까다로워 극소수만 지원 받고 있다”면서 “보호자가 없거나 학대 피해를 받아 아동양육시설에 입소했는데도, 의료급여 수급권자가 되지 못해 이주배경 아동들이 건강보험료를 내고 있다”고 지적했다.

부처별로 소관 정책이 분절돼 있는 점도 문제다. △법무부는 국내출생 불법체류 아동 조건부 구제대책 △외교부는 재외동포청은 사할린, 고려인 등 재외동포 지원 △여성가족부는 이주배경청소년지원센터 설치를 통한 다양한 사업 △보건복지부는 외국인 근로자등 의료지원 사업 △교육부는 차별 없는 교육 환경을 위한 한국어 예비과정을 운영하는 등 지원 정책들이 다양한 부처에 흩어져 있는 실정이다.
노 소장은 “모든 아동이 건강하게 태어나 안전하고 행복하게 성장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면서 “이주배경 아동과 그 가족에 대한 차별과 편견, 제도적 장벽을 없애기 위해 사회적 노력이 필요하다. 다양한 부처에 흩어져 있는 정책의 통폐합을 통해 범정부적 대책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한국에서 태어난 모든 아동에게 출생등록이 될 권리가 보장돼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현재 ‘가족관계의 등록 등에 관한 법률’은 적용 대상을 대한민국 국민으로 제한하고 있다. 국내에서 출생한 외국인 아동은 출생등록이 불가능한 상태이다. 외국인 부모는 국적국 재외공관에 출생 신고를 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외국인 부모가 체류 자격을 상실했다거나 난민, 무국적자인 경우엔 쉽지 않은 실정이다.
국제인권협약기구인 유엔(UN) 아동권리위원회는 가입국에 부모의 출신과 관계없이 모든 아동에게 적용하는 ‘보편적 출생등록제’ 도입을 권고하고 있다. 사회적 객체로서 인격을 갖추고 성장·발달하기 위한 최소한의 보호장치이기 때문이다. 22대 국회에서 관련 법안이 3건 발의돼 있지만, 아직 계류 중이다.
권영실 재단법인 동천 변호사는 “외국인 아동 출생등록, 장기체류 미등록아동 체류권 부여, 보육권과 교육권·건강권 보장, 미성년 외국인에 대한 구금 금지 등에 대해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