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은행이 민영화돼도 정부는 전혀 관여하지 않을 것이며 의지가 확고하다” (임종룡 전 금융위원장 2015년 발언)
우리금융그룹 차기 회장 후보군에 임종룡 전 금융위원장이 포함되면서 관치 논란이 불거지고 있다. 특히 그는 정부 소유의 우리은행 지분 매각을 주도했던 인물로, 매각 과정에서 민영화 이후 정부의 불개입을 약속했던 만큼 논란이 쉽게 진정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20일 금융권에 따르면 우리금융 임원후보추천위원회(이하 임추위)는 내외부 출신을 포함해 8명을 차기 회장 1차 후보군(롱리스트)으로 확정했다. 후보군에는 이원덕 행장과 김정기 우리카드 사장, 박경훈 우리금융캐피탈 사장, 박화재 우리금융 사업지원총괄 사장, 신현석 우리아메리카 법인장 등 내부후보 5명과 임종룡 전 금융위원장, 이동연 전 우리FIS사장, 김병호 전 하나금융지주 부회장이 포함됐다.
논란은 하마평에 이름이 거론되던 임 전 위원장이 실제 후보군에 포함되면서 커지고 있다. 임 전 위원장은 재정경제부 출신으로 2015년 3월부터 2017년 7월까지 금융위원장을 역임한 인물이다. 그는 금융위원장에 앞서 농협금융지주 회장을 2년간 맡은 경력이 있어 금융분야에 정통한 전문가로 평가 받는다.
임 위원장의 관치논란은 두 가지 관점에서 제기된다. 먼저 손태승 현 우리금융지주 회장이 연임을 포기한 배경이 정부의 압박에 있다는 점이다. 앞서 금융위는 지난해 11월 정례회의에서 라임펀드 사태와 관련해 손 회장에게 문책 경고 상당의 조치를 의결했다. 금융회사 임원이 문책 경고 이상의 중징계를 받으면 3~5년간 금융회사 임원이 될 수 없다.
손 회장이 연임을 위해 행정소송을 검토하자 금융당국 수장들은 연이어 손 회장의 거취와 관련한 발언을 쏟아냈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손 회장의 거취를 겨냥해 “현명한 판단을 내리길 기대한다”고 발언했고,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금융위의 논의를 거쳐서 어떤 의사결정을 내린 게 정부의 뜻이다”, “책임이 있다고 명확히 판단한다”, “소송 논의는 부적절하다” 등의 발언을 연달에 내놓았다.
결국 손 회장이 연임 포기를 선언하면서 그는 차기 회장 선출을 위한 롱리스트에서 제외됐다. 반면 임 전 위원장이 후보군에 들어가면서 현직 회장의 연임 도전을 정부가 금융사고의 책임을 물어 가로막고, 새로운 회장에 관료출신 인사가 내려오는 구도가 만들어졌다. 정부가 민간 금융사의 회장 선임을 좌지우지하는 상황이 된 것.
또 다른 관점은 임 전 위원장이 우리은행이 민영화되는 과정에서 내놓은 정부 불개입 약속이다. 우리금융이 지주사로 전환하기에 앞서 정부는 우리은행의 지분 21.4%를 소유하고 있었다. 과거 공적자금을 수혈 받은 우리은행은 정부가 최대주주였고, 이를 매각하는 과정에서 정부는 민영화되는 우리은행 경영에 개입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내놓았다. 당시 매각을 주도하고 정부 불개입 약속을 내놓은 인물이 임 전 위원장이다. 하지만 정부 불개입을 약속했던 전 위원장이 차기 회장으로 거론되면서 관치가 부활했다는 논란이 제기됐다.
우리금융 안팎에서는 이러한 관치 논란에 우려의 목소리를 내놓는다. 우리금융 노조는 전날 임 전 위원장을 지목해 “이러한 인사들이 우리금융 수장 자리를 노린다면 스스로 관치라는 것을 입증하는 행태이며 민간금융회사 수장 자리를 마치 정권 교체의 전리품처럼 나누려는 구태의연하고 추악한 시도임을 알아야 할 것”이라면서 “우리는 외부낙하산이 얼마나 조직발전에 위해가 되는지 뼈저리게 경험 한 바가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사회는 시장자유주의에 입각한 지주회장 선출에 집중하고 최근 금감원장이 금융지주 이사회 의장들과의 자리에서 ‘CE0 선임이 합리적인 경영승계 절차에 따라 투명하고 공정하게 이뤄질 수 있도록 해 달라’ 는 말처럼 어떠한 외압에도 흔들리지 않는 ‘현명한 판단’을 해 달라”고 촉구했다.
우리금융 과점주주들 사이에서도 우려의 반응이 나온다. 한 과점주주 관계자는 “우리금융의 과점주주가 체계가 자리 잡고 이제야 시장 중심의 조직문화가 자리 잡는 상황에서 관료출신 회장의 선임으로 조직문화가 과거로 회귀할까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조계원 기자 chokw@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