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속 청년은 ‘N잡’에 제로웨이스트를 실천하는 ‘갓생러’였다가, 어느 날은 코인에 목숨을 걸거나 이어폰을 끼고 일하는 무개념에 과시소비를 일삼는 ‘금쪽이’가 됩니다. 상반된 단어들이 전부 청년을 수식하는 역설적인 상황입니다. 그 안에 청년 당사자의 목소리나 의견은 담겨져 있지 않습니다”
정치권에서 2030청년을 일컫는 세대화된 명칭이 범람하고 있다. 하지만 정작 청년 사이에서는 세대론적 틀로 ‘진짜 청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7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 제3세미나실에서 ‘청년 아고라: 세대론, 어떻게 볼 것인가’ 토론회가 열렸다. 더불어민주당 전국청년위원회·전용기 의원실 공동 주최, 더불어민주당 전국청년위원회·쿠키미디어·대학알리가 공동 주관했다.
청년 아고라는 더불어민주당 전국청년위원회·쿠키미디어·대학알리의 합작 프로젝트다. 한국 청년이 직면한 문제들에 대해 청년 스스로 해법을 찾을 수 있도록 진솔한 논의장을 마련하자는 취지에서 탄생했다.
이날 기조발제에 나선 김내훈 작가는 청년정치를 둘러싼 한국 사회의 모순점을 지적했다. 박지현 전 민주당 공동비상대책위원장과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를 언급하면서다. 김 작가는 “매스컴에서 주목받으며 활약하는 이들이 있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할 일을 하는 젊은 정치인이 있다. 한국 사회는 대체로 청년정치를 거론할 때 전자만 염두에 둔다”라고 꼬집었다.
그는 “정치권과 언론은 박 전 위원장·이 전 대표의 활동이 각자의 이유로 잠시 위축되면, 청년정치의 위상도 바뀌는 것처럼 말한다”라며 “하지만 위축된 것은 두 명의 개인일 뿐, 청년 정치가 아니다”라고 짚었다.
이어 “젊은 정치인이 메시지를 내면, 한 정당인의 합리적인 비판이 아니라 기성세대를 향한 청년의 비판으로 보도된다. 이는 ‘청년은 공정에 민감하다’라는 결론으로 이어진다”라면서 “청년정치인은 특정세대를 대변할 수 없다. 청년정치가 제 기능을 하려면 이같은 굴레를 벗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눈 먼 세대론’을 경계하는 목소리는 자유토론회에서도 이어졌다. 패널로는 유호준 더불어민주당 경기도의원, 이해지 청년하다 대표, 김지윤 전 국무조정실 청년정책조정위원회 실무위원(숙명여대 국제학 석사과정), 안재현 대학알리 PD, 임현범 쿠키뉴스 기자 등이 참석했다. 좌장은 이동수 청년정치크루 대표가 맡았다.
이들은 한 목소리로 거창한 세대론 속에서 청년 개개인이 소외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한국 사회가 세대담론 자체에 지나치게 몰두하면서, 오히려 청년들이 처한 상황을 객관화하지 못하게 만든다는 지적이다.
유호준 더불어민주당 경기도의원은 녹록지 않은 청년정치의 현실을 소개했다. 그는 “작년 선거에 출마하며 ‘청년팔이’를 많이 했다”라며 “하지만 당선되고 나니 실제로 청년 의제와 관련된 활동에 몰두하지 못했다. 청년이 겪는 어려움이 말할 수 없을 만큼 다양하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이어 “청년 세대론에 의존한 청년정치 담론으로는 시대의 파고를 넘을 수 없다”라며 “선 과제는 각종 영역과 사회적 지위에서 약자인 청년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장기화된 실업, 자산양극화, 주가불안, 기후위기 등 보편적인 사회문제가 청년의 삶을 어렵게 하는 진짜 원인이라는 주장도 나왔다. 한국 사회가 세대론 너머 ‘진짜 문제’를 해결하는 데 역량을 모아야 한다는 것이다.
김지윤 전 국무조정실 청년정책조정위원회 실무위원은 “세대론은 오늘날 청년세대가 맞닥뜨린 어려움을 바로 보지 못하게 한다”라며 “문제의 본질을 호도할 뿐만 아니라 미흡한 정책적 대응을 낳는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청년을 이해하는 일은 한국 사회가 사회적 변화를 인지하는 것부터 출발한다”라며 “세대 속 개인을 조명하고 시대의 변화를 수용해 대비책을 마련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모든 세대를 아우르는 ‘기회의 평등’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이해지 청년하다 대표는 “청년들은 수많은 미디어에서 다뤄지는 청년 담론이 현실을 개선하기에 역부족이라고 느낀다”라며 “계급·학력·성별·지역에 따른 불평등에 의해 여러 가지로 갈라져있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이어 “한국 사회에 필요한 가치는 청년을 포함한 모든 세대의 불평등을 해결할 수 있도록 출발선을 맞추는 ‘기회의 평등’”이라고 힘줘 말했다.
임현범 쿠키뉴스 기자 역시 “세대론은 기성 정치인이 만들어낸 담론이다. 청년의 개별 특성을 이해하고 사회적 위치를 이해하는 노력이 사라진 지 오래”라며 “청년 정치 구조는 리모델링으로 끝날 일이 아니다. 처음부터 다시 쌓아야 한다. 새로운 건물에는 반드시 걸어올라 갈 계단과 사다리가 필요하다”고 목소리 높였다.
이날 토론회를 끝으로 청년 아고라 시리즈는 막을 내렸다. 전용기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인사말을 통해 “청년 아고라가 어느덧 ‘세대론’을 주제로 마지막 시간을 맞았다”라며 “청년에게 중요한 가치는 한 가지가 아니다. 이들은 다양한 가치관에 따라 합리성을 추구하는 세대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간의 아고라 토론회가 세대 간 갈등과 청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길잡이가 되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김지방 쿠키미디어 대표는 “올 한해 꾸준히 진행한 청년 아고라 시리즈가 오늘로 마무리됐다”라며 “오늘 토론회가 새로운 청년 세대의 정체성을 밝히고 갈등의 사회를 연대와 상생의 세상으로 바꾸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쿠키뉴스는 앞으로도 청년 목소리를 듣고 세상을 더 젊게 바꾸는 언론이 되도록 노력하겠다”라고 의지를 드러냈다.
김연준 대학알리 대표는 “청년 세대론은 끊임없이 대두되는 주제다. 88만원 세대, 386세대, N포세대, MZ세대 등 다양한 개념이 청년을 구별지어 왔다”라며 “세대론을 유의미한 논점으로 보기 위해서는 청년 개개인이 과연 본인을 어떻게 규정하고 있는지, 세대론이 모든 청년을 일반화하는 것이 아닌지에 대한 논의가 먼저 이뤄져야 한다. 청년층의 다양성에 주목하는 것이 향후 청년 정책 의사결정의 토대를 쌓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은희 기자 joy@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