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공백에 100일간 1조원 투입…“재정 건전성 우려”

의료공백에 100일간 1조원 투입…“재정 건전성 우려”

기사승인 2024-06-03 06:05:01
3월6일 서울의 한 상급종합병원에서 의료진이 이동하고 있다. 쿠키뉴스 자료사진

전공의 집단 이탈로 빚어진 의료현장 혼란이 100일째 이어지는 가운데 의료공백을 메우기 위해 1조원이 넘는 재정이 투입됐다. 코로나19 확산 같은 공중보건 위기 상황이 아닌데도 매달 1880억원에 달하는 건강보험 재정이 쓰이는 데 대한 우려가 나온다.

3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정부는 전공의 집단 사직에 따른 의료공백을 메우기 위해 건보 재정 1883억원을 추가 투입하기로 했다. 비상진료체계를 유지하기 위해 지난 3월 이후 4개월간 정부가 투입한 재정은 이번 추가분을 포함해 총 1조63억원이다. 건보 지원(8003억원)이 네 차례, 예비비(2060억원) 투입은 두 차례 이뤄졌다. 당초 재정 지원은 6월10일까지였으나, 이번 추가 연장으로 7월10일까지 이어진다.

비상진료체계 유지에 들어가는 건보 재정은 △상급종합병원이 경증 환자를 1·2차 병원으로 돌려보내는 회송료 보상 △응급 환자를 적시에 치료한 신속대응팀 보상 △중증·입원 환자를 진료한 전문의 지원 등에 쓰인다. 예비비는 전공의 공백을 메우는 군의관, 공보의, 시니어 의사 등 대체 인력의 인건비와 병원에 남아 환자를 진료하는 의료진의 인센티브 등으로 활용된다. 복지부 측은 “비상진료 수가 신속 지원과 현장 점검을 통해 응급·중증환자 진료 공백이 발생하지 않도록 힘쓰고 있다”며 “비상 상황이 조속히 해결돼 국민들이 의료기관 이용에 어려움이 없도록 노력하겠다”고 전했다.

하지만 전공의들이 100일 넘게 환자 곁을 떠난 사이 하루 100억원 꼴로 국민 혈세가 허비되고 있는 데 대한 우려는 커진다. 현재 건보 재정은 2023년 말 기준 누적 준비금이 약 28조원으로 여유가 있다지만, 향후 5년간의 재정 전망이 밝지만은 않다. 지난 2월 복지부가 발표한 ‘제2차 국민건강보험 종합계획(2024~2028년)’을 보면, 건보 재정은 2024년 2조6402억원, 2025년 4633억원의 당기수지(총지출에서 보험료 등 총수입을 뺀 수치) 흑자를 낸 뒤 2026년부터 적자(3027억원)로 돌아선다.

정기석 국민건강보험공단 이사장은 지난 5월3일 의약단체장들과 가진 ‘2025년도 요양급여비용 계약 간담회’에서 “빠르게 진행되는 저출산·고령화로 생산 가능 인구는 감소하고, 저성장 기조에 따라 보험료 수입 기반이 약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선진국 평균보다 많은 영상 장비, 과도한 검사, 의료 이용 증가, 필수의료 정책 건보 재정 투입 등 급여비 지출은 앞으로 그 규모와 속도가 폭발적일 것으로 예상한다”고 덧붙였다.

5월1일 서울의 한 상급종합병원에서 환자와 보호자가 산책로를 걷고 있다. 사진=곽경근 대기자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재정 건전성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서울 상급종합병원 병원장을 지낸 A교수는 쿠키뉴스와의 통화에서 “전공의 대체 인력 투입을 위해 쓰이는 돈이라면 정부가 지원해야 하는 게 맞지만, 과연 그걸 건보 재정에서 끌어다 쓰는 게 맞는지는 의문”이라며 “의료공백 사태 해결 이후에도 이 사안은 논란의 여지가 있을 수 있다”고 짚었다. 

그러면서 “현 의료공백 사태와 코로나19 팬데믹은 전혀 다른 상황이다. 팬데믹 재난 극복을 위해 건보 재정을 끌어다 쓴 것과 의료개혁 정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혼란을 해결하겠다고 재정을 쓰는 것이 어떻게 맥락이 같을 수 있겠나”라며 “정부의 급한 사정은 알겠으나 건보 재정이 이런 식으로 사용되는 것은 이해하기 힘들다”고 지적했다.

정형선 연세대 보건행정학과 교수는 “의료개혁 차원에서 어느 정도 재정 지출은 필요하다”면서도 “의료공백을 막기 위해 건보 재정을 지속적으로 지출하는 것에 대한 깊이 있는 검토할 필요가 있고, 전공의들이 완전히 돌아오지 않는 것을 상정해 재정 지출 구조를 조정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건보 재정 투입과 더불어 의료수가 인상도 신중히 검토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유재길 국민건강보험노동조합(건보노조) 정책연구원장은 “정부는 의료공백 사태 해결을 위해 건보 재정을 지출하고 필수의료 강화를 위해 수가도 계속 올리려고 하는데, 이로 인해 재정 건전성이 흔들릴 수 있다”고 주장했다. 

건보노조에 따르면 지난 2000년 의약분업 이후 대대적 수가 인상을 통해 2001년 급여비가 41.5% 급증하고, 같은 해 건보 재정은 약 2조원대의 적자를 기록했다. 유 연구원장은 “의약분업 대타협 이후 건보 재정이 파탄났고, 그 결과 공단 직원들이 구조조정 당하는 일이 있었다”며 “재정 문제는 민감하게 다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재정 관리당국은 건보 재정 여건이 허락하는 한 의료공백으로 인한 국민 불편을 줄이고, 의료기관들의 경영난 해소를 위해 지원을 이어나갈 방침이다. 건보공단 관계자는 “의료 서비스 과잉 공급 방지책, 과다 의료 이용자 본인부담 차등제 등을 통해 국민들의 합리적인 의료 이용을 유도할 것”이라며 “기존 급여 재평가 등 지출 효율화 노력을 병행해 2028년까지 안정적 범위에서 재정을 관리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한다”고 했다. 이어 “의사 집단행동이 100일을 경과한 상황에서 국민들의 피해와 불편이 가중될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며 “공단은 의료체계가 정상화될 때까지 복지부와 긴밀히 협조하겠다”고 밝혔다.

신대현 기자 sdh3698@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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