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공의 업무·책임 떠안은 간호사…“법적 보호 조치 필요”

전공의 업무·책임 떠안은 간호사…“법적 보호 조치 필요”

기사승인 2024-02-22 13:56:19
서울 시내 한 병원에서 의료진이 이동하고 있다. 사진=임형택 기자

사직서를 제출하고 전공의들이 대거 병원을 이탈하자 의사가 해야 할 의료 행위를 간호사들이 떠안았다. 간호사들의 업무 부담이 과중되는 가운데 행여 문제가 발생했을 때 법적 보호를 받을 수 없다는 우려가 커진다. 간호사 업무 범위를 명확화하는 등 안전망 구축이 필요하단 목소리가 높아진다.

“인턴 업무를 간호사에게 하도록 하고 있다.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너무 힘들다.” 22일 간호계에 따르면 지난 19일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 블라인드에 ‘간호사가 인턴 업무를 하고 있다’는 제목의 글이 게시됐다. 글쓴이는 이른바 ‘빅5병원’ 중 한 곳인 서울아산병원에서 근무하는 간호사 A씨였다.

A씨는 “파업하면 환자의 컴플레인과 의사의 업무를 덮어쓰게 되는데, 환자가 잘못될 경우 법적으로 간호사가 책임을 떠안게 될 것”이라고 적었다. 그러면서 “중환자 분들 병원에 이미 너무 많은데 다른 병원에 전원시키는 것도 아니고 그대로 환자들 내버려둔 상태에서 나가버리면 죽이는 거나 다름없다”고 토로했다.

같은 날 익명 커뮤니티에 올라온 서울의 한 대형병원의 공지 글도 논란이다. ‘케모포트 지원 간호사’를 운영한다는 내용이었다. 케모포트는 주로 가슴이나 팔 위쪽에 이식되는 소형 의료 장치다. 이는 심장 근처 정맥에 삽입되는 카테터(의료용 관)에 연결된다. 국소마취를 하고 피부를 절개해야 하는 의료 행위인 만큼 주로 외과 전문의가 수행한다. 간호사가 의사의 지시 없이 암 환자의 케모포트에 바늘을 꽂는 의료 행위는 엄연히 불법이다.

전공의(인턴·레지던트)들의 집단 사직으로 의료공백이 커지고 그 부담을 환자와 의료현장에 남은 인력들이 떠맡는 일은 관행처럼 이어져왔다.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보건의료노조)은 지난 20일 성명을 내고 “전공의들이 진료를 중단하고 의료현장을 떠나면서 이들이 담당하고 있던 의사 업무가 간호사 등 타 직군에게 떠넘겨지고 있다”며 “실제 여러 병원에서 진료부가 환자 동의서와 검사·처치에 대한 업무 협조를 간호부에 요청한 사례가 있었다”고 주장했다. 

심지어는 “일반 간호사를 아무런 교육·훈련 없이 갑자기 PA간호사로 배치해 의사 업무를 담당하게 하는 병원도 있다”고 했다. 진료보조(PA·Physician Assistant) 간호사는 의사의 역할을 일부 대신해 수술, 검사, 응급상황 시 의사를 지원하는 인력이다. ‘수술실 간호사’ 혹은 ‘임상전담 간호사’로 불리며 전국에서 1만명 이상 활동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의사들의 집단행동으로 의료공백이 발생하면 PA간호사를 적극 활용하겠단 방침을 내놓은 바 있다.

그러나 의료법상 간호사는 의사, 치과의사, 한의사의 지도 하에 시행하는 ‘진료 보조’만 가능하다. 불법을 막기 위해 또 다른 불법을 양산할 수 있단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서울 시내 한 병원 응급실. 사진=임형택 기자


오진희 대한간호협회 정책국 법·제도 전문위원은 쿠키뉴스와의 통화에서 “지난 2020년에도 전공의 파업에 따른 의료대란이 발생해 PA간호사들이 활용됐는데 사태 종료 후 의사들이 나중에 간호사들을 불법 의료 행위로 고발한 적이 있었다”며 “그런 상황이 다시 발생할지 모른다”고 털어놨다. PA간호사는 환자 돌봄뿐 아니라 법적 부담까지 안고 가야 한단 것이다. 지난해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는 “PA간호사 채용 공고를 낸 삼성서울병원이 의료법을 위반했다”며 병원장과 채용에 응한 간호사 등을 고발하기도 했다.

오 위원은 “PA간호사든 일반 간호사든 법적인 안전망에서의 보호 조치가 필요하다”며 “정부는 간호사들이 의료공백 사태에 투입됐다가 의료사고 등 문제에 휘말리는 일이 생기면 그 책임을 경감해 주는 방안을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그 방안에 대해 실무단과 협의 중에 있다”며 “복지부 측에도 방안을 마련해달라고 요청한 상태다”라고 덧붙였다.

간협은 의사들의 집단행동에 따른 간호사의 피해를 막고자 ‘의료 공백 위기 대응 간호사 TF’도 가동 중이다. 간협에 따르면 지난 18일 접수 하루 만에 약 100여건의 신고가 접수됐다. 오 위원은 “간호사들의 노동 강도가 높아지고 있는데, 협회 입장에선 간호사의 보호가 가장 우선”이라며 “간호사의 업무 범위와 한계를 명확화해 불법적인 진료 보조를 사전에 차단하고, 간호사의 권리를 보호해야 한다”고 짚었다.

정부는 지난해 PA제도개선협의체를 통해 현행법 테두리 안에서 PA간호사를 활용하고 보호하는 방안을 만들어놨다며 내부적으로 정리가 되면 발표한단 계획이다. 박민수 복지부 제2차관은 22일 오전 정부 정부세종청사에서 의사 집단행동 중앙사고수습본부 브리핑을 갖고 “간호사의 업무 영역 중 불법인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한 모호한 부분이 있다”며 “이를 명확하게 해달라는 요구가 그동안 간호계에서 계속 있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이를 명확하게 하기 위한 노력들을 해왔고, 지난해 PA제도개선협의체에서 나름의 개선 방안을 만들어 놓은 상태”라며 “이런 긴급한 상황에서 어떻게 하면 간호사들이 법의 보호 안에서 안심하고 일을 할 수 있게 할 것인지 시행 방안을 연구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편 복지부에 따르면 지난 21일 오후 10시 기준 주요 100개 수련병원 점검 결과, 사직서 제출자는 소속 전공의의 약 74.4% 수준인 9275명이다. 전날 대비 459명이 늘어났다. 근무지 이탈자도 8024명으로, 전날보다 211명 증가했다. 이는 소속 전공의의 약 64.4%에 해당하는 규모다. 이에 따라 정부는 업무개시명령 대상자를 808명 추가한 6038명으로 확대했다.

신대현 기자 sdh3698@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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