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 꺼지는 응급실…“배후진료 끊겨 속수무책”

불 꺼지는 응급실…“배후진료 끊겨 속수무책”

기사승인 2024-09-04 19:51:04
서울의 한 대학병원 응급의료센터 안으로 의료진이 들어가고 있다.사진=곽경근 대기자

응급실 문을 닫거나 닫을 예정인 병원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 정부는 진료 공백을 최소화하기 위해 필요한 모든 지원을 하겠다는 입장이지만, 의료현장에선 비상진료를 유지하는 게 불가능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박민수 보건복지부 제2차관은 4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응급의료 등 비상진료 대응 관련 브리핑을 열고 응급실을 중단했거나 중단할 예정인 병원이 5곳이라고 밝혔다.

복지부에 따르면 이날 기준 응급실을 부분 운영 중단하거나 중단 예정인 병원은 건국대충주병원, 강원대병원, 세종충남대병원, 이대목동병원, 순천향대천안병원 등이다. 

순천향대천안병원은 권역응급의료센터의 경우 24시간 운영하지만 소아응급의료센터는 주 3회 주간만 진료한다. 해당 병원은 응급의학과 전문의가 5명 이하로 떨어졌다가 채용을 거쳐 현재 10명이 근무 중이다. 병원은 소아응급 전문의를 뽑는 중이다.

서울 서남권·경기 부천 등의 중증·응급환자를 치료하는 권역응급의료센터인 이대목동병원은 이날 이후 매주 수요일 오후 5시부터 이튿날 오전 8시30분까지 응급실 야간 성인 진료를 중단한다. 신규·재진 환자 모두 해당한다. 다만 18일은 추석 연휴인 점을 감안해 정상 운영하고 대신 19일 야간 진료를 제한하기로 했다. 소아 응급실은 자정까지 운영한다.

아주대병원은 권역응급의료센터 전문의 사직과 응급실 의료진의 과부하 등에 따라 오는 5일부터 매주 목요일 응급실 운영을 제한한다. 심정지 등 초중증 환자만 수용해 진료한다. 시간은 목요일 오전 7시부터 다음날인 금요일 오전 7시까지며, 대상은 16세 이상 성인 환자다. 아주대병원 응급실에는 14명의 전문의가 근무했으나 의대 증원 사태 이후 3명의 사직서가 수리됐다. 남은 11명 중 4명이 격무를 호소하며 사직서를 제출했으나 병원의 설득으로 사직을 보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응급실을 축소하는 운영안을 검토하는 병원도 있다. 가톨릭대학교 여의도성모병원은 추석 연휴 기간 응급실 야간 운영 축소를 논의 중이다. 이 병원 응급실에는 응급의학과 전문의가 7명 근무하고 있지만, 최종 치료를 전담할 배후진료 인력이 부족한 상황이다. 여의도성모병원 관계자는 “24시간 운영 유지를 위해 다방면으로 노력하고 있다”면서 “일부 진료는 축소될 가능성이 있다”고 전했다.

박 차관은 “정부는 지속적으로 개별 의료기관과 긴밀하게 소통해 응급을 포함한 필수의료 인력 유지를 위해 필요한 모든 지원을 과감히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비상진료 상황이 장기화되면서 현재의 의료상황에 대해 많은 우려의 목소리가 있는 것을 정부도 잘 알고 있다”며 “상급종합병원 구조 전환 시범사업 등을 조속히 추진해 의료현장이 원활하고 안정적으로 유지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서울의 한 상급종합병원 응급의료센터로 119구급대원이 환자를 이송하고 있다. 사진=곽경근 대기자

정부는 이날부터 군의관 8차 파견을 시작했다. 군의관 총 250명 중 15명은 의료 인력이 시급히 필요한 집중관리 대상 의료기관 5곳에 우선 배치된다. 이에 따라 강원대병원 5명, 이대목동병원과 아주대병원 각각 3명, 세종충남대병원과 충북대병원 각각 2명이 배치됐다. 복지부는 나머지 235명도 오는 9일까지 배치를 완료할 계획이다.

응급실 운영이 한계에 다다른 상황이 잇따르자 환자들의 불안감은 커지고 있다. 한국중증질환연합회는 이날 ‘구급차 안이 사망 장소가 된 무서운 나라’라는 성명문을 통해 “구급차 안에서 사망사고가 연일 발생하고, 중환자실마저 요양병원화 되는 처참한 상황은 대한민국 의료의 부끄러운 민낯이 됐다”고 지적했다.

반년 넘게 이어지는 의정 갈등 속에서 현장 의료진은 피로감과 함께 자괴감을 느끼고 있다고 말한다. 수도권 소아응급의료센터에서 근무하는 응급의학과 A교수는 쿠키뉴스와의 통화에서 “지금의 의료현장은 누가 먼저 나가도 이상하지 않은 상태다”라고 짚었다. 

A교수는 “응급실이 무너지는 이유는 단순하다. 중증환자가 와도 배후진료가 끊겨 뭘 어떻게 해줄 수 없으니까 절망에 빠진 응급의학과 의사들이 버티지 못하고 그만두는 것”이라며 “‘뭐라도 나아지겠지’ ‘앞으론 괜찮아지겠지’ 하면서 버틴 게 7개월이 넘었다. 비상진료체계 유지는 불가능하다. 이런 식이면 더 이상 희망이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공보의·군의관 파견이 사태의 해결책이 될 수 없다고도 했다. A교수는 “우리 병원에서 파견을 받아보니 법적 문제가 생길 수 있다며 진료를 거의 하지 않았다”면서 “의료현장이 복원될 가능성이 사라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신대현 기자
sdh3698@kukinews.com
신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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