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절공 신숭겸 장군단 성역화 기념비 제막

장절공 신숭겸 장군단 성역화 기념비 제막

기사승인 2022-04-17 01:21:39
고려 개국공신 장절공 신숭겸(申崇謙) 장군단 성역화 기념비 제막식이 16일 오전 전남 곡성군 죽곡면에서 열린 가운데 주요 내빈들이 기념비 제막을 하고 있다.[사진=전남도]
고려 개국공신 장절공 신숭겸(申崇謙) 장군단 성역화 기념비 제막식이 16일 오전 전남 곡성군 죽곡면에서 열린 가운데 주요 내빈들이 기념비 제막을 하고 있다.[사진=전남도]

곡성에는 장군이 성장한 용산단, 배향지인 덕양서원, 두상을 매장한 장군단, 용마를 매어 뒀던 계마석 등 10여 곳에 유적과 유물이 현존하고 있다.

평산 신씨(平山 申氏) 시조(始祖) 신숭겸 장군의 초명은 능산(能山)이다. 궁예 시절 무장으로 많은 공을 세워 마군장군의 지위에 올랐으나, 궁예의 폭정을 끝내기 위해 배현경, 홍유, 복지겸과 함께 궁예를 폐하고 왕건을 왕으로 추대해 918년 고려를 건국한 개국 1등 공신이다.

927년 왕건이 신라를 구원하기 위해 출전했던 대구 공산 동수전투에서 후백제 견훤군에게 포위돼 왕건이 목숨을 잃을 위기에 처하자 자신이 왕건의 투구와 갑옷을 입고 후백제군을 유인, 그사이 왕건은 일반 군졸의 옷을 입고 탈출하는 데 성공했으나, 신숭겸은 붙잡혀 참수당했다.

그날 신숭겸의 용마가 잃었던 두상을 물고 고향 땅으로 돌아와 3일동안 태안사 뒤에서 슬피 울자 태안사 스님들이 그 소리를 듣고 찾아가 터를 잡아서 묻고 단을 쌓은 뒤 제사를 지내왔다고 전해지고 있다.

신숭겸의 참수된 시신은 왼쪽 발바닥에 북두칠성 모양의 사마귀가 있다는 것을 근거로 찾았지만, 머리가 없어 왕건이 황금으로 머리를 만들어 지금의 강원도 춘천시 서면 방동리에 왕건이 자신의 묘 자리로 미리 정해놓았던 곳에 매장했다고 전해진다.

또 황금으로 만들어진 두상의 도굴을 막기 위해 3개의 봉분을 나란히 만들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무안=신영삼 기자 news032@kukinews.com
신영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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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영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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