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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흔히 무용, 연극, 클래식 음악 공연 등을 일컬어 ‘시장실패상품’이라고 칭하곤 한다. ‘팔리지 않는 상품’이 아니라, 제한된 장소에서 제한된 횟수의 공연만이 가능하기 때문에 시장에서 경쟁하기 어렵고, 상대적으로 널리 팔리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 중에서도 특히 현대무용 공연은 어렵다는 대중의 선입견까지 더해 사람들에게 선택받지 못하는 일이 다반사.
그러나 지난 10일부터 12일까지 대학로에서 열린 ‘디포유’(Dance 4 You) 공연은 달랐다. 케이블 채널 Mnet ‘댄싱9’의 출연자 네 사람이 합심해 만들어낸 이 공연은 발레부터 현대무용, 비보이(B-Boy) 댄스까지 망라하는 종합무용 공연이었고, 10분 만에 5회 전석 매진이라는 대기록을 세웠다. 400석 규모의 공연장에서 5회. 총 2000여 명의 관객은 이들에게 기립박수를 보냈다. 그 중에서도 가장 뜨거운 박수를 받은 현대무용가 한선천을 24일 서울 여의도에서 만났다.
국내외 유수의 콩쿠르에서 상을 거머쥐고도 ‘댄싱9’부터 가수 왁스의 ‘사랑한 적도 없는’ 지상파 음악방송 무대까지 아우르는 한선천(25). 대중성과 예술의 경계를 넘나드는 그는 잘 생긴 얼굴로도 인기가 드높다. 높은 인기에 대해 질문하니 쑥스러운 표정을 지은 한선천은 “여태껏 현대무용 공연을 하면서 겪어보지 못한 경험이라 창피하지만 사랑받는 기분이 너무 좋다”고 말했다.
“이전에는 무용 작품을 하면 어렵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았어요. 대체 무슨 내용이냐, 잘 모르겠다고. 나름대로 최대한 소통하고 쉽게 볼 수 있는 작품을 만들려고 노력했죠.” 무용 중에서도 가장 진입장벽이 높은 현대무용을 하는 사람들의 공통된 고민이었다. 한선천은 “‘댄싱9’으로 그 방법을 알게 된 것 같다”고 흡족해했다. 왁스의 ‘사랑한 적도 없는’ 무대가 그 좋은 예다. ‘사랑한 적도 없는’ 무대에서 왁스의 목소리를 배경으로 한선천이 춤추는 작품은 이전에 공연했던 ‘흔적’이라는 작품이다.
그러나 두 무대의 안무는 많이 다르다. 한선천은 방송 카메라 앞에서는 좀 더 노골적인 동작으로, 보는 사람이 이해하기 쉽도록 편안하게 연기했다. 결과는 어땠을까. “압도적인 양의 피드백에 놀랄 지경이었어요. 조금 더 작품을 쉽게 풀어나가자 제 작품을 알아보고 다가와주는 분들이 늘어났죠.”
한선천에게 ‘디포유’의 성공은 의미가 크다. “무용을 시작한 이후로 꽉 찬 관객석의 모두가 기립박수를 쳐주는 경험은 처음이었어요. 많이 울었죠. 그 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벅차요.” 한선천 뿐만 아니다. 공연계에서도 ‘디포유’의 성공은 놀라운 일이다. 보통은 티켓의 반도 판매하기 어려운 무용 공연이 전석 매진됐을 뿐만 아니라, 끊임없는 앙코르 요청이 들어오고 있다. 어렵기만 하던 무용이 힘을 빼고 관객에게 한 발 다가서자 관객이 전력으로 호응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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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한선천은 ‘댄싱9’ ‘디포유’를 통해 많이 바뀌었을까. 한선천 개인은 그다지 바뀐 것이 없다고 말한다. “저 자신은 바뀐 것이 없어요. 일상이 똑같죠. 작품 고민하고, 연습하고, 일하고. 가끔은 집에서 멍하니 누워서 TV 보며 쉬고 싶어 하는 것 까지요.” 바뀐 것은 다른 사람들의 시선이다. 이전에는 “네가 뭘 하는 사람인지 잘 모르겠다”던 사람들은 한선천을 인정하고, 그의 작품을 관심 깊게 봐주기 시작했다. “더 많은 분들이 현대무용을 쉽게 접할 수 있었으면 싶어요. 저는 방송도 많이 하지만 브라운관을 통해 작품을 선뵐 기회는 많이 없죠. 지상파 음악방송 관계자 분들은 심지어 저를 신인 연기자라고 생각하셨을 정도예요. 현대무용가라고 얘기하면 음악방송 무대에서 어떤 작품을 할 수 있다는 건지 의아하게 생각하시죠. 보여드리고 나면 ‘아, 이런 거구나’라고 좋게 봐 주시지만 그건 작품을 보여드릴 수 있었을 때예요.”
한선천의 ‘터닝 포인트’가 된 ‘댄싱9’은 곧 새 시즌을 시작한다. 그는 “기분이 좀 이상할 것 같다”고 말했다. “제가 ‘블루 아이’ 팀이었거든요. 우리 팀의 슬로건을 다른 분들이 외치는 걸 보면 막 참견하고 싶어질 것 같아요. 시즌 2 참가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요? 공명심보다는 열정으로 도전하라고 하고 싶어요. 프로그램에 따르는 부가적인 명예나 상금보다는 춤을 향한 순수한 열정을 불태운다면 다른 것들은 따라오게 돼 있거든요.”
‘댄싱9’시즌 2가 시즌 1보다 나아졌으면 하는 것에는 어떤 것이 있느냐는 질문에는 “없어요, 무조건 다들 저보다 고생했으면 좋겠어요”라고 웃으며 농담을 던지는 여유도 보였다. 그러나 곧 진지하게 “매 회마다 참가자들에게 준비할 시간들을 충분히 주었으면 한다”고 의견을 내놨다. “몸을 쓰는 일이기 때문에 체력에 대한 배려가 필요해요. 사실 일주일에 한 번 공연 레퍼토리를 바꾼다는 것은 정말 어렵거든요. 참가자들이 시간에 대한 여유를 가지며 더 좋은 공연을 보여준다면, 프로그램에도 좋은 결과를 가져다 줄 것이라고 믿어요.”
올해도 한선천은 몹시 바쁠 예정이다. “3월에 ‘디포유’ 앙코르 공연이 있어요. 5월에는 국제현대무용페스티벌에 나갈 솔로와 듀엣 작품을 준비 중입니다. 아직 희망일 뿐이지만 ‘디포유’의 지방 순회공연도 기회가 있다면 꼭 하고 싶어요.”
국민일보 쿠키뉴스 이은지 기자 rickonbg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