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한 쿡대표] 염치 없는 노인, 염치 있는 노인

[친절한 쿡대표] 염치 없는 노인, 염치 있는 노인

기사승인 2014-10-27 15:08:56

맞는 말이지만 해서는 안 되는 말이 있습니다. 내뱉었다가는 본전도 못 찾죠. 바로 노인, 즉 나이와 관련된 발언이 그 중 하나입니다. 마치 블랙홀 같아서 그 말을 입 밖으로 내는 순간 다른 팩트들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그 발언만 남습니다.


27일로 끝난 올해 국정감사에서 새정치민주연합 설훈 의원이 그 꼴을 당했습니다. 지난 17일 한국관광공사 국감에서 증인으로 출석한 자니윤 관광공사 감사에 대해 “누가 보더라도 79세면 쉬셔야지 왜 일을 하시려 하느냐”고 말한 것이 문제가 됐죠. 이후 새누리당측이 “노인폄하 발언을 사과하라”고 연일 맹공을 가했고, 설 의원은 “우리 사회의 정년제도를 이야기한 것을 뿐”이라고 반박하면서 커다란 논란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어찌 보면 설 의원의 말에 틀린 것이 없습니다. 지난 대선 때 박근혜 후보 선거운동을 했다고 해서 낙하산으로 관광공사 감사 자리에 앉은 것은 누가 보더라도 문제가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야당으로서는 당연히 따지고 지적해야 할 사안입니다. 그런데 설 의원이 거기에다 노인 문제까지 끌어다 붙이는 바람에 전세가 역전되고 말았습니다. 공수가 뒤바뀐 것이죠.

쿠키뉴스는 10년 전 아주 큰 특종(?)을 했습니다. 이른바 정동영 노인폄하 발언 논란입니다. 2004년 4.15 총선 때 열린우리당 정동영 상임고문은 대구지역 선거지원 운동을 하던 중 쿠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노인들은 투표를 안 해도 된다”고 말했고, 이것이 전해지면서 엄청난 회오리에 휘말렸습니다. 한나라당의 집중 공격은 물론 대한노인회 등 노인들이 일제히 들고일어나 정 고문과 열린우리당을 성토했습니다.

쿠키뉴스의 주가를 높인 특종이긴 하지만 그렇게 잘못된 발언이었는지는 논란의 여지가 있습니다. 정 고문측이 전후문맥을 생략하고 그 말만 보도했다고 반박했듯 그 때 발언의 진의는 노인보고 투표하지 말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즉 미래는 젊은이들의 무대인만큼 노인들보다 젊은이들이 꼭 투표를 해야 한다고 강조하는 와중에 나온 말입니다. 그러나 “노인들은 투표 안 해도 된다”라고 한 발언은 다른 팩트들을 모두 삼켜버리고 말았죠.

2008년에는 영화배우 최민수씨의 노인폭행 사건이 엄청난 논란을 불러일으켰습니다. 그 사건도 꼼꼼히 살펴보면 최씨 보다 피해자 노인의 잘못이 컸습니다. 하지만 노인과 결부된 사건인지라 최씨는 경찰수사 전에 이미 여론에서 패소판결을 받았죠. 온갖 비난을 뒤집어쓴 끝에 결국 사과하고 칩거에 들어갔습니다.

2010년에는 지하철에서 여중생과 할머니가 난투극을 벌이는 동영상이 인터넷에 공개돼 국민적 공분을 샀습니다. 동영상을 살펴보면 여중생이 사건의 단초를 제공했지만 할머니의 폭력 또한 매우 지나쳤습니다. 여중생의 머리채를 잡고 마구 흔드는 것을 보면 “이 분이 할머니 맞나”라는 생각까지 들 정도입니다. 하지만 여론재판의 승자는 할머니였습니다.

어찌됐든 우리나라에서는 젊은이와 노인 간에 시비가 붙으면 십중팔구 노인이 이기게 돼 있습니다. 그 이유는 뭘까요? 모르긴 해도 뿌리 깊은 유교사상 때문일 것입니다. 세태가 많이 바뀌었다고는 하나 우리나라는 아직 경로사상이 높은 편입니다. 그래서 젊은 사람이 노인에게 대들었다는 사실만으로 마이너스 점수를 왕창 안아야 합니다. 젊은 사람들도 결국은 노인이 되니까, 경로사상은 높을수록 좋은 것이죠. 노년에 대비해 보험을 드는 것과 같은 효과라고 할까요.

하지만 노인들도 좀 염치를 가졌으면 합니다. 청년실업자들이 넘쳐나고 있는데 어떤 사람은 팔순 나이에 신규취업 했으니 국민 눈에 곱게 보일 리 있겠습니까. 물론 선출직은 다른 문제일 겁니다. 하지만 그것도 아니면서 은퇴 후에까지 어떻게 한자리 얻어 보려고 정권과 정치권 언저리를 기웃거리는 것을 보면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다는 말이 실감이 납니다.


김성훈 전 농림부장관(76)은 지금도 환경과 농업분야에서 활동을 하고 있지만 어떤 자리를 맡든 무보수를 원칙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가 얼마 전 사석에서 한 말입니다. “나이 65세가 넘으면 월급을 받으면 안 됩니다. 그때까지 잘 먹고 살았으면 이후로는 봉사하면서 살 생각을 해야죠.”

변재운 쿠키뉴스 대표 jwbyun@kukimedia.co.kr
조현우 기자 기자
canne@kmib.co.kr
조현우 기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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