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밀의료 활성화” VS “정보 악용 위험”…기대·우려 섞인 ‘건강정보 고속도로’

“정밀의료 활성화” VS “정보 악용 위험”…기대·우려 섞인 ‘건강정보 고속도로’

올 하반기 600개 의료기관으로 플랫폼 확대
건강정보 활용하는 디지털 보건의료 환경 조성
“문제 발생 시 책임소재·정보활용 범위 등 논의 필요”

기사승인 2023-06-19 06:00:02
쿠키뉴스 자료사진

올 하반기부터 자기공명영상(MRI)과 컴퓨터단층촬영(CT) 등 개인 의료정보를 민간에 전송·공유하는 ‘건강정보 고속도로’ 사업이 본격화된다. 이를 통해 여러 기관에 흩어져 있는 의료정보가 환자 동의만 있으면 원하는 병원 등에 제공될 예정이다.

의료현장에서는 개인의 유전체와 생활습관 등을 분석해 맞춤형 정밀의료가 이뤄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고, 환자들도 일일이 진료기록이나 MRI·CT 결과 등을 복사하는 번거로움이 사라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의료정보의 권한과 책무가 옅어지면서 발생할 수 있는 위험과 피해에 대한 고려가 없다고 본다. 정보가 노출되거나 악용됐을 때 생기는 피해에 대한 구제책이나 보호책이 빠져있다는 지적이다.

보건복지부는 지난 9일 보건의료데이터 정책심의원회를 열고 건강정보 고속도로 사업 세부내용을 공개했다. 건강정보 고속도로 사업은 여러 병원에 분산된 개인 진료·건강정보를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앱)으로 통합해 의료기관이나 돌봄요양기관 등 유관기관 간 공유를 활성화하기 위해 기획됐다. 사업을 통해 본인 동의를 전제로 검사, 약물처방 정보 등 12개 항목의 표준화된 의료정보가 제공될 예정이다.

복지부는 올 하반기 중 600여개의 의료기관을 플랫폼에 연계해 △환자정보 △수술내역 △약물처방내역 △알러지·부작용 사례 △진료기록 등 12개 항목에 대한 의료정보를 제공한다는 방침이다. 더불어 국민건강보험공단(진료이력·건강검진이력), 건강보험심사평가원(투약이력), 질병관리청(예방접종이력)이 보유하고 있는 의료정보도 아울러 공유한다.

박민수 복지부 제2차관은 “디지털 헬스케어의 핵심 가치는 환자와 가족, 나아가 모든 국민의 보건 증진”이라며 “국민이 필요할 때 언제 어디서든 건강정보를 확인·활용할 수 있는 디지털 보건의료 환경을 조성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지난 연말 의료기관과 의료단체, 산업계, 공공기관 등으로 꾸려진 민관합동 보건의료표준화 추진단은 현장 의견을 수렴해 올 하반기 중 ‘보건의료데이터 표준(가칭)’을 고시할 예정이다.

하지만 정부의 기대와 달리 의료계, 산업계, 환자들 사이에서는 우려와 함께 보완 과정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이어진다. 서울아산병원 빅데이터 연구센터와 임상연구 보호센터 교수이기도 한 유소영 대한의사협회 정보통신이사는 16일 쿠키뉴스와의 통화에서 건강정보 고속도로 사업이 갖는 장점과 한계가 명확하다고 짚었다.

장점으로는 정보 주체의 알 권리 향상, 데이터 품질 향상 등을 꼽았다. 유 이사는 “이 사업으로 본인 선택에 의해 정보를 얻을 수 있고 제3자에게 제공할 수도 있기 때문에 정보 주체의 알 권리가 보장될 수 있다”며 “정보를 공유할 때마다 흔적이 남기 때문에 데이터 생산부터 파기까지 이르는 전 과정에서 투명하고 우수한 품질 관리도 이뤄질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보에 대한 권한이 강화된 만큼 사회적 책무도 덩달아 커지기 마련인데, 문제가 발생했을 때 책임은 누가질 것인지 책임소재가 불분명하고, 사전에 위험 발생을 어떻게 차단할 것인지 등에 대한 고려와 논의가 뒷받침되지 않은 점은 한계로 지적했다. 

유 이사는 “정보를 다른 기관에 제공할 때 상대방은 동의를 구하게 될 텐데, 모든 사람이 복잡한 의료정보를 다 이해해서 동의하는 것은 아닐 것”이라며 “권한과 책무는 항상 동등한 관계에 있다. 혹여 제3자의 잘못으로 문제가 발생해 책임소재를 따질 때 본인이 동의했기 때문에 제3자에게 온전한 책임을 물을 수 없을 것”이라고 피력했다.

이어 “정보 주체에게 기관이 데이터가 어디서 어떻게 쓰일 것이라고 명확히 설명하고 고지하는 체계가 작동돼야 한다”며 “만약 문제가 생길 경우 개인정보보호법, 의료법, 생명윤리법 등 갖가지 법들에 대한 해석과 적용이 다를 수 있다. 통합적 거버넌스를 형성해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논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플랫폼 업계에서는 건강정보 고속도로 사업에 대해 현재로서는 큰 기대를 두지 않고 있다는 말이 나온다. 한 플랫폼 업체 관계자는 “병·의원 간 환자 진료정보를 공유하는 현행 진료정보 교류사업과 비교해 큰 차이를 못 느끼겠다”며 “소비자들이 본인의 의료정보를 손에 쥐게 된 이상 이를 직접 활용할 수 있도록 민간 기업에도 길을 열어줘야 한다”고 말했다.

환자단체는 사업 취지와 관련해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부작용 발생을 최소화하기 위해 의료정보 활용 범위 등에서는 속도 조절이 필요하다고 했다. 김성주 암환자권익협의회 대표는 “일원화된 시스템으로 환자 의료정보를 의료기관이 공유하는 데에는 찬성하지만, 이를 연구 목적이나 환자 치료 외에 사용하는 것은 지양해야 한다”면서 “특히 의료정보는 개인에게 민감한 내용을 담고 있기 때문에 외부로 노출됐을 때 큰 피해가 생길 수 있다”고 우려했다. 김 대표는 “본격적인 사업 추진 전 여러 기관과 논의를 더 거쳤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신대현 기자 sdh3698@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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