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가해인지 몰랐다”…성인지 감수성 부족한 사회

“2차 가해인지 몰랐다”…성인지 감수성 부족한 사회

기사승인 2024-01-08 07:43:38
그래픽=이승렬 디자이너

‘2차 가해’라고 인지하지 못한 채 성범죄 피해자의 신상을 추측하고 비난하는 일이 최근 다수 일어나고 있다. 전문가는 이를 성인지 감수성 결여로 생기는 현상이라고 지적하며, 제도권 안팎으로 교육을 확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8일 불법촬영물을 유포하고 협박한 혐의를 받는 황의조 형수의 첫 재판이 열린다. 경찰은 불법촬영 혐의를 받는 황의조에게도 지난 5일까지 경찰 출석을 요구했고, 2차가해 논란에 대해 범죄 혐의점을 확인하고 있다고 밝혔다.

2차 가해란 사건 이후 사법기관, 지인, 언론, 여론 등의 소문과 피해자에 대한 부정적 반응에 의해 피해자가 정신적・사회적으로 피해를 받는 것을 의미한다. 지난 2016년 ‘국가인권위원회가 주관한 성희롱 2차피해 실태 및 구제강화를 위한 연구결과 발표토론회’에서는 2차 가해에 대해 피해자를 비난하고 의심하는 사회・문화적 분위기에서 피해자들이 겪는 문제를 포괄한다고 정의했다.

실제 황의조 측의 피해자 신상 노출 이후 온라인 커뮤니티 등을 통해 피해자에 대한 추측과 비난이 이어지고 있다. 피해자가 누구냐는 글부터 특정인을 언급하는 등 2차 가해가 확산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11월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그래서 황의조 불법촬영 여자는 누구냐”, “저 정보만으론 누군지 모르니까 억측하게 된다”, “그래도 실력은 좋은데 안타깝다” 등의 글과 댓글이 수차례 올라왔다.

그래픽=이승렬 디자이너

사적인 대화에서도 2차 가해는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 5년차 직장인 이은영(30·가명)씨는 최근 대학교 동창 모임에서 불쾌한 경험을 했다. 황의조의 불법촬영 혐의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지인들이 이름을 언급하며 피해자를 특정했기 때문이다. 이씨는 “피해자에 대한 신상 정보는 이 사건의 실체를 밝히는 데 불필요하다”며 “피해자를 궁금해 하는 건 옳지 않다. 아무리 사적인 대화라도 이 같은 행동은 지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털어놨다.

성범죄 피해자의 신원을 특정하는 것은 명백한 범죄다.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제24조 제2항에 따르면 누구든지 피해자를 특정하여 파악할 수 있는 인적사항이나 사진 등을 피해자의 동의 없이 인쇄물, 방송, 정보통신망에 공개해선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피해자를 특정할 수 있는 정보는 이름과 직업뿐 아니라 주소, 나이, 용모, 사생활에 관한 비밀 등이 포함된다.

성범죄는 인격을 살인하는 심각한 범죄인만큼 피해자 신상정보는 보안사항이다. 정보의 이동 속도가 빠른 온라인에 피해자 신상정보가 유통될 경우, 영구적인 삭제가 불가능하다. 신상정보 유출로 발생하는 피해는 일회성으로 끝나지 않는다. 성범죄 피해자 신상 노출은 피해자의 일상 회복을 가로막는 등 개인의 삶 전체에 심각한 피해를 줄 가능성이 높다.

전문가는 성인지 감수성 교육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허민숙 국회 입법조사처 조사관은 “제도권 교육을 통해 유년기부터 성인지 감수성 형성에 개입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면서 “이미 성인이 된 사람들을 붙잡고 성인지 감수성을 가르치고 인식을 주입하는 건 한계가 있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허 조사관은 “기대수명이 높아졌기에 기성세대의 성인지 감수성을 포기하고 갈 수 없다”며 “성인지 감수성 교육의 저변을 확대해야 한다. 지금처럼 직장인 의무 교육을 온라인으로 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시행하는 곳에 예산 지원을 해주는 등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유민지 기자 mj@kukinews.com
유민지 기자
mj@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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