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실리콘밸리 은행(SVB)의 파산 사태 여파가 전통적인 은행 보다는 벤처투자(VC)와 사모펀드(PE), 사모사채 등 다른 섹터로 확산될 가능성이 있다는 경고가 나왔다.
14일 KB증권에 따르면 SVB의 파산 사태가 은행 시스템 리스크로 번질 가능성은 낮은 것으로 평가된다. 오히려 금리 상승에 따른 자산가치 하락에 취약한 VC, PE, 사모사채 등 비은행권 위험도가 높은 것으로 전망됐다.
SVB는 자산기준 미국 내 16위, 실리콘밸리 내 1위 은행이다. 벤처기업·임직원의 예적금을 받아 다시 유망 벤처기업에 대출해주는 사업구조를 가지고 있다. SVB는 미 연방준비제도의 긴축에 자금난에 빠진 벤처기업들이 대규모 예금인출에 나서자 유동이 부족해 졌다. 이에 보유하고 있던 채권을 매각해 유동성 확보에 나섰으나 고금리의 영향을 받아 채권 가격 하락으로 대규모 손실을 봤다.
그레그 베커 SVB 최고경영자(CEO)는 지난 8일 주주들에게 보낸 서한에서 “기준금리 인상과 높아지는 예금 인출 수요에 대비해 채권 등 약 210억달러(약 28조원)를 팔아 18억달러의 손실을 봤다”고 설명했다. SVB는 이후 22억5000만달러 규모의 증자 계획을 발표했지만 불안 심리가 확산되면서 뱅크런에 결국 문을 닫았다.
박준우 KB증권 연구원은 보고서에서 “SVB은행이 실패한 이유는 대규모 예금 인출 수요에 대응한 충분한 유동성을 확보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며 “SVB는 보통주 자본비율, 기본자본비율이 모두 바젤3 규제 비율을 상회하지만 유동성커버리지비율(LCR), 순안정자금조달비율(NSFR) 등 유동성 규제를 적용받지 않고 있다는 점이 취약 요소였다”고 평가했다.
특히 총 자산 중 만기보유증권 비중이 46.5%에 달하는 SVB의 자산 포트폴리오를 두고 “일반적인 상황에서 만기보유증권은 금리가 상승하더라도 회계상 손실이 발생하지 않고 이자수익이 꾸준히 발생하므로 외부 충격에도 안전한 자산처럼 보인다”면서도 “그러나 유동성이 급해지면 자산을 매각할 수밖에 없고 만기보유증권의 실질 가치가 수면 위에 드러나게 돼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SVB사태로 소형 은행들의 리스크는 커졌다”며 “최근 1~2년 현금성 자산이 대형은행 대비 빠르게 감소했고 일부 은행은 SVB와 같이 채권 자산의 미실현손익이 크거나 만기 보유로 실제 자산의 가치 하락이 드러나지 않은 경우가 있을 수 있다”고 부연했다.
그럼에도 박 연구원은 SVB리스크가 다른 은행에서 뱅크런이 발생할 가능성에 대해서는 매우 낮은 것으로 봤다. 그는 “지난 주 금융시장 변동성이 커졌지만 대형은행, 외국은행에 의해 좌우되는 미국 단기자금 시장은 매우 안정적”이라며 “정책 당국이 다른 은행에서도 뱅크런이 발생할 경우 적극 개입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다만 그는 “금리 상승에 따른 자산 가격 하락과 리파이낸싱 리스크, 자산의 장부가 평가는 은행만의 문제가 아니다”며 “자산을 장부가로 평가하거나 분기나 연간 단위로 재평가를 느리게 진행하는 경우에 재평가로 자산 가치가 하락하면 담보가치가 저하되면서 자금조달 리스크가 커지게 된다. 대표적인 예들이 사모사채, PE, VC 등”이라고 밝혔다.
한편 미 연준은 은행에 유동성을 지원하기 위해 새로운 기금(BTFP: Bank Term Funding Program)을 조성한다고도 밝혔다. BTFP는 특별 유동성 공급 프로그램이다.
이 프로그램은 미국 국채와 주택저당증권(MBS) 등 담보를 내놓는 은행, 저축조합, 신용조합 등 금융기관에 1년간 자금을 대출해 주는 역할을 한다. 특히 담보 가치를 시장가가 아닌 액면가로 평가해줄 예정이다. SVB가 국채의 자산가치 하락으로 대규모 손실을 보고, 이러한 손실이 뱅크런을 촉발했다는 판단했기 때문이다.
조계원 기자 chokw@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