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5세 수십 명 데리고 홀로 40분 수업…“절대 감당 못 한다”

만5세 수십 명 데리고 홀로 40분 수업…“절대 감당 못 한다”

기사승인 2022-08-06 06:00:24
지난해 6월 서울시 한 초등학교에 학생들이 등교하고 있다.   쿠키뉴스DB

윤석열 정부의 ‘만 5세 초등학교 학제개편’ 추진을 놓고 교원들의 반발이 거세다. 현장에서 일하는 교원들의 업무 부담이 급격히 커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앞서 박순애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장관은 지난달 29일 업무보고를 앞두고 초등학교 입학 연령을 1년 당기는 방안을 발표했다. 오는 2025년부터 초등학교 입학 연령을 현재 만 6세에서 만 5세로 낮추는 학제 개편안을 추진하겠다는 계획이다. 4년간 매년 25%씩 나눠 입학할 경우, 학령인구 감소분만큼만 신입생이 늘어 문제가 없을 거라고도 전망했다.

현장에서 아이들을 지도하는 교원들의 불안감은 커졌다. 특정 기간 학생 수가 급격히 늘어날 경우, 교원 한 명이 떠맡는 부담이 가중할 수 있다는 우려 탓이다. 인천에서 초등학교 교사로 재직 중인 신모(39·여)씨는 “초등학교에서는 담임이 대다수 과목을 가르친다. 매시간 문제 풀이·서술형 평가·교과서 채점까지 하면 쉴 틈이 없다”며 “학생 수가 몇 명만 늘어도 부담이 어마어마하게 커진다. 교사 혼자서는 보육이 필요한 만 5세 수십 명을 절대 감당할 수 없다. 일일이 신경써주기 힘들뿐더러 제대로 된 수업조차 불가능할 것”이라고 토로했다.

학제 개편안의 실익이 없다는 비판도 제기했다. 서울 송파구에서 유치원교사로 재직 중인 조모(25·여)씨는 “만 5세는 발달 특성상 15~20분의 활동 시간이 지나면 집중력을 잃는다”며 “과연 교사 한 명이 수십 명의 아이들을 달래며 40분 동안 수업을 진행할 수 있을 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교사가 따로 챙겨줄 수 없는 환경은 만 5세 아이들에게 적합하지 않다. 교원·아이 모두 힘들어 정책 자체가 실효성이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을 비롯한 30여 개 교원·학부모단체들이 1일 오후 서울 용산구 대통령집무실 앞에서 '만 5세 초등학교 취학 학제 개편안' 철회를 촉구하고 있다.   사진=임형택 기자

교원단체 사이에서도 반대 목소리가 들끓었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한국유아교육행정협의회(한유협) 등은 지난 1일 대통령실에 ‘초등 입학연령 하향 반대’ 공동요구서를 전달하고 즉각적인 철회를 촉구했다. 한유협은 성명을 통해 “2025년부터 아무리 25%씩 입학시킨다 해도 학생 수의 급증을 피할 수 없다. 근본적으로 교실 부족 사태가 발생할 것”이라며 “교육의 전반적인 시스템을 개편하는 중차대한 정책을 협의도 없이 졸속으로 처리한 것은 전 국민을 무시한 처사”라고 목소리 높였다.

교원 10명 중 9명이 학제 개편안을 반대한다는 설문조사 결과도 발표했다. 교총이 지난 1일 실시한 긴급 설문조사 결과, 교원 94.7%가 학제개편안에 대해 부정적인 의견을 표했다. 찬성 의견은 5.27%에 불과했다. 반대 이유로는 82.2%가 ‘아동의 정서 등 발달단계와 교육과정 난이도 등을 고려하지 않았다’고 응답했다. ‘학령기가 중첩되는 데 따른 교사·교실 확충 등 여건 개선 요인도 고려되지 않았다’(5.3%)가 뒤를 이었다.

전문가는 학제 개편안이 교육 현장의 목소리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김영심 숭실사이버대학교 아동학과 교수는 “현재 교사자격증 취득과정은 유치원 교원과 초등학교 교원이 따로 나누어져 있다. 유아 전문 교육과정을 숙지하지 못한 채 학생 수까지 늘어나면 교원들의 부담은 막대해질 것”이라며 “양질의 교육도 이루어지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라고 말했다.

유아교육에 대한 공교육 책무를 높이는 것이 선 과제라는 의견도 나왔다. 배상훈 성균관대학교 교육학과 교수는 “유아 교육의 질을 높이고 격차를 해소하는 것이 목표라면, 유아 교육을 공교육화하는 다른 선택지도 있다”며 “전문가 의견과 여론을 충분히 수렴해 발전시킨 유아 교육 방안을 내놓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은희 기자 joy@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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