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배 유해성분 모조리 공개…금연 늘까

담배 유해성분 모조리 공개…금연 늘까

담배회사, 2년마다 유해성분 함유량 검사 결과 제출
“늦었지만 긍정적 조치” 평가…금연 기대엔 물음표
건보공단 “금연치료사업·담배소송 뒷받침하는 근거”

기사승인 2023-10-11 06:00:35
한 시민이 편의점에서 담배를 구입하고 있다. 사진=박효상 기자


그간 담배회사가 대중에게 감췄던 담배의 주요 유해성분이 2025년 10월부터 모두 공개된다. 유해성분을 밝힌다고 해서 당장 금연 사례가 늘어나진 않을 것이라는 회의적인 시각이 있는 반면, 효과적인 금연정책을 수립할 수 있는 근거가 마련될 것이라는 기대도 나온다.

10일 보건복지부와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따르면 담배의 모든 유해성분을 공개토록 하는 ‘담배의 유해성 관리에 관한 법률’ 제정안이 지난 6일 국회를 통과했다. 해당 법안은 2005년 세계보건기구 담배규제협약(WHO FCTC)을 비준한 지 18년, 관련 법안이 처음 발의된 지 10년 만에 이룬 성과다. 새 법은 공포 2년 뒤 본격적으로 시행된다.

새 법에 따라 담배 제조·수입 판매업자는 2년마다 제품 품목별로 유해성분 함유량 검사를 받고 그 결과를 정부에 제출해야 한다. 담배 회사가 제출한 유해성분 종류는 온라인 등에 공개된다. 유해성분 공개 항목은 담배유해성관리위원회가 결정한다. 연초담배 외에 액상형·궐련형 등 전자담배도 유해성분 공개 대상에 포함됐다.

담배 연기 속에는 7000여개의 화학물질과 70여개 발암물질이 포함돼있지만 한국은 타르와 니코틴의 함유량만 공유한다. 나프틸아민, 니켈, 벤젠 등 암을 유발하는 물질은 함유량 없이 명칭만 담뱃갑 포장지에 표기해왔다. 이 때문에 담배 규제는 모든 성분을 표시하는 화장품보다도 느슨한 규제라는 지적을 받아왔다. 

흡연으로 인한 건강보험 재정 지출도 만만치 않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폐암 등 흡연이 원인으로 추정되는 질병들의 최근 5년간 건강보험 진료비는 16조4000억여원에 달한다.

금연 전문가는 한국이 WHO FCTC를 비준해 담배 유해성분을 분석하고 공개할 의무가 있었던 만큼 규제는 늦었지만 긍정적인 조치라고 평가하면서도 법 실효성에는 물음표를 던졌다. 흡연자든 비흡연자든 내가 피우려는 담배에 무슨 성분이 있는지 유심히 들여다볼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지 의문이라는 지적이다.

오범조 서울시보라매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쿠키뉴스와의 통화에서 “담배회사에서 만드는 정품 담배 말고 타르가 안 들어 있어 몸에 좋은 담배라는 식으로 광고하며 근본 없이 파는 액상형 전자담배 등을 시장에서 퇴출시키는 효과는 기대할만하다”면서도 “담뱃갑에 혐오스러운 경고 그림을 넣었을 때도 유의미한 흡연율 변화는 없었다. 담배 가격을 인상하는 등 진입장벽을 대폭 높이지 않는 이상 유해성분이 전부 공개된다고 해서 담배 피우는 사람이 줄어들진 않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시민들도 비슷한 생각이다. 흡연 4년 차인 박가람(26)씨는 “유해성분이 모두 노출되면 한동안 담배를 피우면서 신경이 쓰이겠지만 곧 익숙해질 것이고 변함없이 흡연을 이어갈 것이다”라고 말했다. 흡연 8년 차인 정진우(28)씨 역시 “담배를 못 끊는 이유는 중독성 때문이다. 어린 애도 담배는 몸에 해롭다는 걸 다 안다”며 “담뱃갑에 표시되는 유해성분이 늘어난다고 해서 금연할 것 같진 않다”고 전했다.

오 교수는 담배 유해성분 공개와 함께 금연정책을 다듬고 홍보를 강화하는 것이 흡연으로 인한 사회경제적 비용을 줄이고 효과적으로 흡연율을 낮추는 길이라고 지적한다.

그는 “국가에서 많은 예산을 들여가며 금연을 돕고 있지만 티가 안 나서 사람들이 지나치는 지원이 많다. 정부는 현재 시행 중인 금연 정책들을 더 알릴 필요가 있다”며 “2019년부터 국가 건강검진을 통해 만 54~74세가 매일 한 갑씩 30년간 흡연한 경우 2년마다 한 번씩 흉부 CT(컴퓨터 단층촬영) 검사를 받을 수 있고, 금연 클리닉에서는 흡연자에게 무료로 금연 상담과 치료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담배 유해성분 정보가 향후 건강증진 정책 개발에 활용돼 효과적인 금연 정책을 마련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김현숙 대한금연학회장은 “담배 유해성분 종류와 양의 공개는 국민의 알 권리를 보장하고 효과적인 금연정책을 수립할 수 있는 근거가 될 것”이라며 “향후 효과적인 담배 규제 정책을 위해 정부는 담배 유해성 관리체계를 치밀하게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부는 법 통과를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건보공단은 이 법이 다양한 금연치료 지원사업과 더불어 현재 담배 회사들(KT&G·필립모리스코리아·BAT코리아)을 상대로 진행 중인 소송에 주요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기대했다. 건보공단은 2014년 4월 흡연자 중 폐암(소세포암·편평상피세포암)과 후두암(편평세포암)을 진단받은 환자 3465명에게 10년간 지급한 공단부담금 533억원에 대한 배상을 담배 회사들에게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가 2020년 11월 1심에서 패소했다.

건보공단 건강관리실 관계자는 “담배의 유해성분 종류와 양을 국민에게 정확히 알릴 수 있는 길이 열렸다는 점에서 매우 긍정적으로 평가한다”며 “담배로 인한 건강 폐해에 대한 시민들의 체감도가 높아지고 금연 동기를 유발해 병·의원 금연치료 참여와 함께 금연 성공에 도움이 될 것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건보공단 법무지원실 관계자도 “국민 모두에게 담배의 유해성이 알려져 스스로 흡연에 대해 정확하게 판단하고 선택할 수 있는 자유를 주는 중요한 법이라고 생각한다”며 “다만 성분 측정의 대상이 되고 공개되는 유해 물질의 범위에 대해선 해당 법 시행 전 각 분야 전문가들의 의견을 수렴해 명확한 기준을 정립해야 한다고 본다”고 짚었다.

신대현 기자 sdh3698@kukinews.com

신대현 기자
sdh3698@kukinews.com
신대현 기자
이 기사 어떻게 생각하세요
  • 추천해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추천기사
많이 본 기사
오피니언
실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