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人터뷰] 정재영 “카이스트 출신 물리학자? 저랑 안 어울린다 생각했죠”

[쿠키人터뷰] 정재영 “카이스트 출신 물리학자? 저랑 안 어울린다 생각했죠”

기사승인 2013-11-28 15:41:00

[인터뷰] 카이스트 출신 엘리트 물리학자. 배우 정재영(43)이 영화 ‘열한시’(감독 김현석)에서 맡은 역할이지만, 그와 함께 생각하기에는 언뜻 무리한 배역이다. 1990년 드라마 단역으로 데뷔한 이래 제비, 인민군, 노숙자, 형사 등 많은 배역을 거쳐 왔지만 카이스트라니. 지난 26일 서울 신문로에서 만난 정재영은 배역에 대한 질문을 하자 “이런 초 고학력 배역이 나에게 오다니, 말이나 되냐”고 웃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이내 진지하게 영화를 논하는 정재영 속에는 영화 ‘열한시’의 물리학자 ‘우석’이 분명 있었다.

“처음에는 사실 영어가 자신 없어서 배역을 사양할까 했어요. 그런데 대본 보니 영어는 별로 없더라고요. 그래봐야 ‘코어 에너지’ 정도가 가장 전문적인 용어라서. 그리 어려운 사람이 아닌 것 같아 우석 캐릭터를 선택했어요.” 우석은 러닝타임 내내 시간과 물리학보다는 자신과 싸운다. 자신의 내면과 갈등하며 비운을 맞는 우석은 그간 정재영이 만들어 온 캐릭터들과 맞물려 또 다른 매력을 발산한다.

말쑥하고 엘리트 같기만 한 ‘물리학자’라는 캐릭터는 정재영을 만나 전혀 다른 이미지로 탈바꿈했다. 까칠하고, 며칠째 잠을 자지 못해 눈이 새빨갛게 충혈 돼 있다. 씻지 못한 것은 물론이고 같은 옷을 이틀씩 입는 것도 일상다반사. 어렵게만 생각했던 카이스트 물리학자들을 실제로 작품을 위해 만나보니 굉장히 친근한 사람들이라 더 자신이 붙었다는 정재영은 “사실 전문 용어를 엄청나게 하는 대사 같은 것이 있었으면 아무리 친근해도 못 했을 것”이라며 웃었다.

그렇다고 캐릭터만 보고 영화를 선택한 것은 아니다. 매력적인 시나리오가 아니었다면 정재영의 우석은 볼 수 없었을 것이다. 스스로 ‘SF 장르 마니아’를 자처하는 정재영은 영화 ‘엘리시움’부터 시작해 배우 장동건이 열연했던 ‘2001 메모리즈’까지 ‘시간 여행’을 다룬 영화들을 챙겨봤다고 이야기한다. 덕분에 웬만한 SF영화들은 설정을 차근차근 따져가며 분석해 볼 정도로 이골이 났다. “일단 흔하지 않은 장르라 보기 힘들다 보니 자꾸 챙겨보고, 흥미가 높던 차에 ‘열한시’ 시나리오를 접했죠. 매력적이었어요.” 다른 시간 영화들과 달리 단 하루만 주어졌다는 점이 가장 흥미로웠다.

하루의 시간을 오가며 인과관계를 맞추는 타임스릴러 장르다 보니 ‘열한시’를 찍으면서도 계속 상황과 캐릭터의 감정을 분석하느라 쉴 틈이 없었다는 정재영. “우석이 전날 이렇게 해서 다음 날 저렇게 되고, 그런데 알고 보면 이게 하루 후에는 다른 문제 때문에 엇갈리고…. 하하. 무슨 말인지 모르겠죠? 찍는 당시에는 저를 비롯한 다른 배우들도 그랬어요. 한 장면을 찍을 때마다 한참동안 머리를 굴리고, 이 장면에 있는 캐릭터들이 왜 이렇게 행동하는지 분석하고 나서야 겨우 촬영에 들어갈 수 있었죠.” ‘백 투 더 퓨처’처럼 몇 십 년을 오가는 것이 아니라 단 24시간에 의해 모든 것이 좌우되다 보니 오히려 더 어려웠다고.

정재영은 “우석을 단순히 악역이라는 시선으로 보지 말아 달라”고 부탁했다. “사람이라서 오히려 더 지키고 싶은 것이 있기 마련입니다. 자신에게 마지막으로 남은 게 아무 것도 없는 사람이 얼마 남지 않은 시간 속에서 어떤 선택을 하는지 봐주세요.”

국민일보 쿠키뉴스 이은지 기자 rickonbge@kmib.co.kr 사진=박효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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