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공의 집단 이탈로 촉발된 의료공백 사태가 7주차에 접어든 가운데 의정 갈등의 출구가 보이지 않는다. 병원 교수들은 과중된 업무를 버티지 못해 사직하고, 의대 2000명 증원을 두고 정부와 의료계는 한 치의 물러섬 없이 서로의 주장을 고수하고 있다. 사태 해결 가능성은 오리무중인 상태로 환자들의 피해만 점점 쌓여간다.
31일 의료공백 사태 해결 가능성이 안갯속이다. 윤석열 대통령의 ‘유연한 처분’ 주문으로 정부와 의료계의 대화의 물꼬가 트이나 싶었지만 양측의 갈등은 더 심화되는 양상이다.
보건복지부는 응급실 상황 등을 점검하고 비상진료대책 강화에 나섰다. 4월부터 의대 교수들이 진료를 축소한다고 예고하면서다. 서울대 의대 등 20개 대학의 교수 비상대책위원회가 모인 ‘전국 의과대학 교수 비상대책위원회’(전의비)는 4월부터 24시간 연속근무 후 다음날 주간 근무는 서지 않기로 결정했다. 중증·응급환자 진료를 제외한 외래진료와 수술은 대학별로 조정하기로 했다. 전공의들이 떠난 의료현장을 지켜온 교수들이 과중된 업무에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번아웃’을 호소함에 따라 이들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란 설명이다. 다른 의대 교수단체인 ‘전국 의과대학 교수협의회’(전의교협) 또한 앞서 지난 25일부터 외래진료, 수술, 입원 진료 근무 시간을 법정 근로시간인 주 52시간으로 줄였다.
방재승 전의비 위원장은 지난 30일 서울대병원 의학연구혁신센터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그전까진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모든 환자를 봤다. 이 때문에 물리적, 체력적 한계가 왔다”며 “과거와 같은 진료를 하면 의료사고의 위험성이 커진다. 각 진료과의 상황에 따라 필수의료를 신경 쓰고 비필수의료는 줄이겠다”고 전했다. 이어 “상급종합병원에 오지 않아도 되는 경증환자들의 진료는 줄이고, 위급한 환자들은 의사의 도리를 다하며 진료에 성실히 임하겠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정부는 유감을 표하고 사태 해결을 위한 대화에 임할 것을 거듭 촉구했다. 지난달 발표된 2차 비상진료대책에 이어 강화된 3차 대책 마련에도 나섰다. 조규홍 복지부 장관은 31일 제25차 의사 집단행동 중앙사고수습본부 회의를 열고 “정부가 내년도 예산 중점 투자 방향으로 의료개혁 4대 과제 이행을 위한 5대 핵심과제를 제시하고 의료계에 대화에 참여할 것을 제안했다”며 “하지만 이에 응하지 않고 있어 안타깝다. 의료계는 적극적으로 대화에 임해달라”고 요청했다.
전공의에 이어 교수들까지 집단행동에 나설 경우 의료현장의 혼란은 극에 달할 전망이다. 협의의 물꼬를 틀려면 의대 증원을 양보하는 수밖에 없지만 정부는 그럴 마음이 없어 보인다. 박민수 복지부 2차관은 지난 29일 브리핑을 통해 “5000만 국민을 뒤로하고 특정 직역에 굴복하는 불행한 역사를 반복하지 않겠다”며 “다수의 국민이 원하는 의료개혁을 특정 직역과 흥정하듯 뒤집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의료계는 2000명 증원을 정부가 양보하지 않는 한 대화에 나서지 않겠단 입장이다. 여기에 더해 복지부 장·차관의 경질과 윤 대통령의 사과까지 협상 조건으로 내걸었다. 대한의사협회 신임 회장으로 선출된 임현택 당선인은 지난 26일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는 의대 증원 2000명을 번복하지 못한단 입장이 확고한데, 이는 국민들의 생명을 담보로 러시안 룰렛을 하고 있는 것”이라며 “가장 먼저 국민의 안전과 건강을 살펴야 하는 정부와 그 갈등을 조절해야 하는 여당이 기능을 전혀 못하고 있다”고 질타했다.
동네 개원 의사들도 주 40시간으로 진료시간을 축소한다. 김성근 의협 비상대책위원회 언론홍보위원장은 31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의협회관에서 열린 의협 비대위 회의 결과를 전하며 “몇 가지 제안을 검토한 결과, 그동안 움직이지 않았던 개원의들도 주 40시간 진료를 시작하기로 결론을 내렸다”고 설명했다.
병원 교수에 이어 동네 의사들까지 진료 축소에 나서자 정기적으로 병원을 이용해야만 하는 환자들의 우려는 갈수록 커진다. 최근 도랑에 빠져 심정지 상태로 구조된 생후 33개월 아이가 소아 중환자를 받을 병상이 없다는 이유로 상급종합병원 이송을 거부당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어린 자녀를 둔 보호자들의 불안감도 증폭된다.
복지부에 따르면 지난달 19일부터 27일 오후 6시까지 의사 집단행동 피해신고·지원센터에 들어온 피해신고서는 총 584건이다. 수술 지연이 393건, 진료 취소 106건, 진료 거절 58건, 입원 지연은 27건이었다. 의료 이용에 불편을 느껴 상담을 진행한 사례는 1078건으로 집계됐다.
중증질환자 단체인 한국중증질환연합회는 지난 29일 성명을 통해 “중증 환자를 되돌려 보내 사망에 이르게 해놓고 잘못이 없다는 식으로 대처하는 병원과 지방자치단체를 규탄한다”며 “지금도 많은 중증 환자가 입원을 거부당하고 병원에서 쫓겨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환자단체연합회도 같은 날 입장문을 내고 “우리가 바라는 것은 단 하나, 환자들이 더 이상 피해를 보지 않도록 해달라는 것”이라며 “의료계와 정부 양쪽이 조금씩 양보해서 현 의료공백 사태를 조속히 해결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신대현 기자 sdh3698@kukinews.com