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사들이 21대 국회에서 간호법이 제정되지 않으면 의료공백 사태로 인해 정부가 진행 중인 간호사 업무 관련 시범사업을 보이콧하겠다고 밝혔다.
대한간호협회(간협)는 23일 국회 앞 의사당대로에서 전국 간호사 2만여명(주최 측 추산)이 모인 가운데 ‘전국 간호사 간호법안 제정 촉구 결의대회’를 개최했다.
간협은 이날 결의대회에서 ‘국회와 정부의 간호법 제정 약속 미이행 시 강력 투쟁’ 선언문을 채택했다. 이들은 선언문에서 “오는 24일과 27일에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복지위) 전체회의가 열리지 않고 간호법 통과가 무산될 경우, 정부 시범사업을 전면 보이콧하고 모든 협조를 중단하는 한편 법적 보호 장치가 없는 모든 의료 관련 조치를 즉시 멈출 것”이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추경호 국민의힘 원내대표와 박찬대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즉시 만나서 일정을 협의하라”고 촉구했다.
간협이 보이콧을 예고한 ‘간호사 업무 관련 시범사업’은 의과대학 입학 정원 증원 등에 따른 전공의 사직으로 보건복지부가 지난 2월부터 실시 중인 사업이다. 진료지원(PA) 간호사들이 검사와 치료·처치, 수술, 마취, 중환자 관리 등 의사 업무를 일부 대신할 수 있도록 기준을 새로 제시했다.
간호법은 간호사의 업무 범위를 명확히 해 간호사의 처우 등을 개선하는 내용이 골자다. 지난해 4월 야당 주도로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지만, 그 해 5월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했고 본회의에서 재표결을 진행했으나 통과 요건을 넘지 못하며 폐기됐다.
이후 복지부는 전공의 집단 이탈에 따른 의료공백 사태를 겪으면서 이들의 업무를 대신하는 PA 간호사를 법제화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고, 이를 위해 지난 1일 국회 복지위 여야 간사단에 간호법 수정안을 제출했다. 그러나 정부의 간호법안은 ‘채상병 특검법’ 등을 둘러싼 여야 갈등으로 국회 상임위 개최가 미뤄지면서 제정에 난항을 겪고 있다. 21대 국회 임기는 오는 29일까지로 일주일도 남지 않았다.
탁영란 간협 회장은 성명서를 통해 간호사들이 처해 있는 어려운 상황에 대해 호소했다. 탁 회장은 “약속한 시간은 이제 일주일밖에 남지 않았고, 간호사들은 오늘도 위기의 의료 현장을 지키고 있다”면서 “22대 국회가 열리고 의대 증원이 부른 의료 상황이 해소되면 간호사들은 다시 범법자로 내몰리게 된다”고 말했다.
이어 “법적 보호를 받지 못한 채 과중한 업무와 불법에 간호사들이 내몰리는 열악한 상황을 이대로 보고만 있을 것인가”라며 “진정한 의료개혁으로 대한민국의 모든 국민에게 촘촘하고 세밀하게 의료와 사회 안전망을 제공하기 위해선 즉각 간호법안이 제정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부덕 대구광역시간호사회 회장도 “지금 현장의 간호사들은 매우 지쳐 있다. 이렇게 소진돼 가면서도 현장을 떠날 수 없는 간호사를 외면할 것이냐”라며 “간호사들은 필요할 때만 쓰고 버려지는 소모품이 아니다. 간호사들의 절실한 요구에 귀를 기울여달라”고 호소했다.
손혜숙 간협 부회장은 “의료기관장으로부터 불명확한 업무를 무분별하게 지시받고 수행하도록 강요받고 있다”고 지적했다. 의료법이 간호사 업무 중 ‘진료의 보조’와 관련해선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어떤 업무를 어떤 기준으로 해야 하는지 정하지 않았다는 설명이다.
이날 모인 간호사들은 국민의힘 당사와 민주당 당사까지 행진에 나섰다. 신은숙 전북특별자치도간호사회 회장은 민주당 당사 앞에서 휴지를 한 장씩 뽑아서 버리는 퍼포먼스를 진행한 뒤 “국회가 소모적인 정치 싸움에 매몰돼 국민의 건강을 돌보는 일을 외면한 것은 아닐 것이라 믿고 싶다”면서 “이제 우리 간호사들의 믿음에, 국민의 명령에, 국회가 답할 차례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편 간협은 오는 24일과 27일 용산 대통령실 앞과 국회 앞에서 간호법안 제정을 촉구할 예정이다.
신대현 기자 sdh3698@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