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박물관, '국보 제105호 산청 범학리 삼층석탑' 발간

진주박물관, '국보 제105호 산청 범학리 삼층석탑' 발간

기사승인 2020-11-06 15:27:08
[진주=쿠키뉴스] 강연만 기자 = 국립진주박물관(관장 최영창)이 국보 제105호 '산청 범학리 삼층석탑 '(이하 범학리 석탑)의 이전·복원을 완료하고, 그동안의 경과와 복원 전시를 전후해 이뤄진 종합적인 연구 결과를 담은 '국보 제105호 산청 범학리 삼층석탑'보고서를 발간했다. 

본 보고서는 문헌자료, 조선총독부박물관 문서, 사진, 3차원(3D) 스캔 이미지, 정밀 실측 도면 등 범학리 석탑 관련 자료를 집대성했다.


보고서는 사진 및 실측도 등 이미지 자료와 상세정보를 담은 'Ⅰ. 산청 범학리 삼층석탑', 산청에 세워져 있던 시기부터 국립진주박물관에 전시되기까지의 과정을 담은 'Ⅱ. 석탑이 지나온 역사', 석탑의 양식 및 부조상, 암질특성에 관한 연구 결과를 담은 'Ⅲ. 논고로 구성돼 있다.

산청 범학리 절터와 석탑이 있던 곳은 둔철산 자락인 경남 산청군 산청읍 범학리 617번지로 추정된다. 통일신라시대 사찰은 15세기 후반까지 기록에 보이다가 이후 폐사지가 됐으며, 범학리 석탑도 이곳에 허물어져 있었다고 한다. 

바로 이 때문에 범학리 석탑은 한국 근현대사와 영욕을 함께한 대표적인 문화유산이 됐다. 일제강점기에 많은 우리 문화재가 해외로 유출되거나 제 자리(고향)를 떠나게 되었는데, 범학리 석탑도 그 같은 운명이 됐다.

범학리 석탑은 지난 1941년 1월 일본인 골동품상 오쿠 지스케(奧治助)에 의해 대구로 반출돼 제면공장(製綿工場) 구내 빈터에 보관되어 있다가, 조선총독부에 압수돼 이듬해 서울로 옮겨졌다. 

범학리 석탑의 수난은 광복 후에도 끝나지 않았다. 지난 1946년 미군 공병대의 도움으로 경복궁 안에 세워진 범학리 석탑은 한국전쟁 당시 폭격에서 살아남았으나, 1994년 경복궁 복원정비 사업이 추진되면서 다시 해체돼 국립중앙박물관 수장고에 보관됐다. 

2005년 국립중앙박물관이 용산에 새 청사를 마련해 이전한 뒤에도 복원이 지연되자 다수의 문화재 전문가들이 경남 서부지역을 대표하는 국보 석조문화재를 볼 수 없게 된 상황을 안타깝게 여겼다. 

이에 진주박물관은 범학리 석탑의 진주 이관을 요청했고, 국립중앙박물관이 이전을 결정했다. 지난 2017년 2월 고향인 경남으로 돌아와, 2018년 11월 27일 본관 오른쪽 야외전시장에 범학리 석탑이 복원 전시됐다.

그동안 석조미술 연구에 많은 성과가 있었지만, 통일신라 석탑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될 수 있는 범학리 석탑은 수장고에 오랜 기간 보관되어 오면서 상세한 조사나 연구가 이루어지기 어려웠다. 

진주박물관은 야외전시장에 복원 전시 하면서 역사, 미술사 및 과학 조사 등 다각적인 종합 연구를 실시했다. 전시 이후에도 상세 자료 조사 및 검토, 유사 석탑 현장조사, 분야별 연구 등을 좀 더 심도 있게 진행했다. 


그 결과, 그동안 2층 기단에 3층 탑신을 갖춘 통일신라 9세기 석탑으로만 알려져 왔던 범학리 석탑에 대한 다양한 사실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첫째 범학리 석탑의 형식과 양식적 특징, 규모를 통해 석탑의 제작 시기를 살펴 봤다. 갑석(甲石)의 석재 수와 상층기단의 결구방식, 1층 탑신 사리공과 3층 옥개석 풍탁공(風鐸孔) 등의 특징을 통일신라 석탑들과 비교 분석했다. 그 결과 범학리 석탑은 9세기 말경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할 수 있었다. 특히 순천 금둔사지 삼층석탑과는 규모와 구조도 유사하여 주목된다.

둘째 범학리 석탑은 경남 지역 석탑 중 유일하게 부조상(浮彫像)을 갖춘 석탑으로, 상층기단과 1층 탑신 각 면에 부조상이 정교하게 새겨져 있는 것이 특징이다. 

그러나 그동안 이에 대한 상세한 연구 없이 상층기단에는 팔부중, 1층 탑신에는 보살상으로만 알려져 왔다. 이번 연구에서는 부조상에 대한 도상과 양식적 분석을 통해 존명과 조성시기를 검토해 봤다. 

상층기단 부조상은 특정 도상 특징이 나타나지 않기 때문에 칼, 활, 화염검, 활을 들고 있는 '신장상'으로 보았다. 1층 탑신 부조상은 정면을 바라보는 보살상을 중심으로 나머지 3구의 보살상이 탑의 전면을 향해 '공양하는 보살상'을 표현했다. 

범학리 석탑의 부조상은 9세기 후반 합천, 순천, 구례 등 인근 지역 석탑, 석조불상의 대좌, 승탑(僧塔) 등의 부조상과 도상적인 공통성을 보여 9세기 후반 경에 조성된 것임을 추정할 수 있었다. 
 
셋째 석탑의 암질에 대한 분석을 실시했는데, 분석 결과 섬장암(閃長巖)으로 밝혀졌다. 섬장암은 국내에 지질 분포가 적어 석탑 부재로서의 사용은 희귀하다. 

그러나 산청군 범학리 일대 지질과 산지 조사에서 섬장암이 넓게 분포 한다는 것을 확인했고, 석탑 부재와의 동질성 분석에서도 일치하는 결과가 나왔다. 이로써 9세기 무렵 산청 범학리 삼층석탑은 주변 석재를 이용해 현지에서 만들어 졌다는 근거를 확보하게 됐다. 

이를 통해, 하층기단 결실부의 복원에도 동일 산지의 섬장암을 사용했다. 복원 재료를 원 석탑 부재와 동일한 산지의 돌로 복원한 사례는 국내에서 극히 드문 경우로 석탑은 77년 만에 원형에 가까운 모습을 찾아 의미가 크다. 

박물관 관계자는 "보고서를 통해 새롭게 밝혀진 이번 연구 성과가 앞으로 통일신라 석탑 연구뿐만 아니라 역사, 미술사, 건축사, 보존과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되길 기대한다"며 "경남 서부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연구 및 전시하는 대표기관인 국립진주박물관은 앞으로도 경남 지역 문화재 조사연구를 지속적으로 진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kk77@kukinews.com
강연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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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연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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