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옥희 시인(76)의 디카시집 '잠깐 풋잠에 든 것처럼'은 파노라마처럼 펼쳐진 인생의 전 페이지가 쓰여 있다.
한숨과 안타까움과 가족에 대한 사랑, 그리고 여인으로서 감내해야 했던 인고의 세월,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은 충분히 빛나고 아름답다는 것.
자신이 직접 찍은 66장의 사진에 시적 문장을 합친 66편의 디카시는 한 편 한 편이 다 절창이다.
사진은 시인의 또 다른 눈이다. 일상에서 지나쳤을 수도 있는 사소한 것도 놓치지 않고 예술로 승화시켜 우리에게 깊은 감동을 준다.
그래서 시인에게 디카시는 보석 상자다. 귀하고 아름다운 것만이 있는 것이 아니라 기쁨과 눈물, 한과 외로움의 결정체가 빛나는 보석 상자.
“학교에 공부하러 가는 것만큼이나 신기하고 재미있었습니다. 그렇게 디카시와의 인연이 시작돼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습니다. 잠깐 마당에만 나가도 휴대폰을 가지고 갈 정도로 이제 디카시는 나의 삶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분신과 같은 존재가 됐습니다. 어쩌면 나의 일상과 삶을 기록하는 디카시와 학교 공부를 통해 해방감을 느끼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인지 비상구 같다는 생각을 종종 합니다”
디카시집 '잠깐 풋잠에 든 것처럼'중 ‘내 꿈의 완성’ 일부
고성문화원 부원장을 역임하기도 한 최옥희 시인은 늦깎이로 이은 학업에 대한 자부심이 크다.
이 땅의 여인들이 식구를 위해 희생하면서 배움에 대한 한을 가졌듯이 초등학교만 졸업한 뒤 배움을 이어가지 못하다가, 2008년 방송통신중학교를 거쳐 2022년 방송통신고등학교를 다니면서 배움의 길로 접어들었다.
최옥희 시인은 건강이 허락한다면 대학에도 가보고 싶다는 소망을 조심스레 풀어놓기도 한다.
디카시 문예 운동을 이끄는 이상옥 시인(한국디카시연구소 대표)은 최옥희 시인을 “고성에서 태어나 가족을 이루고 사라져 가는 전통적인 미덕인 부덕을 현대의 대모적 이미지로 구축해낸 고성 사람”으로 평하고 있다.
그만큼 애쓰고 공부하며 살아온 삶은 “과학적 상상력으로서는 해명할 수 없는 대모 신화적 상상력과 결부된다”고 했다.
‘세월이 수만 년 동안 차린 잔칫상/ 무너질까 두려워/ 갈매기도, 파도도, 조심조심’ <시루떡>에서 보이는 것조차 삶에서 얻은 대모적 이미지이자 본격문학으로서의 진수를 보여준다고 평가했다.
단순하게 사진과 병치한 감상이 아니라 삶의 연륜과 아름다움을 알게 한 겸허함 속에서 말할 수 있는 것임을 ‘나 사는 것도/ 반걸음만 더 올라가 보면/ 보이는 것부터 다르겠지’(「높은 음자리」)에서 보여주고 있다.
뒤이어 ‘담장 둘러친 내 집을 떠난 적 없어/ 나는 여기가 제일 좋은 줄만 알았어/ 태평양 바다도 에베레스트산도 있다는 걸/ 방송통신중학교에 입학하고 알았어/ 나는 지금 꿈 많은 47년생 일흔여섯 살 여고생’(「나」)에서 보이듯 삶의 내공에서만 우러날 수 있는 완결성마저 갖추고 있어 디카시집을 읽는 독자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고성=최일생 기자 k7554@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