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 김동운 기자 = #약 3년 전 한국에 취업한 외국인 A씨는 새로 입출금 통장을 만들어야 하는 상황이다. 하지만 코로나19로 외출의 여의치 않자 카카오뱅크를 통해 계좌개설을 시도했다. 하지만 외국인은 원칙적으로 비대면으로 계좌개설을 할 수 없다는 답변을 받았다. 화가 났지만 A씨는 다른 시중은행을 통해 비대면 계좌개설을 시도했지만, 시중은행서도 계좌를 만들지 못했다.
코로나19로 인해 가속화된 디지털·비대면 금융 서비스는 금융소비자들에게 편리함과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게 됐다. 그러나 이같은 디지털 금융 서비스는 외국인들에게는 해당되지 않는다. 2021년 기준 국내에 거주하는 외국인들이 약 200만명에 달하는 상황이지만 여전히 이들은 코로나19 시국 속에서도 위험을 감수하고 대면 거래를 해야하는 형편이다.
금융권에 따르면 9일 기준 국내 시중은행(KB국민·신한·우리·하나·NH농협은행)에서 국내거주 외국인이 비대면으로 입·출금 통장계좌를 개설할 수 있는 곳은 단 한 곳도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외국인이 시중은행에서 계좌개설을 하려면 오직 영업점에 방문해 외국인등록증을 제시해야만 통장을 만들 수 있는 것.
그나마 시중은행은 영업점에 방문해서 계좌를 만들 방법이 있지만, 인터넷전문은행은 영업점이 없는 만큼 어떤 방법을 쓰더라도 계좌개설 자체가 불가능하다. 코로나19로 가속화된 디지털 금융 서비스는 국내 거주 외국인에게만큼은 해당되지 않는 셈이다.
금융권에서는 비대면 계좌개설 서비스를 제공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상태라고 항변했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비대면 계좌개설시 고객 정보를 확인하기 위해 실명확인증표의 유효성확인(진위확인) 프로세스가 필요하다”며 “하지만 관련부처에서 진행해야 할 논의가 진전되지 않고 있어 (외국인) 비대면 계좌개설을 서비스하고 싶어도 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국내 거주 외국인들을 대상으로 한 비대면 거래 활성화 방안은 마련된 상태다. 금융위원회는 지난 2019년 말 ‘온라인 금융거래 활성화 등을 위한 비대면 실명확인 가이드라인’을 개편·확정해 비대면으로 실명확인 후 계좌를 개설할 때, 외국인등록증을 사용할 수 있도록 근거를 마련했다. 하지만 유관 부처 간 협의가 지지부진하면서 은행들이 서비스를 제공할 수 없는 상황.
이같은 상황이 이어지자 금융당국이 다시 한 번 해결을 위한 움직임에 나섰다.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지난 6월 외국인등록증 등 신분증 진위확인 시스템을 구축하는 내용의 ‘비대면 실명확인 가이드라인’이 포함된 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법안이 통과될 경우 국내 거주 외국인도 외국인등록증을 활용해 비대면 개좌개설이 가능해질 것으로 보인다.
인터넷은행은 금융당국의 법안 제출을 반기고 있다. 인터넷은행 관계자는 “그간 시중은행과 달리 비대면 거래만이 가능한 인터넷은행들은 외국인 고객을 모집할 수 있는 방법 자체가 없었다”며 “이번 법안이 통과된다면 외국인이란 신규 고객을 유치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기는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비대면 거래의 허점을 이용한 대포통장 사기 및 범죄가 늘어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금융권 관계자는 “많은 수의 외국인 계좌들이 대포통장 및 금융사기에 이용되고 있다는 점을 우려해 대면 계좌 개설 단계에서도 재직증명서 등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 현실인데 간편하게 비대면 개설이 가능해지면 많은 수의 대포통장이 양산될 수 있다”며 “국내 거주 외국인들에게 간편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도 좋지만, 이를 막기 위한 보안대책도 함께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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