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사고 특례법’ 호기롭게 꺼냈는데…의사·환자 모두 ‘손사래’

‘의료사고 특례법’ 호기롭게 꺼냈는데…의사·환자 모두 ‘손사래’

기사승인 2024-02-28 17:59:39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이 27일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보건복지부

보험·공제에 가입한 의료인에 한해 의료사고가 발생하더라도 특례를 적용하는 ‘의료사고처리 특례법’을 놓고 의료계와 환자 모두 반발하고 있다. 환자단체는 여전히 의료사고 입증 책임이 환자와 가족들에게 있다며 반발하고, 의료계는 실효성이 없다고 비판한다. 위헌 소지도 다분해 입법까지 난항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지난 27일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 회의를 열고 ‘의료사고처리 특례법’ 제정안을 공개했다. 특례법은 의료계가 지속해서 요구해온 법안이다.

특례법을 보면, ‘책임보험·공제’에 가입한 의료인이 의료 과실로 환자에게 상해를 입혀도 환자가 처벌을 원치 않으면 수사기관이 업무상 과실치상, 중과실치상 혐의로 공소를 제기할 수 없다. 또 의료인이 ‘책임보험·공제’와 ‘종합보험·공제’에 모두 가입하면 환자가 의료 과실로 상해를 입었다고 해도 공소를 제기할 수 없게 된다. 특히 응급환자에 대한 의료 행위나 중증 질환, 분만 같은 필수의료 행위의 경우 환자가 중상해를 입어도 공소 제기가 가로막힌다. 다만 환자가 사망한 경우엔 공소는 가능하지만 형이 감면될 수 있다.

의료인이 이런 특례를 받으려면 한국의료분쟁조정원(중재원)의 조정·중재 절차를 거쳐야 한다. 중재원은 피해자의 피해 규모를 감정해 의료진의 배상액을 제시하고, 정해진 한도 내에서 배상액을 부담한다. 진료기록 CCTV 위·변조, 의료분쟁 조정 거부, 환자 동의 없는 의료 행위 등 면책 제외 사유에 해당할 경우엔 특례 적용이 배제된다. 정부는 필수의료 분야와 전공의의 책임보험·공제 가입 독려를 위해 보험료를 지원할 계획이다.

박민수 보건복지부 제2차관은 중대본 브리핑을 통해 “법무부와 복지부는 필수의료에 종사하는 의료진들의 사법 위험을 낮추기 위해 의료사고처리 특례법 제정안을 함께 고안했다”며 “환자를 진료한 의료진을 법이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최대한 보호하려는 정부의 강력한 의지를 담았다”라고 밝혔다.

정부가 군병원 12곳 응급실을 민간인에게 개방한 20일 오전 경기도 성남시 국군수도병원 응급실에서 의료진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위헌 소지 다분…“유례 찾아보기 힘들어”

정부는 의료사고처리 특례법에 대해 “전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다”며 의료계를 달래고 있지만, 보험 가입에 따라 처벌을 아예 면제하는 것은 위헌 소지가 있다. 의료사고처리 특례법은 교통사고 가해자가 자동차 종합보험에 가입한 경우 사망사고나 뺑소니 같은 중과실 사고를 제외하고 피해자에게 중상해를 입히더라도 형사처벌을 면제받을 수 있었던 ‘교통사고처리 특례법’과 유사하다. 이 법은 지난 2009년 헌법재판소가 피해자의 재판 절차 진술권과 평등권을 침해한다며 위헌 결정을 내린 바 있다.

당시 헌재는 “가해차량이 종합보험에 가입했단 이유만으로 무조건 면책되도록 한 것은 기본권 침해의 최소성에 위반된다”며 “중상해를 입은 피해자의 재판 절차 진술권의 행사가 근본적으로 봉쇄되는 것은 교통사고의 신속한 처리 또는 전과자의 양산 방지라는 공익을 위해 피해자의 사익이 현저히 경시된 것으로 법익의 균형성을 위반한다”고 판시했다.

그러나 현재 법무부는 “의료 행위는 그 자체로 상해를 수반하는 측면이 있다”고 보고 있다. 사망·중상해 등의 발생 가능성이 있는 의료 영역에서 환자가 일정 부분 ‘위험을 감수하고 치료에 임했다’는 전제가 교통사고와는 본질적으로 다르단 해석이다. 한상형 법무부 형사법제과장은 “교통사고와 의료사고는 다른 측면이 있다. 모든 의료 행위로 발생한 중과실을 포함시킬 경우 헌재 결정과 상충될 수 있는 부분이 있다”며 “복지부와 면밀히 협의해 필수의료 영역에 한해 특례를 적용하는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정부는 오는 29일 국회도서관에서 의료사고처리 특례법 공청회를 열고 의료계와 환자단체, 법조계 등의 의견을 수렴할 예정이다. 보험 가입 지원 등을 위한 ‘의료기관 안전공제회’ 설립도 추진한다.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서 환자들이 기다리고 있다. 사진=임형택 기자


의사 “실효성 없어” 환자 “의료인 특혜”

하지만 의과대학 입학 정원 확대 정책에 반발해 집단 사직한 전공의들의 마음을 돌릴 회유책이 될 거라는 정부의 기대와는 달리 의료계와 환자단체 모두에서 반발이 터져 나왔다.

주수호 대한의사협회 비상대책위원회 언론홍보위원장은 28일 브리핑을 통해 “국가가 강제로 건강보험 진료를 하게 만들어 놓고선 이 과정에서 생기는 분쟁 해결은 의사 개인들이 돈을 모아서 보험 형태로 배상하게 한다는 말은 결국 정부가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겠단 뜻”이라고 주장했다. 의협은 필수의료 분야에서 불가항력적 의료사고가 발생해 분쟁으로 번질 경우 의사들 스스로 부담을 떠안는 것이 아니라, 정부가 그 비용을 지원하는 ‘불가항력 의료사고 국가책임’을 요구해왔다. 주 위원장은 “의료사고처리 특례법에서 보호해 주지 않는 예외 조항들의 내용을 보면 고의에 의하지 않은 과실들도 다수 포함돼 있어 아무런 실효성이 없다”고 전했다. 

환자들은 “의료인에 대한 특혜”라고 비판한다. 김성주 한국암환자권익협의회 대표는 쿠키뉴스와의 통화에서 “지금도 의료사고가 발생하면 환자와 가족들은 사고와의 인과관계를 입증하는 것에 어려움을 겪는데, 특례법이 제정되면 어떤 의료사고라도 진실을 규명하기 어렵게 될 것”이라며 “위헌 소지도 많고 의사들한테 편익만 제공하는 꼴이다”라고 지적했다. 해외에서도 유례가 없는 만큼 사고 예방을 위한 의사들의 노력 등 의료윤리가 되레 해이해질 수 있단 우려도 나온다. 김 대표는 “의사들은 더 기고만장해지고 향후엔 환자들이 의료사고에 대해 어떤 소송이라도 청구 자체가 불가능해지지 않을까 우려스럽다”고 짚었다.

정부는 의사와 환자 모두의 반발을 의식한 듯 양측에 도움 되는 제도라고 회유했다. 박민수 차관은 “의료사고에 관한 소송 승소율이 굉장히 낮아 실질적으로 보상받을 길이 없던 환자들은 특례법에 따라 의사가 종합보험에 가입했을 경우 피해에 대해 100% 전액 보상을 받는 구조다”라며 “의료진은 보험에 가입해 법적 보호를 받음으로써 환자와 의사 모두 ‘윈윈’하게 될 것으로 확신한다”고 피력했다.

신대현 기자 sdh3698@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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