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차도 아까우니 반반차 쓸게요”…시(時)성비 중시하는 2030

“반차도 아까우니 반반차 쓸게요”…시(時)성비 중시하는 2030

기사승인 2023-10-31 06:00:07
쿠키뉴스 자료사진

# 경기 성남시 판교에서 근무하는 직장인 김모(28)씨는 저녁 약속 장소가 서울일 때 반반차를 쓴다. 오후 7시 판교에서 퇴근해 서울까지 가면, 이미 2차 자리로 이동한 시간이라 저녁을 제대로 먹지 못하는 일이 많기 때문이다. 김씨는 “폭설·폭우 등으로 교통난이 발생했거나 누수공사, 집안일 등 현실적으로 필요한 일이 있을 때 반반차를 쓴다”고 말했다.

최근 하루 단위로 쓰는 ‘연차 휴가’를 2시간 단위의 ‘반반차 휴가’로 쪼개 사용하는 2030 직장인들이 늘어나고 있다.

반반차 휴가는 연차를 반으로 나눈 반차를 또다시 반으로 나눈 2시간 단위 휴가다. 반반차를 다시 반으로 쪼갠 반반반차(1시간 단위 휴가)를 넘어 30분 단위 휴가를 내기도 한다. 주어진 전체 휴가를 쪼개고 쪼개어 효율적으로 쓰려는 직장인들의 목소리가 커지는 분위기다.

김지민(30‧직장인)씨는 최근 반반차 휴가를 내고 특판 예금 가입하러 갔다. 비대면 가입이 불가능한 상품이었기 때문이다. 그 외에도 수영장 등록이나 베이글 맛집 웨이팅 등 사람들이 몰리는 시간을 피해야 할 때 반반차를 쓴다. 김씨는 “평일에 밖에서 해야 하는 일이 있을 때 반반차 휴가를 쓴다”라며 “잠깐 볼일 좀 보러 나갔다 온다고 하기도 애매하고, 그렇다고 반차 휴가를 쓰기엔 아깝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도 반반차 휴가에 대해 다양한 반응이 나오고 있다. 최근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온 ‘오늘 ‘반반차’ 쓸게요…어리둥절 부장님’이란 제목의 글엔 “별거 아닌 것 같지만, (반반차를 쓰면) 퇴근할 때 기분 엄청 좋다”, “점심에 병원이나 은행 업무 길어지면 휴가 1시간 쓰고 복귀한다”, “오늘도 일하기 싫어 반반차 쓰고 집 간다”는 댓글들이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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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무 능률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반반차 휴가를 반기지 않는 회사나 관리자도 많다. 그러나 기업 입장에서 손해 볼 것 없다는 주장도 나온다. 박미영(31‧직장인)씨는 “반반차 휴가를 한번 도입해 보면 절대 능률이 떨어진다는 말 못 한다”라며 “은행, 관공서, 비행기 시간 때문에 조금 일찍 퇴근해도 되냐는 말보단 본인 휴가를 쪼개서 쓰는 게 연차 사용 촉진도 잘 되고 편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반반차 휴가 제도가 아직 많은 회사에 보편화된 건 아니다. 대부분 직장인들은 반반차 휴가를  쓸 수 있는 것도 복지 제도라며 부러워하는 분위기다. 6년차 직장인 신모(30)씨는 “반반차 휴가라고 해도, 그날 내가 할 업무를 빨리 끝내고 가는 것”이라며 “관공서, 은행 업무 등을 위해 연차 휴가나 반차 휴가를 쓰긴 아깝다”고 털어놨다. 이어 “업무 시간을 융통성 있게 쓸 수 있는 유연한 근무 문화가 조성됐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지난 12일 출간된 책 ‘트렌드 코리아 2024’는 내년을 관통하는 키워드로 ‘분초사회’를 꼽았다. 분초사회는 현대인들이 시간의 가성비를 중시하는 현상으로 사용 시간의 밀도를 높이기 위해 노력하는 경향성을 말한다. 시성비가 2024년의 키워드가 된 이유는 소유경제에서 경험경제로 패러다임이 바뀌며 시간이 무엇보다 중요한 자원이 됐기 때문이다.

전문가는 반반차 휴가 유행을 시간을 효율화하고 극대화하는 분초사회의 핵심을 잘 드러내는 현상이라고 분석했다. 이수진 서울대학교 소비트렌드분석센터 연구위원은 “반반차 휴가는 시간을 인지하고 운용하는 단위를 시(時)가 아닌 시보다 더 짧고 축소된 개념으로 일을 처리하는 것”이라며 “핵심 자원이 된 시간의 가성비를 추구하는 경향은 기업문화와 복지 등 다양한 영역에서 변화를 불러올 것”이라고 말했다.

유민지 기자 mj@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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